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평창겨울올림픽 참가로 한반도에 모처럼 평화의 훈풍이 일고 있는 가운데 자위대의 한반도 파견을 검토하는 등 전쟁가능성을 부추기는 일본정부의 반응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남북 간 대화재개로 일본의 국제적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정부가 한반도의 유사(전쟁 발발)시 해상자위대가 미국 군함과 협력해 한국에서 거주하는 일본인과 미국인을 부산항에서 츠시마(対馬)섬으로 피난시키는 탈출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일본정부는 피난인원을 부산항에 접안한 미군함에서 해상자위대군함으로 옮겨 태워 츠시마에서 1~2일 동안 일시적으로 머무르게 한 뒤 다시 순차적으로 큐슈(九州)로 수송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공항이 폐쇄되는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자위대가 인명 구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단 논리다.
해당 조치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주도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논의된다. 요미우리는 전쟁이 발발하면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인원 수송방법에 대한 구체적 검토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앞서 일본정부는 선행조치로서 츠시마를 둘러보며 현장시찰을 마쳤다. 피난인원을 수용 가능한 숙박시설을 예약하고 물과 식료품을 마련하는 등 행동에 나선 상황. 이에 대해 요미우리는 일본정부가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는 때가 임박하면 관련지자체와 협의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정부는 4단계의 '위험레벨'을 설정했다. 전쟁이 발발해 전개되는 양상에 따라 피난수위를 조절하겠단 것이다. 위험레벨은 관광객 등의 불요불급한 항행중지요청-> 항행중지권고-> 피난권고-> 피난소로 피난 수송 순이다. 피난인원을 자위대함에 실어 일본으로 수송하는 조치가 표면적으로는 최후의 수단이란 얘기다.
이 같은 보도가 나온 배경에는 자위대의 한반도 파견을 거부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아베 총리의 의중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요미우리는 지난해 가을 일본 측이 한국 측에 자위대 파견을 타진한 결과 한국 측이 자위대함의 파견은 동의할 수 없지만 미군함의 부산항 접안은 용인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일본정부는 미군과의 연계를 통한다면 자위대의 한반도 파견에 극도로 민감한 한국의 국민정서를 '돌파'할 수 있으리란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유사시라는 전제를 내세웠지만 단순한 자위대 파견이 아니라 수송방법에 대한 구체적 방안까지 마련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를 향한 압박에 나섰다는 분명한 신호다.
일본외무성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주한일본인이 약 6만 명이며 주한미국인은 2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북한 위협은 일본의 군비강화 위한 구실일 뿐
일본정부의 조치는 교전 금지와 전쟁 포기가 명시돼있는 일본헌법 제9조(일명 평화헌법)를 회피해 자위대의 활동 반경을 넓히려는 노림수가 반영돼 있는 것이다. '적국'인 북한이 실제로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최대한 높게 설정, 동맹을 맺은 미국과 연계해 집단자위권 발동을 통한 군사활동을 폭 넓게 인정받으려는 수순이다.
아울러 해상자위대가 한반도의 서해 해역 일부를 경계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방위성은 16일 "방위성설치법에 정해진 '소장사무의 수행에 필요한 조사 및 연구' 등의 일환으로서 서해도 포함해서 정보수습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방위성은 "국제사회에서 일치단결해 안보리결의의 실효성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며 북한의 위협을 구실로 군사력 강화에 나설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 군사대국화 행보를 멈추지 않겠다는 일본정부의 입장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일본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은 평화헌법 개정에 필수적인 국민투표에서 승기를 잡으려는 이중포석으로 파악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올해 연초부터 강력하게 개헌의지를 표명해 왔다. 일본정부는 지난해부터 자위대의 활동에 대한 국내여론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해 왔다.
지난해 12월 5일 산케이신문은 일본정부가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해 토쿄(東京)에서 수백만 명이 대피하는 대규모 훈련을 계획 중이며 해당 훈련이 2018년 1월에서 3월 중에 실시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기간은 평창겨울올림픽·패럴림픽이 열리는 기간과 정확히 맞물린다. 이는 평화를 강조하며 북한의 참가를 독려한 문재인 정부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입장을 전혀 살피지 않은 것이다.
연일 자위대를 활용해 군사행보를 보이고 있는 일본에 대해 주변국가에서도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지난 15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은 방위성이 자위대에 도입하기로 한 신형요격시스템 '이지스 아쇼아'에 대해 "순항미사일을 탑재하면 공격병기가 될 수 있다"며 "이런 조치가 일러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경고에 나섰다.
