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도 글 쓸 수 있다구요"

최용탁 작가와 함께 한 단양군정보화농업인연구회 '농민 글쓰기 강좌'

등록 2016.07.12 11:57수정 2016.07.1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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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최용탁 작가의 농민 글쓰기 강좌 단양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단양군정보화농업인연구회 농민 회원들과 4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최용탁 작가의 농민 글쓰기 강좌 단양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단양군정보화농업인연구회 농민 회원들과 4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 유문철


지난 7월 1일 충북 단양군 농민들이 충주에서 22년째 농사지으며 글 쓰는 최용탁 작가를 단양군 농업기술센터에 초청했다. 최용탁 작가를 초청한 단양군정보화농업인연구회(회장 유문철)는 농촌진흥청에 정식 등록된 품목연구회이자 강소농 자율모임체이다. 올해 12회에 걸쳐 SNS 자율학습을 진행 중이다. 8회차 '정보화농업인 글쓰기 강좌'편에서는 단양과 가까운 충주에 사는 최용탁 작가를 글쓰기 강사로 초청했다. 이날 15명의 단양군 농민이 참석한 가운데 단양군농업기술센터 2층 회의실에서 4시간에 걸친 '농민 글쓰기 강좌'가 열렸다.

단양군정보화농업인연구회는 지난해부터 한 해에 18번 정도 농사짓는 사진 찍고 글을 덧붙여 영농일기를 쓰는 수업 프로그램을 짜서 지금까지 공부해왔다. 농사일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한 달에 한두 번 저녁에 농업기술센터에 모여 김밥 먹어가며 주경야독을 해왔다.

회원들은 대부분 성실히 출석해서 공부했다. 몇몇 회원들은 큰 발전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회원들은 어려워했다. 농사일하다 사진 찍는 것도 힘들고, 작은 스마트폰으로 글 쓰는 건 더 어렵다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글 쓰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유기농 사과농사 짓는 한연수 농부의 말이다.

"말로 하라면 밤 새워도 하겠는데유. 자판기만 보면 머리가 하얘져유."

맞다. 글쓰기는 말보다 훨씬 어렵다. 강의에서 최용탁 작가는 동료 농부가 호소하는 어려움에 공감하며 오랜 농사 경험에서 나온 해법을 제시한다.

"농촌 풍경을 그대로 쓰기만 하면 된다"

a 농민 글쓰기 강의 중인 최용탁 작가 충주에서 22년째 농사 지으며 글을 쓰는 최용탁 작가는 농민의 눈높이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농민 글쓰기 강의 중인 최용탁 작가 충주에서 22년째 농사 지으며 글을 쓰는 최용탁 작가는 농민의 눈높이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 유문철


"글쓰기는 전문작가인 저도 솔직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를 잘 하려면 다독, 다사, 다작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아야 하는 것이 맞아요. 하지만 제가 오래 농사짓고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이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 특히 농사짓는 농민들의 글쓰기는 쉽습니다.


오늘 강의 교재인 제 산문집 <사시사철>을 봅시다. 원고지 열매 정도의 짧은 농사일기인데요. 여기 여러분들이 이해 못할 말 하나 없고, 우리가 시골에서 농사짓고, 경험하고, 느끼는 얘기들이지요. 우리 농사꾼들의 경험은 전 국민의 1%만이 경험하는 특별한 것이에요. 도시인들은 우리 농사꾼들이 직접 쓴 생생한 글을 좋아합니다.

제 첫 소설이자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단풍 열 끗>은 제가 사는 충주 산척면의 농협조합장 선거운동에서 벌어진 천태만상을 거의 있는 그대로 쓴 글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로 문학상을 받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이 소설엔 도시인들이 잘 모르는 농촌의 현실, 그리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남아있는 농촌의 풍경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블로그 글을 봅시다. 단양힐링사과농원 김성윤님의 <새알 다섯 개>란 글을 보고 감명 받았어요. 전문작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글입니다. 사과밭에서 풀 깎다 발견한 새집과 새알 다섯 개를 보고, 다섯 남매를 떠올리며 새집을 보호하는 이 글 대단합니다. 꾸밈이 없고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쓴 글이 큰 감동을 줍니다.

