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 후 강당으로 향하는 길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에 유가족들은 연신 떠나보낸 자식들 같다며 눈이 붉어졌다.
서부원
살아있다면 대학생이 됐을 형과 누나들의 영정 앞을 아이들은 건성으로 지나치지 못했다. 일일이 얼굴을 마주하고, 탁자 앞에 놓여있는 물건들의 의미와 사연들을 하나하나 읽어갔다. 그래선지 200여 명이 동선을 따라 일렬로 분향하고 나오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이따금 울컥해 훌쩍이는 아이도 있었고, 분향소 밖에서 기다리던 유가족들의 눈시울도 함께 붉어졌다.
바로 그때,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춰 맨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분향소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분향소를 가득 메운 고등학생들의 추모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숙연한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분주히 움직였다. 사실 분향소 안에서는 영상과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유가족들이 황급히 달려와 카메라 앞을 막아섰고, 그들은 이내 사과하며 순순히 물러났다.
안산으로의 봄 소풍을 결정하기 전 가장 걱정했던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것조차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버젓이 왜곡시키는 '기레기' 언론들이 득시글거리는 현실에서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조차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에게 어떤 꼬투리도 잡혀서는 안 된다며 각별히 신경을 썼다.
유가족들에게도 사전 양해를 구했고, 자신들도 익히 겪어온 바라면서 공감했다. 사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에 노력하고, 영원히 기억하려는 건 그 자체로 교육의 본령이자 교사의 소명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보수 언론들에 의해 조장된 어처구니없는 '편견'에 주눅이 든 채, 되레 '오해'를 걱정하며 스스로 몸을 사리는 모습이 교사로서 솔직히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웠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에 아무런 대가도 없이 헌신한 사람들이 느닷없이 '종북 세력'으로 낙인찍히고, 심지어 서울 은평구에서 출마한 여당 후보는 '세월호 점령군' 운운하며 그들을 능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이라고나 할까. 국가의 당연한 책무인 진실 규명조차 유가족들이 온갖 손가락질을 견뎌 가며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