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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위에 옆으로 누운 배를 봤다. 목포여객선 터미널을 출발한 배는 그 곁을 스치듯 지나고 있었다. 적자생존이라는데, 살아남은 것은 정말 가장 적합한 것일까 생각했다. 계약기간 만료 통보와 포상휴가를 거의 동시에 받은, 본의 아니게 너무 긴 휴가 중이었다. '세월호의 슬픔 우리가 함께합니다'라 적힌 목포해양대학교와 목포신항 사이, 8월의 바다는 숨 막히게 뜨거웠다.
답답했다. 노동을 존중하겠다는 서울시의 정책 방향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반적으로 옳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 그 일을 함께하고 있음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처한 상황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본말이 전도된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 상황에도 "나는 뭐가 되기 위해서 살아오지 않았다. 늘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인터뷰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레닌처럼, 계급과 사회에 대한 웅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전의 나는 그렇게 말할 처지가 되지 않아 이렇게 썼었다. '천재는 되지 못하지만, 천재들이 인간의 이성을 지키는 데 자신의 재능을 쓰도록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무엇인가 되어야만 했기에 1년 전쯤 쓴 '자기소개서'에 그리 적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처지다.
"저기 세월호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외쳤다. 조금 전까지 혼자 서있던 난간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제야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땅위에 옆으로 누운 배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같은 슬픔을 나누었다. 그 순간, 나는 중학생쯤이나 되었을 그 아이에 비해 한심했다. 중요한 어떤 것을 잊고 있었다.
목표를 위한 방향과 속도, 혹은 실익이란 것들 때문에, 그 목표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잊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 못지 않게, 그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배는 결국 침몰한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잊지 않겠다. 지난 3년여를 함께 외쳤지 않았나. 침묵하는 자, 침묵을 강요하는 자, '적폐'라고.
여전히 서울시의 '노동존중' 정책 전반은 옳고, 많은 점에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의 아주 작은 사례 한 가지를 늘어놓은 것이 그 전부를 매도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은 여전하다. 그래도 나는 말해야겠다. 그것이 다른 누구의 문제가 아닌 바로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신 말해줄 사람은 없다. 게다가 우리가 살아내야 할 앞으로의 몇 년에 비슷한 일을 겪게 될 사람이 많아질지도 모르겠단 생각 때문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당할 것을 고민해야 하는. 슬픈 예감은 좀체 틀리는 적이 없다고 한다.
계약기간 만료 10일 전, 계약기간 만료 통보를. 계약기간 만료 5일 전, 그나마도 엎드려 절 받기로 5일 간의 포상휴가를 주는 건 잘못된 일이다. 적당히 서로를 위하는 척, 입 다물게 만드는 건 더욱 잘못된 일이다. 노동존중특별시란 서울시의 노사정 협의기구에서 그렇게 한다는 건 좀 아니다.
생각해보니 잘된 일이었다. 이젠 잘한 것은 잘했다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됐으니. 그렇게 한다고 더는 계약해지 될 일도 없으니. 여전히 걱정스럽고 답답하지만, 덕분에 무엇도 되지 못한 것이 아픈 청춘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했다는 자랑을 늘어놓는 꼰대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한동안 묻어 놓으려던 어설픈 이야기를 굳이 꺼내놓음으로, 무엇도 되지 못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배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여름의 뜨거운 바다에도 때론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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