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분하는 즐거움을 그린 김화연의 그림이다.
뜨인돌
늦깎이 대학원생이자 '내가 니 엄마'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육아 맘, 혜린은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논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놀이는 다 일이다. 그는 일을 놀이처럼 하는 것이란 게 내 결론이다. 붓펜을 들고 필사를 즐긴다. '마더파더 잰틀맨' 하다가 '네 이년', '꺼져'까지. 한강의 단편 <몽고반점>도 필사했다고 한다. 참 참한 취미며 놀이다.
소분(음식재료를 잘게 써는 것), 냉장고 파먹기, 밤 까기, 사격장 가서 총 쏘기 놀이, 매물로 나온 남의 집 구경하기(집 장만을 위한 탐색인 듯), 버뮤다 삼각지대도 갈 수 있는 구글지도 탐색하기, 간판 간파하기 등 일 같은 놀이, 놀이 같은 일들이 즐비하다. 일을 가지고 놀이라고 우긴다고 하는 이들을 위해 첨언도 잊지 않는다.
"혼자 놀기를 가장한 주부의 전형적인 살림살이 아니냐고 반문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전쟁 같은 일상에 또 다른 일거리를 던지는 거냐며 눈을 치뜨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딱히 반박하고 싶진 않다. 근데 이것만 말하고 싶다. 나에게 소분은 일이나 효율적인 살림 방법이 아니라 혼자 하는 '놀이'다."(106쪽)그가 그렇다는 데 딴지 걸 필요가 없을 듯하다. 대학교 앞 커피숍에 앉아 옆 자리 손님들의 속삭임을 도청하는 즐거움을 말할 땐 이건 범죄행위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아이디어가 풍부해 날마다 창업을 한다는 말도 구미 당긴다. 밤 까기 예찬은 혀를 두르게 만든다. 밤 한 번 까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잘 삶은 밤을 까는 일의 위대함은 아무리 칭송해도 지나침이 없다. 칼날의 방향 조절은 과일을 깎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날카로운 칼날이 딱딱한 밤의 굴곡을 따라 지나갈 때면 칼과 내가 하나가 된 것 같다. '반인반도'의 느낌으로 밤을 휘감아 겉껍질을 깎아 내면 보드라운 속껍질이 남는다. 간혹 운이 좋다면 속껍질도 한 번에 시원하게 벗겨지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그때의 카타르시스는 마치 곪았던 피지가 시원하게 빠져 나올 때와 같다."(112쪽)#이민영 - 호기심 만땅, 자제력 제로민영은 자신 있게 말한다. "나는 하고 싶은 건 웬만하면 다 하면서 산다"고. 근데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게 그의 고민거리다. 책에 밑줄 긋는 취미, 심야서점을 찾아 밤을 하얗게 불태우기, 멍 때리기, 퇴근 후 공짜 교육 사이트 찾아가 공부하기, 자가 책 출판, 자가 뷰티 살롱, 공짜 사이트 방문하여 음악 듣기, 혼밥, 혼영화 등 다양하기도 하다.
호기심은 만땅, 자제력을 제로여서 하고자 하는 것은 다한다. 그의 혼자 놀기는 대부분 취미생활이다. 특히 멍 때리기는 제대로 맞는 혼자 놀이다. 쿠바에서 멍 때리기 유학을 한 자칭 유학파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
"쿠바에서의 멍 때리기 단기 유학 후, 내가 이것에 꽤 소질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연필 예쁘게 깎기 이후 처음으로 발견한 나도 몰랐던 내 재능. (중략) 나는 쿠바 유학파니까 좀 흐트러진 상태에서 시작하는 생활밀착형 멍 때리기로 노선을 잡았다. 내가 선택한 멍 때리기는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172,173쪽)그러면서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눈으로 그림 그리기' 방법을 추천한다. 벽면수행의 변형이라나. 후후후. 책은 김화연의 그림으로 더욱 빛난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림 속에 꽉 들어박혔다. 책은 기획된 것임을 우리 같은 책 좀 읽는 사람들은 한 눈에 안다. 그게 흠이라면 흠이다.
자, 이 어른아이들의 놀이 어떤가. 어라? 아하! 응~?? 이 내 반응,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독자들도 이 어른아이, 하나도 서툴지 않은, 상큼 발랄한, '아씨줌마들'의 반란어린 놀이의 대열에 끼어들면 어떨까. 참으로 행.복.만.땅.일 듯하다.
나는 나랑 논다 - 서툰 어른들이 발견한 혼자 노는 즐거움
김별 외 지음, 김화연 그림,
뜨인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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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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