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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세계원
한국 최초·최고의 여행가였던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읽은 때가 1975년 여름이었으니 내 나이 10대 말이었다. 이 책은 엄청난 독서량이 쌓여가는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여행기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 뒤로 '창비'에서 나온 <이븐 바투타 여행기>가 최고봉에 올랐었고 작년에 읽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3권짜리 <나는 걷는다>가 뒤를 이었다.
이제 그 자리에 최근에 읽은 이 책을 두려고 한다. '현재'는 강렬했던 모든 기억을 '과거'로 돌리고 존재를 지배하는 법이라서 그렇다지만 이 책이야말로 여행기의 전형이 아닐까 싶어서다. 대자아를 발견하고 평화를 이루는 것. 모든 여행의 진면목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는 저자가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 계신다는 점에서 한 존재 또는 가족집단의 '지구별 여행기'라고 하고 싶지만 이런 말은 요즘 유행하는 '우주시민'들의 초월적 이야기로 오해 받을 수 있어서 내키지는 않는다. 90여년에 걸쳐 남북한을 꿰뚫고, 여러 대륙을 아우르는 가족사 중심의 인문사회자연 입체 여행기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인 일선(一仙) 이남순은 1922년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했고 귀국해서는 모교에서 교원생활을 했지만 전쟁 통에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다. 충분히 상상이 된다. 그때 태어난 식민조선의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시대의 행로가.
한국에서 계속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가 있어 브라질과 캐나다에서 42년 동안 이민자로 살았다. 또 갖은 풍상을 겪는다. 북에 가서 26년 만에 아버지를 만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름다운 부자 이종만'이다. 하늘처럼 존경하고 마음의 기둥이었던 아버지를 만나러 갔지만 이남순은 북에 갔다는 사실 하나로 친북인사라는 낙인이 찍힌다.
북에 다녀 온 것을 계기로 해외 통일운동을 했으며 아들과 딸의 안내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감성치유와 영성운동으로 거듭났다.
저자는 어떤 계기로 2006년에 제주도로 영구 귀국하여 영성공동체 '에미셔리'를 가족과 함께 일구었다. 이 책이 나오게 되는 과정 또한 흥미롭다. 마침, 평화의 섬 제주도로 가서 살던 송순현 전 정신세계원 원장이 이남순의 구술을 기록해 펴 낸 것이다. 그 유명한 김정빈 옹의 구도소설 <단>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이 책을 소개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영국과 호주와 미국 등지에 살았던 4남매 자녀들이 이 책을 같이 엮었다. 그들의 마음에 담긴 어머니 모습은 주고받은 편지와 기억의 교차 확인으로 시대와 삶을 아우르는 여행의 입체감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여행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당신의 삶 전체를 놓고 전해준다. 역경을 내적 성장을 위한 디딤돌과 자양분으로 삼는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일 때도 자신에게 맞는 1시간짜리의 수련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매일 수행했으며 자기교정을 계속한다.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며, 재경험하고, 뚫고 지나감으로써 뿌리 깊은 어두운 기운을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여행자는 환경을 탓하지 않는 법이다. 단지 바라보고 그 순간 최선의 긍정 선택을 한다. 인생 여행의 진수라 하겠다.
독자로 하여금 다다르게 하는 결론은 대자유의 평화다. 저자와 그의 둘째딸 반아님이 강조하고 있는 '남북의 영세중립평화통일'은 사실, 소자아를 벗어나 대자아에 이르는 지난한 여행의 종착역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처럼 22년생 어머니의 막내아들인 박유진은 저자인 어머니를 '삶을 가르쳐주고 영혼을 일깨워 줬다'고 고백한다. 이 아들에 대한 저자의 고백도 유사하다. 여행은 이렇게 서로에게로 흐르고 흐르는 과정인가 보다.
분노의 고통을 넘어서는 인도·네팔 속 '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