이지스 아쇼아는 지난해 12월 16일 일본정부가 각의(국무회의)를 거쳐 도입을 결정한 육상 배치형 신형 방어 미사일 방어(MD)시스템으로 미군 측의 협력을 얻어 운용된다. 일본정부의 이 조치에는 아시아에서 MD시스템을 구축해 북한·중국·러시아를 견제하며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오노데라 이츠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지스 아쇼아는 북한이 핵 미사일개발을 진행하는 가운데 탄도미사일공격에 대해 국민의 생명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순수한 방위적 시스템"이라고 반박했다. 오노데라 방위상은 그러면서 "러시아를 포함해 주변국가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다.
북한이 한미일동맹을 분단시킨다는 일본
요미우리는 앞서 11일 '남북각료(장관)급회담 핵문제를 내버려두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북한의 대화제의에는 "(북한이) 남북융화를 어필하며 한미의 이간질을 노리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는 인식을 나타낸 바 있다. 공통된 인식이 일본정부의 내부 분위기라고 보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일본정부는 북한의 올림픽참가 결정으로 남북 간 대화의 장이 열리자 마지못해 환영의사를 밝히면서도 북한의 전쟁위협을 철저히 경계해야한단 입장이다. 코노 타로(河野太郎) 외상은 17일 미국과 캐나다의 공동개최로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한국전쟁에 참전한 20개국의 외교수장이 참가한 회의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기 위해 시간벌기를 의도하면서 제재해제·재정적 지원·각국 간의 분단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노 외상은 "이 회합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진행되고 있다. 북한의 '웃음외교'에 눈을 빼앗기지 말고 지금은 압력을 완화할 때도, 북한에 보답할 때도 아니"라면서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북한의 대화제의를 평화가 아닌 전쟁을 밟기 위한 수순이라고 깎아내린 것이다.
심지어 아베 총리는 지난 14일 리투아니아를 찾아 사울리우스 스크베르넬리스 리투아니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은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도 사정거리에 들어가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유럽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굳이 머나먼 북유럽 국가를 찾은 자리에서 북한위협이란 의제를 첫머리에 올린 이유는 왜일까.
북한 당국은 "핵무력은 미국만을 향한다"고 한 상황. 설령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의 사정거리가 리투아니아를 포함한다 해도, 북한이 과연 미국과 정반대의 방향에 있고 연고도 없는 리투아니아로 핵을 발사하는 낭비를 할지 큰 의문이다. 아베 총리의 행보는 남북 대화가 재개되면서 일본의 입지가 줄어든 데 대한 경계심의 발로라고 파악하면 이해할 수 있다.
종합하면 현재 일본에서는 정부의 입장에 언론이 적극적으로 가세하면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로 꺼져가는 전쟁불씨를 살리려는 안간힘이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점은 코노 외상이 남북의 헤어짐을 표현하는 대표적 용어인 '분단'을 가리켜 북한이 각국 간의 분단을 노리고 있다고 밝힌 데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여기에는 한국이 동포인 북한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 연계를 맺어 북한의 위협을 처단해야 마땅하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일본 측이 스스로의 주장처럼 '한국과 자유민주주의가치를 공유하는 이웃'으로서 동북아시아의 안보와 평화를 담보하는 선진국가로 인정받고 싶다면 전쟁위기를 억지로 조장해 한반도에 발을 걸치려는 야욕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마치 전쟁이 실제로 일어나길 바라는 듯한 불씨를 거세게 지피면서 이웃국가와의 연계를 강조하는 일본정부의 태도에서 진정성이란 찾아볼 길이 없다.
남북 간 대화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 일부러 전쟁을 부추기는 일본 측의 행동을 더 이상 용납하기는 힘들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간단한 트윗 하나로도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을 생각하면 일본 측의 태도는 몹시 우려스럽다. 문재인 정부는 즉각 전쟁을 초래할 수 있는 일본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강경한 반박에 나서야 한다.
한반도의 주민들은 한미일군사동맹 강화 및 그에 따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결단코 반대한다.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를 겪었던 치욕의 역사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해 11월 10일~ 11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에서는 '한미일 군사동맹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응답이 74.9%으로 나타났다.
만약 일본정부의 요구대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그때야말로 양국관계는 파국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외세가 '감 놔라 배 놔라'한 결과로 지난 20세기에 우리민족이 쓰디쓴 분단의 굴욕을 겪었음을 역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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