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지우기에 맞선 마지막 기억교실 '순례'

[현장] 단원고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

등록 2016.08.20 10:36수정 2016.08.2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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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후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을 위한 ‘기억과 약속의 밤’ 전야제가 시작되기 전 2학년 7반 416기억교실 모습. 희생학생의 유품이 담긴 보존상자가 책상과 걸상 위에 놓여 있다. 보존상자 위에는 국화꽃 한 송이가 희생학생들을 추모하고 있다.
19일 오후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을 위한 ‘기억과 약속의 밤’ 전야제가 시작되기 전 2학년 7반 416기억교실 모습. 희생학생의 유품이 담긴 보존상자가 책상과 걸상 위에 놓여 있다. 보존상자 위에는 국화꽃 한 송이가 희생학생들을 추모하고 있다. 박호열

"416기억교실과 교무실, 희생 학생과 선생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2년 하고 4개월을 매일같이 다시 시작하는 세월호 유가족을 기억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견뎌내는 것, 그것을 넘어서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오늘 단원고 운동장에서 기억을 다시 한번 약속하는 시간, 우리는 4월 16을 다시 시작하는 이 밤에 약속합니다."
- 기억교실 임시이전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 중에서

세월호 참사 867일째인 지난 19일 오후. 어둠이 사위를 파고들어도 좀체 기세가 꺾이지 않는 무더위에도 사람들이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교사들이 생전에 사용하던 단원고 416기억교실과 교무실이다.

시민들은 기억교실과 교무실 구석구석을 '순례'했다. 하지만 이날 순례는 여느 순례와 달랐다. 단순한 추모도, 단순한 약속도 아니었다. 이들의 순례는 망각에 대항하는 행동이자 세월호 지우기에 맞선 저항이며, 다시 침몰하려는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한 거역의 순례였다.

2학년 1반부터 10반까지 기억교실의 희생학생 유품과 추모물품은 보존상자에 담겨 책상 위에 놓였다. 상자 위에는 국화꽃 한 송이가 놓여 있다. 책상, 의자, 교탁 등도 포장 작업을 마쳤다. 시민들은 보존상자와 책상, 의자 등을 어루만지며 2년 전 그날의 참사를 가슴에 각인했다. 

2학년 5반에서는 1학년 후배 여학생들이 칠판에 선배의 이름을 쓰고 또 썼다. 학생들은 "내일 학교를 떠나는 오빠와 언니들에게 우리가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세월호 기억투쟁은 우리의 미래를 열어가는 희망"

 19일 오후 단원고 운동장에서 열린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추모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이 유가족, 재학생, 학부모, 시민 등 1천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전야제를 함께 한 시민들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19일 오후 단원고 운동장에서 열린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추모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이 유가족, 재학생, 학부모, 시민 등 1천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전야제를 함께 한 시민들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박호열

 19일 오후 단원고 운동장에서 열린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추모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에서 마임이스트 조성진이 시인 안상학의 시 ‘엄마 아빠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에 맞춰 마임공연을 하고 있다.
19일 오후 단원고 운동장에서 열린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추모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에서 마임이스트 조성진이 시인 안상학의 시 ‘엄마 아빠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에 맞춰 마임공연을 하고 있다.박호열

416가족협의회, 4·16연대, 416안산시민연대, 한국종교인평화회의, 경기도교육청, 단원고 공동주최로 단원고 운동장에서 416기억교실 임시 이전 추모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이 단원고 운동장에서 열렸다. 유가족, 재학생, 학부모, 시민 등 1천여 명이 참여했다.


전야제는 노래패 우리나라의 <다시 광화문에서>에 이어 묵상으로 막을 올렸다. 김영주 한국종교인평화회의 회장(목사)은 "세월호는 우리 민족에게 미래가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고칠 것인가 다시금 되풀이하지 말자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왜곡된 현실은 '뤼순'을 '하얼빈'이라 하고, '정부수립일'을 '건국일'이라고 한다. 또 안보로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그만하자, 기억하지 말자고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기억 투쟁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살리는 것으로 세월호를 기억하고 되살리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우리의 희망이다. 기억 투쟁을 더 이상 놓치지 말기 바란다. 기억 투쟁은 우리의 미래를 열어가는 희망이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마임이스트 조성진은 영화 <교실>을 배경으로 안상학의 시 '엄마 아빠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에 맞춰 공연을 시작했다. 어린 학생의 내레이션에 맞춰 그는 자신의 몸을 깨웠다. 몸짓과 표정으로 말하는 마임 공연으로 희생 학생·교사와 산 사람의 소통을 표현했다.

