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들은 정몽구 회장 집을 찾아갔을까?

[현장]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인권위 광고탑서 장기농성... "비정규직보호법 지켜라"

등록 2015.07.27 09:42수정 2015.07.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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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공 농성자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고공 농성장에 올라가 취재를 할 계획이었지만, 광고탑 소유회사가 취재를 가로막아 전화 인터뷰만 해야 했다.
고공 농성자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고공 농성장에 올라가 취재를 할 계획이었지만, 광고탑 소유회사가 취재를 가로막아 전화 인터뷰만 해야 했다. 이민선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에 설치된 광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규협, 최정명씨는 지난 6월 11일 광고탑을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광고탑은 가로 1.8m, 세로 20m 크기로 지상에서 70m 높이에 설치돼 있다.

고공 농성자들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화성지회 사내하청 소속 조합원이다. 이들이 난간조차 없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광고판 위에 올라가 장기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은 기아자동차가 '비정규직 보호법'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에 고공 농성자들이 "기아자동차가 법을 지켜야 한다"며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이들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지난 9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다.

고공농성 44일째인 지난 24일, 이들을 만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처음 계획은 광고판 위로 올라가 대면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광고탑 소유자인 M애드넷에서 '법원 판결문'을 근거로 현장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다. 결국, 전화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광고회사와 경찰, 건물 관리 측은 기자들이 광고탑이 설치된 옥상에 올라가는 것조차 막았다. 옥상 입구는 의경 2명이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다.

고공 농성자들을 현장 지원하는 최종원 고공농성 상황실장은 "광고회사에서 인터뷰를 막을 이유가 없는데 막고 있다"며 "경찰과 광고회사, 기아자동차에서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싶어한다"고 주장했다. 최 실장은 "우리의 요구는 있는 법을 지켜달라는 것"이라며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25일부터 물과 식사 반입 사실상 중단


현재, 이들의 처지는 무척 답답하다. M애드넷이 이들을 상대로 6억7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법원에서 M에드넷의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농성하면서 하루에 100만 원씩 M애드넷에 지급해야 한다. 농성이 길어질수록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법원 판결문을 근거로 M에드넷은 지난 25일부터 식사 반입조차 가족에 한해 허용하고 있다. 또 조합원을 포함한 관계자들의 농성현장 출입도 사전 허가를 요구하는 등 농성자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25일부터 식사와 음료 반입마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생계 문제로 인해 가족들이 농성장에 도저히 올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 실장은 26일 기자와 통화에서 "가족들에게 매 끼니 식사 전달을 책임지라는 것은, 사실상 굶어 죽으라는 으름장이다. 너무나 잔인한 보복"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농성현장에서 만난 M애드넷 관계자들은 "농성자들이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으면서 황제농성을 하고 있다"며 "죽을 각오로 올라갔으면 더 위험한 데로 가는 게 맞다. 여기만큼 편한 데가 없다"고 비아냥거렸다. 인권위 건물관리회사 관계자는 "잘 먹어서 그런지 (농성자들이) 살이 쪘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대로 고공 농성자들이 편하게 농성하는 건 아니다. 한규협씨는 <오마이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다, 좁아서 운신을 못 하니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한씨는 "난간도 없고 좁다 보니 잠을 깊이 자지 못한다. (떨어질까 불안해) 자다가 깜짝깜짝 깬다"고 설명했다.

최 실장은 "살이 찐 것이 아니라 고공농성 40여 일이 지나면서 심하게 부은 것"이라며 "심한 부종이 걱정돼 의사가 올라가서 피를 뽑고 건강검진을 했다"고 설명했다. 건강검진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문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정몽구 회장뿐"

 최종원 고공농성 상황실장, 농성 천막에서 숙식을 해결 하면서 고공 농성자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최종원 고공농성 상황실장, 농성 천막에서 숙식을 해결 하면서 고공 농성자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이민선

최정명씨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비쳤다.

최씨는 "5월에 기아차 정규직 노조가 사측과 합의한 내용을 보고 너무 놀랐다. 법원판결은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인데, 노조가 합의한 내용은 신규채용, 그것도 2년에 걸쳐 나눠서 한다는 내용"이라며 "그동안 항의도 하고 집회도 해 봤지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 올라왔다. 정규직 비정규직이 단결해서 정규직 쟁취했다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도록 정규직들이 힘써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규협씨는 고공농성을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한씨는 "공장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집회도 해봤고, 소송도 했고, 부분파업도 했다. 그런데 해결이 안 된다. 시민들에게 알려지지도 않았다. 노조에서 합의한 것을 마치 다 해결한 것처럼 언론이 보도했는데, 정말 답답했다"며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올라왔다. 인권위 옥상에서 농성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정몽구 회장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이 직접 나서지 않는 한 기아자동차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 실장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실질적인 현대·기아차 총수인 정몽구 회장"이라며 "정 회장의 한남동 집 앞에서 농성도 했고 고발도 했는데 꿈쩍도 안 한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오는 27일부터 30일까지 정 회장 집 앞에서 농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실장 역시 9년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해 왔다.

"고공농성 50일째 다가오지만, 사측 답변 없어..."

 천막농성장 앞에 있는 고공 농성자들 사진
천막농성장 앞에 있는 고공 농성자들 사진유혜준

고공 농성자들과 같은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기아자동차 전체 노동자 3만4000여 명 중 10%인 3400여 명이다. 이 중 노조에 가입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2800여 명이다.

지난 10년 동안 기아자동차는 비정규직 보호법의 허점을 이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내하청'이란 이름으로 고용해왔다. 위장된 도급 관계를 이용해서 직원을 채용했고, 이를 빌미로 기아차 직원이 아닌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법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손을 들었다. 지난해 9월, 법원은 기아차 광주(전라도)·화성·소하리 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514명이 기아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확인 청구소송'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468명을 입사 후 2년이 지난 시점부터 정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사내하청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 판결은 사실상 전원 승소 판결이다. 일부가 기각된 것은 이미 정규직으로 채용돼 중간에 소송을 취하한 경우와 갑작스레 사망한 경우, 입사 2년 미만이라 판결할 필요가 없는 경우뿐이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기아자동차는 이들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있다. 기아차 정규직이 다수인 기아차노조는 지난 5월, 사측과 정규직 전환 대상자 465명을 2년에 걸쳐 신규채용하기로 합의했다. 소하분회는 합의를 수용했다. 그러나 화성·광주분회는 "그동안의 불법에 면죄부를 줄 수 없다"며 반발, "법원 판결대로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 6월 11일, 상경해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고공 농성 50일째가 다가오지만, 사측에서 아무런 답변이 없어, 이들의 농성이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규협, 최정명씨는 "법원 판결 취지에 맞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실질적인 방안을 회사가 제시하기 전까지 내려가지 않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고공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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