<새알 다섯 개> 김성윤, 단양힐링사과농원

어제 밭둑 풀 깎기를 하던 중에 새알 다섯 개를 발견했습니다. 농장 주변에 약을 치지 않으니 새들고 둥지를 틀었네요. 어떤 새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마 알을 품던 중 풀 깎는 소리에 놀라 품던 알을 두고 잠시 자리를 피한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도 5남매인데 이 새도 다섯 개의 알을 품고 있네요. 다섯 개의 알 잘 부화할 수 있도록 새집 주변에 풀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하략-
글은 내가 재미있어야 읽는 사람도 재미있습니다. 그러려면 현장의 느낌이 살아 있으면 좋습니다. 어상천에서 오신 단양진흥사과원 김순화님이 예천온천 다녀온 글 참 좋습니다. 글쓴이가 신명 나서 한 번에 쭉 써내려간 겁니다.

<경북 예천온천> 김순화, 어상천진흥사과원

우선 영주에서 맛난 고기로 점심을 먹고 그곳에서 가깝다는 예천 온천을 갔습니다. 우리나이 때는 온천이 좋습디다. '예천온천' 전 노천탕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여. 와, 욕탕 안에는 앉을자리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여ㅋ. 바가지 찾으러 온통 헤집고 다녔다지여~(절대 상상은 하지마세여~ 15세미만 불가입니다~)

우야든동(어떻게 하던지) 친구와 저는 대충 샤워 후에 노천탕으로~ 사실 노천탕 언젠가 기억도 가물거리는 시절에 한번 그리곤 처음이었으니까... 신기 방기 했어여. 많은 분들이 추위도 아랑곳없이 의자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듯 누워 있는 분들, 주위의 푸른 소나무 숲을 느끼려는 듯 눈 감고 명상하는 분들, 그리고 우리처럼 물속에 들어가서 마냥 해실거리는 분들...ㅎ

친구하고 저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수다삼매경~~ 그 속엔 남편 흉~ 자식 흉~ 옆에 없는 친구흉~ 에휴~ 속이 시원했습니다. 역쉬~ 수다는 스트레스를 날리는데.. 최곱니다...

웃기는 건 바로 옆에 '사진촬영금지.' 누가 이런 곳에서 사진을 찍을까여?
글 하나 더 볼까요. 단양갑자사과농원 윤영화님이 쓴 글 <적과 14일째>라는 글입니다. 이 글을 보고 전 이 농부가 사과나무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도 빼어나지만 글 속에 이런 느낌이 배어 있어요.

<적과 14일째> 윤영화, 단양갑자사과농원

올해는 유난히 바쁘다. 온난화 영향으로 꽃도 빨리 피고 사과도 엄청 빨리 피는 느낌이다. 주변 농가들은 벌써 적과작업을 끝내고 봉지 싸는 작업을 한다. 나야 봉지 쌀 일이 없으니 느긋하게 적과작업 중이다. 가지마다 앵두처럼 사과가 달렸다. 이 나무는 매년 다른 나무보다 두 배가 달린다. 그래도 사과는 젤 굵다. 말끔히 솎아내면 그 많던 사과는 몇 개 보이지 않는다. 눈여겨보면 겨우 보일까^^ 여긴 가지 끝이 포도송이처럼 많이 달렸다. 두어 개 남기고 싹뚝.. 아.. 손도 아프고 팔도 아프다. 올해도 사과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왕 먹는 거 맛있는 단양사과 먹자.
자, 제가 여러분들의 블로그 글들을 다 읽어 보지 못했지만 지금 보셨듯이 여러분들은 이미 글을 잘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스스로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써보겠다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해보세요. 그러면 쓰게 되고, 쓰다 보면 지금 보신 것과 같은 좋은 글이 나오게 됩니다."

