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이후 급증한 가이드, 그들에게 무슨 일이?

중국 동포 작가 금희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

등록 2015.11.30 15:51수정 2015.11.3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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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가이드 직업을 바꿀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지요. 한때 돈 좀 번다고 그 재미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으니까요."

한 달여 전 베이징 여행을 진행하던 박 가이드가 여행 막판에 푸념처럼 나에게 던진 말이다. 그는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 내로라하는 학벌인 옌변과학기술대를 나온 후 돈벌이가 된다는 말에 가이드 세계에 들어섰다. 가이드로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한 회한이 밀려오는 듯 했다.


a 세상에 없는 나의 집 표지 중국 동포 작가 금희의 소설은 이 시대 노마드적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수작이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 표지 중국 동포 작가 금희의 소설은 이 시대 노마드적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수작이다 ⓒ 창비

마흔 줄에 들어선 박 가이드만이 아니다. 기자가 베이징에서 여행사를 할 때 일하던 영훈이도 비슷한 나이다. 그리고 얼마간 내 마음을 애잔하게 녹인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의 작가 금희도 1979년생이다. 이 시대에 태어난 중국 동포(중국 명칭 조선족)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앞 세대에게 일본 식민지 지배나 한국 전쟁이 가장 큰 변화의 계기라면 이들 세대에게는1992년 한중수교가 가장 큰 변화의 소용돌이가 됐다. 10대 중반쯤 되던 시기에 불어닥친 한국 열풍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부모와 생이별하는 계기가 됐다.

친척이 있는 아이의 부모는 한국으로 갔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한국 사람이 진출하는 베이징이나 톈진, 칭다오, 선양 같은 도시로 갔다. 다른 지역으로 학교를 갈 수 없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고향 마을에서 조부모들과 생활해야 했다. 비싼 비행기 값 등을 이유로 부모가 집을 찾아오는 일은 갈수록 뜸해졌고, 더러는 멀리서 부모의 이혼 소식을 들어야했다.

부모가 보내온 돈으로 쓸 돈은 많았지만 부모의 손길이 없다는 것은 큰 상실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도 한두 명씩 고향을 떠나자 조선어로 수업이 진행되던 학교는 한족 학교로 변모해갔다. 처음에는 돈으로 우쭐대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많은 아이들이 가이드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가이드라는 직업은 그다지 녹록치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손님들에게 넉살좋게 물건을 팔아야했지만 그것도 성격이 되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물건을 많이 팔아 커미션이 많은 날에는 얼굴이 밝아지고, 물건을 사지 못해 울상이 되는 날에는 얼굴이 어두워지는 아수라 백작과 같은 자신들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흔 전후가 됐다.


중국 동포 작가 금희의 소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은 이 시간대와 같이 하기에 나에게 그 만큼 공감의 폭이 컸다. 아니 공감이 아니라 이것은 동일시인지도 모르겠다. 기자 역시 2008년 갑작스러운 일로 귀국하지 않았더라면 '새로운 조선족'인 신선족으로 갈 것이다.

이미 옌볜 지역에 남은 중국 동포랑 비슷한 숫자인 100만명의 한국사람이 '신선족'으로 살고 있다. 갈수록 돈벌이 할 일은 줄어들지만 그렇다고 한국에 귀국해도 별다른 일거리가 없다.


이런 운명들을 가리키는 가장 멋진 말은 이 소설집 마지막 제목에도 쓰인 '노마드'이다. 유목민. 다르게는 평에 쓰인 '디아스포라'라는 말도 있다. 다만 디아스포라가 유대인에 집중되어 있고, 부정적 의미가 깊은 만큼 '노마드'가 휠씬 더 중국 동포들의 삶은 상징하기에 좋은 말이다.

소설집 속 인물들은 작가와 동시대 속을 살아가는 중국 동포 청장년층의 삶과 더러는 탈북자로 불리는 조선사람들의 생활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미 황석영의 '바리데기' 등을 통해 탈북자의 삶이 나오고, 한 측면만 보이지만 종편을 통해 그들의 삶이 나오는 만큼 낯설지 않다.

어떻든 이들의 삶은 한중수교라는 1992년을 통해 큰 격변을 겪었고, 그 시간을 자신이 체화해서 나름대로 인생이라는 변주 속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투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노마드'일 수밖에 없다는 자연스러운 숙명을 받아들이는 측면이 강하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소설이기도 하지만 사회학적 색채도 강하다는 것이다. 우선 동포들이 떠나면서 그 자리를 채우는 한족과의 크고 작은 경쟁의식이 눈에 띈다. 1850년 즈음 시작된 대기근부터 이 지역에 넘어가 가꾸었던 1세대들의 땅은 이제 모두 한족들이 그 사용권을 갖는 상황이다.

더욱이 그 지역들은 장지투계획(장춘, 지린, 투먼을 연결하는 개발계획)을 만나면서 부동산 열기도 올라가고 있는데, 그 혜택은 동포들이 아닌 그 땅의 새 주인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동포들은 한국과 대도시에 나가 열심히 벌었다지만 집 한 채 사기도 힘든 경우가 많아 묘한 상실감을 갖는 경우도 많다. 이런 느낌은 '월광무'의 유라는 인물의 감정을 통해서 여과없이 보여지는데, 필자도 100% 공감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작가가 믿는 것은 민족, 시대, 빈부를 넘어서 사람이다. 자신은 쓰레기 통의 쥐처럼 살지만 거짓되지 않고, 진실하게 살고 싶다는 량씨처럼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진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 싶어하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는 이런 힘을 이문구 등을 통해 봐왔기에 낯설지도 않다.

그리고 우리가 금희라는 작가를 더 주목할 부분은 그녀가 앞 대들처럼 한국전쟁이나 이데올로기라는 상처보다는 우리 민족은 물론이고 중국이라는 요소를 안은 유전적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약학에서 항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그렇듯 순수한 단일 요소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문학이나 시대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인데, 금희는 한국은 물론이고, 북한, 중국 등을 골고루 소재 안에 갖고 있는 드문 작가다.

그리고 작가는 그것을 에둘러 말하지도 않고 직접적으로 말할 줄 안다는 점에서 반갑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주 중국행은 흥미로운 발견이 있기도 하다. 과거 동포 가이드들은 한국 손님을 보면서 저자세로 이야기를 하고, 쇼핑을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가이드는 자신들의 생각과 말을 굳이 지나치게 겸양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던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처음으로 만난 젊은 중국 동포 작가의 소설은 너무 흥미로운 상상을 줬다. 필력과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만큼 그녀가 이문구 작가 이상으로 더 큰 발전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

금희 지음,
창비, 2015


#금희 #중국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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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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