개인이 20년간 쌓은 돌탑, 이건 기적이다

경남 창원시 팔용산 산행 및 봉암수원지 둘레길 산책

등록 2015.05.09 16:23수정 2015.05.0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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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봉암수원지 둘레길에서.

 봉암수원지 둘레길에서. ⓒ 김연옥


초록이 너무도 예쁜 오월이다. 그저 집에 눌러앉아 있기에는 억울한 느낌이 들 정도로 창문에 비껴드는 햇살도 눈부시다. 지난 1일 산을 좋아하는 지인과 함께 팔용산(328m, 경남 창원시) 산행과 봉암수원지 둘레길 산책을 나섰다. 

오전 8시 30분에 경남대학교 부근서 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대림하이빌아파트(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2길) 건너편에 위치한 팔용산 돌탑 입구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9시께. 여기서 400m 정도 걸어 올라갔을까, 팔용산 도사 이삼용씨가 20여 년 동안 쌓은 돌탑 군락이 나왔다.


팔용산 도사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돌탑을 쌓다

a   팔용산 돌탑 군락

 팔용산 돌탑 군락 ⓒ 김연옥


팔용산 돌탑은 통일기원탑이다. 이곳 산자락 동네에 거주하던 이삼용씨가 이산가족의 슬픔을 뼈저리게 느끼고서 1993년 3월부터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돌 하나하나에 담아 1천 기를 목표로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10년 전 산행길에서 마침 돌탑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낙엽을 치우러 왔던 그와 마주쳤던 기억이 난다.

당시 그는 마산시 보건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축지법을 써서 돌을 나르고 신출귀몰한 솜씨로 척척 돌탑을 쌓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그런 도인이 아니라 일상의 틀에 매여 생활해야 하는 평범한 직장인인데도 오랜 세월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돌탑과 함께해 온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분의 지극한 정성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즐거움과 설렘을 주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이분이 걸어온 아름다운 삶에 찬사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a   팔용산 도사 이삼용씨가 돌 하나하나에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쌓았다.

 팔용산 도사 이삼용씨가 돌 하나하나에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쌓았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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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옥


울퉁불퉁한 돌길이 나왔다. 하늘에서 여덟 마리의 용이 이 산에 내려앉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팔용산. 낮은 산인데도 올록볼록 튀어나온 돌길을 쉬이 만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이 전설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에게 손짓을 하는 듯한 정상도 아스라이 보였다. 봄 햇살이 마음속까지 화사하게 해 주는 길, 내리쬐는 봄볕이 따갑다 싶으면 푸른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성큼 내주기도 하는 넉넉한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a   내리쬐는 봄볕이 따갑다 싶으면 푸른 나무들이 성큼 시원한 그늘을 내주기도 한다.

 내리쬐는 봄볕이 따갑다 싶으면 푸른 나무들이 성큼 시원한 그늘을 내주기도 한다. ⓒ 김연옥


a   팔용산 정상에 웬 무덤이?

 팔용산 정상에 웬 무덤이?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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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옥


10시께 정상에 이르렀다. 정상에 오르자마자 눈앞에 턱 버티고 있는 무덤을 보고 첫 산행 때는 화들짝 놀랐다. 이 묘의 주인은 고려조 정당문학 대제학을 지냈던 이조년의 후손으로 숙종 때 창원시 북면 고암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한다. 팔용산 정상이 워낙 명당이라 운구 비용 2만 냥을 들여 안장하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사연이 쓰여 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 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학창 시절 때 배웠던 이조년의 시조가 문득 생각났다. 밝은 달빛이 하얀 배꽃을 비추고 두견새가 슬피 우는 깊은 봄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옛사람의 모습이 그림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정상 부근에서 삶은 계란, 사과와 우엉차로 주전부리를 하고 이곳에서 0.75km 거리에 위치한 봉암수원지 둘레길을 향해 기다란 나무 계단을 내려갔다.


봉암수원지 둘레길서 힐링의 시간을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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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옥


강인 듯 호수인 듯 잔잔한 물결 위로 햇살이 금싸라기처럼 부서져 내리는 봉암수원지 둘레길은 낭만적이면서 힐링의 시간 또한 갖게 해 주는 길이다. 수원지를 중심으로 길이가 1.5km 되는 둘레길을 느린 걸음으로 한 바퀴 돌다 보면 어느새 일상이 주는 팍팍함에서 벗어나 삶의 유쾌함을 얻게 되는 것 같다.

마음이 외로워서 찾고, 걷기 운동을 하기 위해서 찾고, 좋아하는 사람과 소곤소곤 이야기하며 한가한 봄을 한껏 즐기고 싶어서도 찾는 길이다.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거북선 돌탑 등 다양한 형태의 돌탑을 산책길에서 보는 즐거움도 있다. 한순간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마저 정겹게 느껴지고 친구, 가족, 연인이 함께 걸으면 서로에게 더 가까이 마음을 열 수 있는 곳이다.

a   낭만적이면서 힐링의 시간을 갖게 해 주는 길, 봉암수원지 둘레길.

 낭만적이면서 힐링의 시간을 갖게 해 주는 길, 봉암수원지 둘레길. ⓒ 김연옥


a   친구, 가족, 연인이 함께 걸으면 더 가까이 마음을 열 수 있는 길이다.

 친구, 가족, 연인이 함께 걸으면 더 가까이 마음을 열 수 있는 길이다. ⓒ 김연옥


그런데 마산 봉암수원지(등록문화재 제199호)는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에 건립된 것으로 당시 우물물을 길어 먹던 주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과 일제 부역자들한테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 마음이 착잡해져 온다.

봉암수원지 둘레길은 오늘날 아름다운 길로 승화되었다. 하지만 그 슬픈 역사를 잊지는 말아야 하리라. 길이 아름다울수록, 그래서 점점 삶의 유쾌함을 얻을수록 우리의 비극적 역사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팔용산돌탑 #수원지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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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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