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탈 이클립스'에서 프랑스 시인 랭보(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동성애 연인 베를렌느(데이비드 듈리스)가 격정적으로 입맞추는 모습. 그들은 관습과 전통을 벗어나야 한다는 문학적 감성을 찾기 위해 동성애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영화 '토탈 이클립스'
하지만 결국 랭보는 아내와 가정이 있는 베를렌느를 떠난다. 베를렌느는 그를 떠나지 못하게 막는다. 아직도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랭보는 새로운 시상(詩想)을 찾아 멀어져간다.
둘의 애틋한 이별에 비하면 오하라가 다케우치의 별리는 추하다. 다케우치가 오하라에게 안긴 상처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파괴할 정도로 아픈 상흔이 결국 저주와 협박으로 끝난 것이다. 영화보다 처절하고 지저분한 것이 현실이라는, 잊고 있던 진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다케우치의 눈에는 핏발이 섰다.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한다.
세상에는 비밀은 없다. 비밀은 관념만 있을 뿐이지 비밀이라고 누군가가 말하거나 규정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텔라의 아버지 엔도 아키라가 명예본부장을 하고 있는 전일공동체본부 김원택 도쿄 지부장이 후쿠시마로 향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복구를 감시하고 있는 동북지부에서 이상한 보고가 들어와 확인 차 방문하기 위해서다. 동북지부의 환경감시반 보고에 따르면, 방호복을 입지 않은 일단의 사람들이 방사능 오염 지역 복구 작업에서 나온 의복과 장비를 분류하고 적재하는 광경이 수차례 목격됐다는 것이다. 요즘은 오염된 흙을 퍼 나른다고 한다.
감시반의 책임자가 이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으나 무장을 한 육상자위대원 복장의 감시원들은 이에 대한 설명은커녕 접근조차 막았다는 내용이었다. 분명히 방호복을 착용한다 해도 방사능 피폭지역에서 작업을 꺼려 현장의 복구 작업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래도 특이한 사례고, 작업하는 사람들의 건강이 우려된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처음 발견된 것은 한 2주 전입니다. 그 이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이면 어디선가에서 차량으로 작업자들을 태우고 나타나 작업을 하다가 오후 늦게 철수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 지난주에는 목요일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요. 화요일인 오늘은 벌써 나타나 작업 중에 있습니다."환경감시반 책임자의 안내에 따라 작업장으로 몰래 접근했다. 보고된 것처럼 감시원들은 방호복을 입었지만 작업자들은 방호복도 없이 작업을 하고 있는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원택은 망원 렌즈를 통해 여러 컷 사진을 찍었다. 영락없이 감옥이나 수용소 같은 곳에서 나온 작업자들 같이 보인다. 사진이 그 장면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다. 작업자들은 한눈에 봐도 작업하기 싫어하는 표정과 약간은 겁먹은 얼굴이 역력하다. 이럴 때는 직접 부딪혀 보는 게 상책이다. 작업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저기요. 어디서 나온 분들이십니까?"방호복을 입은 감시원이 김원택을 제지한다.
"접근하지 마십시오. 작업 중 접근 금지입니다.""알았어요. 그런데 어디서 오셨냐고요? 저희들은 이곳 방사능 피폭지역의 복구를 감시하고 있는 전일본공동체본부 산하 감시반입니다.""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돌아가세요!""아니, 일본 국민이 어디를 가든 당신들이 오라 가라 할 일은 아니잖아요!""동북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재소자들입니다. 그러니 그만 돌아가세요. 재소자들의 작업 공간에는 민간인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그렇다 치고.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은 방호복도 입지 않고 작업을 합니까? 감시하는 사람들과 차량 운전자까지 모두 방호복을 갖춰 입었는데?""더 이상 아무 것도 답해 줄 수 없습니다. 돌아가세요!"자칫하면 공무집행 방해 운운하면서 총으로 제지할 분위기다. 김원택은 이제 철수하자는 뜻을 눈으로 전달한다.
김원택은 가까운 후쿠시마 감시반 사무실로 한달음에 달려간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에 접속한다. 동북수용소를 검색한다. 그러나 동북수용소라는 공식적인 곳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도쿄의 본부에 전화를 해서 법무성과 경시청에 있는 지인을 통해 수소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역시 마찬가지 답이었다. '동북수용소'라는 이름과 비슷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공식적인 기관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원택은 전일본공동체본부 사이트에 로그인한다. '시민기자' 카테고리에서 지금까지 입수한 내용과 사진을 기사로 올린다. 현장의 대화 내용 영상도 편집을 마쳤다. '후쿠시마 방사능 피폭 현장동북수용소 수감자들, 방호복 없이 작업'이라는 제목을 단다.
같은 내용을 '야후 재팬' 게시판과 뉴스, 그리고 여러 블로그에도 올린다. 아울러 공동체본부 사이트에 '전회원, 방호복 없는 방사능 작업 기사 및 게시판 게재, 긴급-대량 전파 요청!'이라는 내용의 알림 팝업을 설정한다.
낚싯대를 모두 던져 놓은 김원택은 한숨을 돌리며 담배를 입에 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한 일이다. 건강이라는 문제에는 온 일본 사회가 극성을 부린다. 중국으로부터 한국을 거쳐 황사가 온다든지, 유행성 독감 소식이라도 들리면 미세먼지를 걸러주는 마스크다, 손에서 독감 바이러스를 제거한다는 '핸드젤'이다 뭐다 소란을 떠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모르는 동북수용소라는 곳의 재소자들이, 방호복도 입지 않고 방사능 오염지역에서 잔류 방사능이 잔뜩 묻은 옷과 장비들, 그리고 오염된 흙을 정리 작업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문을 지우지 못한 김원택은 도쿄로 돌아간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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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Bella Vita! 인생은 아름답다며, 글쓰기로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세계일보, 머니투데이, 한경비즈니스, 이코노미조선 등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2019년 '아산문학' 공모전에서 '그는 제바닷타였을까'라는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고, 전업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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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라면 기겁을 하는 일본인들인데...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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