짐짓 신명에 겨운 듯, 텅 빈 마음에 깊이 잠긴 듯, 허랑하게 흔들리는 몸짓의 언어 하나하나에서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신산한 세월호를 따듯하게 어루만지는 듯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단 한마디의 말도 없지만 그의 손가락 끝, 몸짓 하나에서 '기억과 약속'을 읽어내고서는 고개를 주억거렸고, 두 손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해인아, 민지야, 민희야" 애끓는 단원고 희생 학생 이름 부르기

 19일 오후 단원고 운동장에서 열린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추모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에서 이날 사회를 맡은 가수 홍순관이 희생학생 250명의 이름을 차례대로 부르고 있다.
19일 오후 단원고 운동장에서 열린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추모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에서 이날 사회를 맡은 가수 홍순관이 희생학생 250명의 이름을 차례대로 부르고 있다. 박호열

 19일 오후 단원고 운동장에서 열린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추모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에서 이날 사회를 맡은 가수 홍순관이 교사 11명의 이름을 차례대로 부르고 있다.
19일 오후 단원고 운동장에서 열린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추모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에서 이날 사회를 맡은 가수 홍순관이 교사 11명의 이름을 차례대로 부르고 있다. 박호열

 19일 오후 단원고 운동장에서 열린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추모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에서 나희덕 시인이 자신의 시 ‘난파된 교실’을 낭독하고 있다.
19일 오후 단원고 운동장에서 열린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추모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에서 나희덕 시인이 자신의 시 ‘난파된 교실’을 낭독하고 있다. 박호열

이어 단원고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기록한 '함께 했던 이 교실도 영원히 잊지 않을게'가 상영됐다. 이날 전야제 사회를 맡은 가수 홍순관은 2학년 1반 '해인'이부터 10반 '혜원'이까지 희생 학생 250명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함께 아이들의 이름을 따라 부르던 시민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발을 동동거리며 다시 눈물을 쏟아 냈다. 교사 12명을 부르는 것으로 이름 부르기는 끝났다. 전야제 현장은 비장한 슬픔에 젖은 채 한동안 애끓는 울음소리만 계속됐다.

나희덕 시인(조선대 교수)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시 '난파된 교실'을 낭독했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중략) 움직여라, 움직여라, 움직여라, / 누군가 이 말이라도 해주었더라면 / 몇 개의 문과 창문만 열어주었더라면 / 그 교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략) 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 유리창을 탕, 탕, 두드리는 손들, /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전명선 위원장 "도교육청, 416기억학교 운영 계획, 예산안 없다"

 19일 오후 단원고 운동장에서 열린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추모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에서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전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시민 여러분이 끝까지 함께 해 달라”고 호소했다.
19일 오후 단원고 운동장에서 열린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추모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에서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전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시민 여러분이 끝까지 함께 해 달라”고 호소했다.박호열

전야제의 마지막은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발언으로 마무리됐다. 전 위원장의 목소리는 이날따라 유독 떨렸다. 시민들은 전 위원장의 말에 손으로 입을 막고 조용히 흐느꼈다.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단원고 기억교실을 역사의 장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지켜내지 못하고 버텨내지 못해 미안합니다.

제가 수 없이 되뇌는 게 있습니다. 우리 아이와 가족들을 빼앗겼지만 그 죽음을 기반으로 안전한 교육의 장이 만들어질 때까지 울지 않겠노라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 찬호를 잃고, 찬호를 보내는 날에도 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울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만들 때까지 그리고 저희가 죽기 전까지는 어떠한 세력과 어떠한 정부도 저희들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끝까지 함께해 주십시오."

이 자리에서 전 위원장은 한국종교인평화회의의 중재로 416가족협의회와 경기도교육청, 단원고 등이 기억교실 이전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것과 관련 문제를 제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20일로 예정된 기억교실 임시이전 이송식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 위원장은 "도교육청 실무단에서 18일 기억교실이 이전하는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의 '416기억학교'의 운영 계획안이 없을 뿐 아니라 예산도 전혀 확보되지 않았다고 전해 왔다"며 "유품 보존 공간도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이런 상태에서 유품을 이송한다는 것은 창고에 옮기는 것 밖에 안 되는 것으로 시민 추모를 위한 프로그램 등 운영 콘텐츠와 예산이 없다면 (이송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결국 교육청이 지금까지 합의해 왔던 사항들을 어기는 것으로 (가족협의회와) 실무회의를 통해 진행했던 내용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것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내일 오전 이재정 교육감이 단원고에 오면 이 문제에 대해 최종 확인을 하고 이송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육감으로부터 운영 계획과 예산 등에 대해 약속을 받아야 이전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것이다.

416가족협의회는 20일 오전에 유품, 기록물, 책상 등을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한시적으로 마련된 '416기억학교'로 임시 이전하는 '다짐의 행진'이 단원고 운동장에서 시작할 예정이다.

기억교실은 2018년 9월 (가칭)416안전교육시설 영구 추모관이 준공되면 다시 옮겨져 영구 보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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