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민 앵커신경민 앵커는 클로징 멘트로 인해 '촌철살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클로징 멘트를 정리하여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구진영
MBC 뉴스와 함께라서 모든 날이 좋았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오후 9시에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가곤 했다. MBC 뉴스데스크를 보기 위해서였다.
9시에 시작하는 뉴스를 처음부터 보고 싶은데 학교가 9시에 끝나니 매번 뉴스 시작 후 20분 정도는 보지 못했다. 그래도 나머지라도 보겠다고 집에 뛰어가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나 MBC 뉴스만 챙겨봤는지 기자 목소리만 듣고도 어떤 기자인지 알 정도였다.
당시 MBC 뉴스의 매력은 앵커가 뉴스 마지막에 하는 클로징 멘트에 있었다. 클로징 멘트가 얼마나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는지 엄기영 앵커가 말했던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라는 멘트를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의 절정은 신경민 앵커의 촌철살인 앵커 멘트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때의 MBC는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뿐 아니라 신영철 대법관 촛불 이메일 파문, 재판 개입 사건 등을 집요하게 파던 송곳 같은 뉴스였다.
그런 MBC 뉴스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신경민 앵커가 갑자기 뉴스데스크에서 내려간 순간부터다. 그때부터 앵커들은 클로징 멘트를 하지 않았다. 하루는 뉴스 첫 꼭지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사고를 전했는데 앵커가 클로징에서 관련 코멘트는 하지 않은 채 그저 활짝 웃으며 시청해주셔서 고맙다는 말만 뱉고 뉴스를 마무리한 날이 있었다. 뉴스가 이상해졌다고 느낀 것은 그때부터였고 그 후론 MBC 뉴스데스크를 잘 챙겨보지 않게 됐다.
방송 제작 인력을 '신천교육대'로 보낸 MBCMBC가 정말 끝났다고 느낀 순간은 그 후에도 자주 찾아왔지만 정말 결정적인 사건은 2012년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이었다. MBC는 선거방송에서 단연 선두주자였다. 2010년 6월 2일 MBC 지방선거 방송은 30~40대 여론 주도층이 압도적으로 시청했다는 조사가 나왔고 최첨단 그래픽 등이 재밌었다며 시청자들이 극찬했던 방송이었다.
이랬던 MBC 개표방송은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매우 끔찍했다. 후보들의 사진을 억지로 붙여넣은 듯한 그래픽 등이 나와 개표방송이 1990년대로 돌아갔나 싶을 정도였다. 개표방송이 끔찍했던 이유는 방송을 제작하고 진행해야 할 고급 인력들을 파업이 끝난 후 이른바 '신천교육대' 등으로 보내버렸기 때문이다.
뉴스를 제작해야 할 인력들을 서울 신천에 있는 MBC 아카데미에서 브런치 교육이나 받게 만들었으니 방송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뜨겁게 사랑했던 MBC 뉴스를 다시는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