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동양북스
저자는 한국의 남성을 이야기하며 가장 먼저 군대를 언급한다. 한국 사회가 마초적이고 가부장적인 것에는 군대의 역할이 매우 결정적이라고 지적한다. 군대에서 다시금 '남성다움'을 배우고, 그 '남성다움'이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가 소제목으로 올린 군대와 관련된 글귀만 봐도 우리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배워야 할 건 군대에서 다 배웠다', '군대에서 배운 대로만 하면 돼', '자네, 군대는 갔다 왔나?', '감히 너희가 군대를 아느냐?', '군대니까 어쩔 수 없다?'
과연 병역의 의무를 다한 대한민국 남성 중 저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남자들이 군대를 갔다 오면 '사람'이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일 가능성이 높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봐도 측은지심을 느끼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남성성을 강조하는 괴물이다.
"군대의 논리에 대한 거부감을 겉으로 드러냈다가 몇 번의 집단적 폭력을 경험한 이들이 적응을 결심하면 무서워진다. 약한 모습 다시 보이면 끝장날 수 있다고 마음먹었는지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보다 더 악질적으로 변한다. 괴물의 탄생이다." – 76p
"군대를 거쳐 가는 이들은 세상 이치의 '역', 즉 오답을 정답으로 배운다. 용서를 구하는 자가 없는 곳에서의 피해자는 가해자 응징이 불가능한 분노를 본인이 가해자가 되면서 보상 받는다." – 76p
군대라는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차라리 괴물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 혹자들은 이 괴물들이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며, 군대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이는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조직의 문제이며,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원수리'를 하고 정신교육을 하면 뭐하는가. 여전히 한국 군대는 사회에서 고립된 섬이며, 그 안에서 장군은 사병을 노예 부리듯 취급하기 일쑤다. 아직까지 전혀 변하지 않은 우리의 군대문화. 그러니 남성들이 군대에서 남자다움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괴물로 재탄생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당연히 해결될 문제가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는 이유는 '명백한 잘못'을 주변에서 '용인'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대 내 폭력 문제는 '애초에 폭력적 성질을 타고난' 아무개의 성격 파탄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막지 못한 '구조'에 그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 55p
"폭력이 즉각적으로 제어되지 않는다면, 혹은 발생했더라도 합리적으로 처벌되지 않는다면, 나아가 시간이 지나서 이를 '향수'의 차원에서 긍정해버린다면 처음의 폭력은 '그 이상의 폭력'으로 진화한다." - 56p
괴물을 잉태하는 한국 사회이와 같은 괴물은 군대에만 존재하지 않다. 괴물은 군대처럼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에서 쉽게 잉태된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당연시 되고, 개인보다 집단이 중시되다 보면 타인의 고통, 특히 약자에 대한 폭력이 쉽게 용인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우리 사회에 그런 조직이 많다는 사실이다. 군사정부 하에서 압축 성장을 이룬 만큼 한국은 전형적인 병영국가로서 사회 전체가 군대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여전히 상명하복이 중요시되며, 개인의 다른 의견은 제시하기 어렵다. 남성들은 군대를 제대해도 여전히 남성다움을 강요받으며 '개저씨'로 진화해간다.
"개인들 중 사회적 콤플렉스가 심할수록 이러한 '집단의 권위'에 주체할 수 없는 파도처럼 휩쓸려 간다. 이들은 생애 처음으로 집단 속에서 뿌듯함을 느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준 이 집단을 지키기 위해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과감한 행동을 서슴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공동체의 유지', '공동체의 질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한다." - 112p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은 '폭력을 참아가면서', '수치심을 느끼면서' 남성이 되어간다. 그래서 한국에서 말하는 '진짜 남자'는 폭력에 둔감하다." – 11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