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출신입니다만> 책 표지.
와이즈베리
<문과 출신입니다만>은 그런 측면에서 매우 사심 가득하게 작업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가와무라 겐키는 어느 모로 보나 보기 드문 '성공한 문과 출신'이다. 올해 초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쓴 영화 <너의 이름은>의 프로듀서이자, <고백>, <기생수>, <전차남> 등 굵직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만든 '신의 손'이다.
그런 그도 이과 콤플렉스가 있었던 모양이다. 수학과 물리가 싫어서 문과 대학에 진학했지만, 영화와 소설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이공계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저자의 말이 크게 공감되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곳은 모두 이공계 출신들의 차지인 것 같다면 괜한 자격지심이었을까.
일본어판 원서를 처음 접했을 때 '문과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 기대했다. 혹은 어떻게 하면 이과를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개월 후, 번역되어 내게 전달된 원고의 주요 골자는 문과의 생존 전략보다는 '이과로부터 배우는' 삶의 자세였다. 한 마디로 대략 난감이었다. 안 그래도 서글픈데, 이과의 얘기를 잘 듣고 배우라니! 그런데 저자가 말했다.
'처음에 나는 이과와 문과의 차이를 알려고 했다. 문과에 있고 이과에 없는 것. 이과에 있고 문과에 없는 것. 그 차이를 통해 각각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내려 한 것이다. 그러던 중에 깨닫기 시작했다. '이과와 문과는 똑같은 산을 다른 길로 오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본문 5쪽.
그렇다. 애초에 문과-이과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도 문과든 이과든 피해갈 수 없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말이다. 문과 출신으로 책을 만드는 나와 영화를 만들고 소설을 쓰는 저자, 이과 출신으로 제약연구를 하는 남편이나 게임을 만드는 동창까지 '어떻게 하면 사람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그 답을 향해 각자의 방법으로 묵묵히 길을 간다. 문과인이 정치와 경제, 말과 문장을 통해 '산'을 오른다면, 이과인은 수학, 의학, 공학을 이용해 똑같은 산을 오른다.
"세상 일 중 20퍼센트 정도는 틀렸을지도 모른다."(요로 다케시, 해부학자이자 곤충 연구가), "부전승이야말로 최고의 승리법이며, 우유부단함은 현명함의 상징이다."(가와카미 노부오, 카도카와․도완고 대표이사), "조령모개(자꾸 이랬다저랬다 해서 갈피를 잡기 힘들다)가 최고다."(미야모토 시게루, 닌텐도 전무이사이자 <슈퍼마리오><젤다의 전설> 제작자) 등 참신한 어록도 많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이 뜨끔했던 가르침은 이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외주에 맡기지 말고 반드시 자기 자신이 하라."(다카하시 도모타카, 로봇제작자)피할 수 없다면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아야 상황을 바꿀 수 있다. 2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탄생한 이 책은 이과인이 걸어온 길에서 찾아낸 창의력과 시사점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과 특유의 '건들건들함'(좋은 말로 시크함)이나 엉뚱함은 문과의 세계에도 적용해봄직하다.
요즘 인문계 전공으로 진학했다 하더라도 취업 걱정 때문에 이공계로 편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취업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인문․사회계열 졸업생을 채용하겠다고 답한 기업이 6.8퍼센트였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이미 산의 정상에서는 문․이과의 융합이 진행 중이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국내 취업 현실과 대학의 교육정책이 안타깝다. 이 책을 통해 산의 정상에 더 많은 문과인들이 모이기를 바라본다. 이제, 문과도 흥할 차례다!
문과 출신입니다만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인호 옮김,
와이즈베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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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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