a 단양군정보화농인연구회 '농민 글쓰기 강좌' 연구회 최고령 회원인 72세 송원배 회원이 최용탁 작가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단양군정보화농인연구회 '농민 글쓰기 강좌' 연구회 최고령 회원인 72세 송원배 회원이 최용탁 작가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 유문철


a '농민 글쓰기 강좌' 중인 최용탁 작가와 단양군정보화농업인연구회원들 15명의 농민과 동료 농민인 최용탁 농민작가가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느낀 그대로' 글쓰기 하는 '농민 글쓰기' 방법을 토론하고 있다.

'농민 글쓰기 강좌' 중인 최용탁 작가와 단양군정보화농업인연구회원들 15명의 농민과 동료 농민인 최용탁 농민작가가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느낀 그대로' 글쓰기 하는 '농민 글쓰기' 방법을 토론하고 있다. ⓒ 유문철


최용탁 작가는 회원 농민들의 글을 함께 읽으며 칭찬을 했다. 참석한 15명의 회원 글을 하나씩 모두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3명의 글을 한 꼭지씩 뽑아 함께 읽으면서 평론을 했다. 칭찬을 받은 회원들은 눈이 반짝거리고 자부심을 느꼈다. 그동안의 주경야독이 고생이 헛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현직 작가를 초청한 농민 글쓰기 수업은 단양군 농업기술센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선례가 없고 규정이 미비하다 보니 결재라인에 일일이 설명하고 강의 교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김선영 담당 지도사가 어려움이 많았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강사료 책정에는 학위, 경력, 지명도 등이 반영된다. 최용탁 작가는 지명도 높은 작가이자 <한국일보> 고정 칼럼리스트인데도 강사 기준에서는 레크리에이션 강사 등급의 기타 강사로 분류될 뻔했다. 문학인, 예술인에 대한 규정이 미비해서다. 농업기술센터 김선영 지도사는 작가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최용탁 작가의 <한국작가회의> 수첩을 자격증으로 대신해서 2급 강사로 등급을 올렸다.

a 최용탁 작가의 산문집 <사시사철> 저자 사인 '농민글쓰기 강좌'를 마치고 교재로 사용된 최용탁 작가의 농촌 산문집 '사시사철' 저자 사인회 시간을 가졌다.

최용탁 작가의 산문집 <사시사철> 저자 사인 '농민글쓰기 강좌'를 마치고 교재로 사용된 최용탁 작가의 농촌 산문집 '사시사철' 저자 사인회 시간을 가졌다. ⓒ 유문철


앞으로 농민 글쓰기 강좌를 연속강좌 또는 연중 강좌 형식으로 넓히는 것이 단양군정보화농업인연구회의 구상이다. 농민들의 삶을 농민 스스로 기록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SNS라는 좋은 도구가 있으니 기록하고 공유하기도 쉽다. 천연기념물 같은 농민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들려주는 건 최용탁 작가의 강의대로 콘텐츠로서 훌륭한 가치가 있는 시절이다.

우리나라 방송과 언론은 농촌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심지어 크게 왜곡하기도 한다. 현재 방송은 미담 위주, 과장된 음식 요리를 천편일률적으로 담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도시인들에게 농촌 현실에 대해 거짓정보를 보낸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이를 답답해하는 농민들이 스스로 글을 쓰고 사진 찍어 농촌의 진면목을 세상에 알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해 처음 시행한 '농민 글쓰기 강좌'는 전국에서 많은 농민 작가와 기자를 탄생시키는 첫 단추이다.
덧붙이는 글 유문철 시민기자는 단양군정보화농업인인연구회 회장으로 농민글쓰기 강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단양군정보화농입인연구회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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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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