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일 핵이 우리나라에 발사된대"

[그림책 일기⑤] '더 큰 대포'로 가질 수 없는 평화 <더 커다란 대포>

등록 2017.09.28 21:50수정 2017.09.2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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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일 핵이 우리나라에 발사된대."
"누가 그래?"
"황동규가(가명)"
"괜찮아, 주혁아(가명). 그런 일 없을 거야."
"아니야, 진짜래.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너무 안 깊어서 소용없고, 핵 터지면 지하철역으로 가야한대."
"핵 터지면 다 소용없어. 그리고 안 터지니까 걱정하지마."


선배의 초등학교 2학년 아들 주혁이는 핵이 안 터진다는 대답에도 안심이 되지 않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엄마에게 안겼다.


"엄마, 죽기 싫어. 나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은데..."

SNS에 올라온 선배 언니네 이야기를 보고 웃음보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전쟁에 대한 공포는 휴전국에 사는 아이들의 숙명인가 싶어 현재 한반도의 위기 상황이 피부로 와 닿았다. 또 전쟁에 대한 공포가 우리 아이들 세대로 대를 이어 세습되고 있다는 걸 알게 돼 씁쓸했다.

언론보도를 보면, 지난 19일 UN총회에서 트럼프는 북한을 불량정권이자 악으로 규정하고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말하며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고, 국제 사회에서 고립시키겠다는 연설을 했다. 이에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했고, 북한은 모든 자위적 대응권리를 행사할 것이며 여기에는 미국 전략폭격기를 격추할 권리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미국과 북한의 말폭탄 싸움이 진짜 폭탄으로 떨어지는 건 아닌지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북한의 끊임없는 핵실험과 미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과격한 표현이 이번이 처음이 아님에도 지키고 싶은 내 아이 동글이가 있어서인지 생존가방을 싸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내겐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 그 사이에 끼어서 우리나라 일인데도 주도권 행사를 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관계된 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상황을 해결할 정치외교적 해안이 없다. 북한이 핵 개발을 멈췄으면 좋겠고,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싶다는 바람만 있다.


 <더 커다란 대포를> 겉표지
<더 커다란 대포를> 겉표지한림출판사
다만 한 가지,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도 전술핵을 배치해 힘의 균형을 맞추자는 주장만큼은 현실화 되지 않았으면 한다. 힘에 대해 힘으로 대항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무한 일인지 <더 커다란 대포를>이란 그림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그림책에는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멋진 대포를 가진 임금이 나온다. 대포를 쏘아 볼 일이 없어 심심하던 임금에게 여우들이 강에서 임금이 좋아하는 물고기를 잡아먹는 사건이 벌어진다. 임금은 강으로 가서 대포를 쏘아 여우들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달아났던 여우들이 더 큰 대포를 가지고 온다.


이때부터 책 왼편엔 임금, 오른편엔 여우들이 가운데 강을 두고 대포 경쟁을 한다. 더 큰 대포를 만들어온 임금이 만족해하면 여우가 더 큰 대포를 만들어 온다. 임금은 온 나라의 쇠붙이를 다 모아서 커다란 대포를 만든다. 대포가 얼마나 큰지 몇 번에 걸쳐 겨루지만 그때마다 여우가 임금보다 더 큰 대포를 만들어 온다.

임금은 작전을 바꾼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면서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 얼마나 화려한지, 얼마나 재미있게 생겼는지, 얼마나 옮기기 쉽게 가벼운지가 중요하다면서 임금은 대포를 많이 화려하게 재밌게 만든다. 그러나 여우가 만든 대포가 더 많고, 화려하고 재밌다.

 <더 커다란 대포를>
<더 커다란 대포를>한림출판사

모든 면에서 이기지 못한 임금이 마지막 옮기기 쉬운 가벼운 대포를 겨룰 때, 여우의 대포가 더 가벼워서 하늘로 날아갔는데, 순식간에 나뭇잎으로 변해버렸다. 알고 봤더니 그것은 여우가 나뭇잎에 마법을 걸어서 만든 가짜 대포였던 것이다.

여우에게 속아 화가 난 임금이 대포를 쏘았지만 작게 만든 대포에서 나온 대포알은 강물에 퐁당 빠지고 여우들은 달아난다. 임금에게 남은 것은 온갖 기묘한 모양의 대포들 뿐이었다. 허나 이것들을 버릴 수 없다고 여긴 임금은 그걸 반으로 갈라서 욕조로 사용한다. 임금은 이제 더 이상 대포를 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책 뒷면에 화려한 대포 욕조에서 여우들과 함께 반신욕을 즐기는 임금과 부하들 모습은 이 그림책의 하이라이트이다. 크기 대결에서 화려함과 기괴하고 재미있는 대포를 겨루는 장면에서부터 이 그림책의 재미와 풍자가 빛을 발한다.

강물에 사는 물고기를 함께 나눠 먹으면 되는데 여우가 좀 먹었다고 별거 아닌 일에 자신이 가진 대포를 쏘아 버리는 임금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강대국을 상징한다. 이에 맞선 여우의 마법은 더 강력한 무기를 갖기 위해 경쟁하는 일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허무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아이들이 전쟁 공포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해법은, 뛰어난 정부 고위 관료 몇 명에게서 보다 사드 배치와 같은 무기 경쟁을 멈추고 평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나온다. 상대를 힘으로 제압해서 얻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그때의 고요함만큼 폭력적인 것은 없다.

핵이 떨어질까 봐 눈물을 떨구던 주혁이는 다음 날 일상이 유지되자 안정을 찾았지만 비행기 소리가 나면 흠칫 놀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동생에게 "핵이 오면 형이 막아주겠다"며 손을 꼭 잡고, "둘이 함께 있으면 안 무섭다"고 말하는 멋진 형이다.

이 아이들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다른 세상으로 여행하는 평범한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도 여우의 마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더 커다란 대포를

후타미 마사나오 지음, 김현주 옮김,
한림출판사, 2011


#더 큰 대포를 #핵 #미사일 #북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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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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