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위쪽 연못명옥헌에는 연못이 둘 있는데, 위쪽 연못이 조용히 완상하기에 좋고 아래 연못은 꽃 잔치에 들썩인다.
김종길
대개 이쯤에서 휴식을 끝낸 이들은 무더기로 피어난 붉은 백일홍이 아쉬운 듯 마지막으로 눈길을 건네고 반대편 연못 길로 돌아나간다. 문득 명옥헌이라는 이름이 궁금해지는 이들이 있다.
눈썰미가 있는 이라면 정자 뒤쪽 배롱나무 사이로 연못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아챈다. 아래 큰 연못과는 달리 이 작은 연못은 고요하고 그윽하다. 그러고 보니 소쇄원에서도, 임대정에서도, 부용동 원림에서도 위아래로 연못이 둘이었다.
대개 상지(上池)는 동적이고 하지(下池)는 정적인데 비해, 이곳은 되레 위쪽 연못이 조용히 완상하기에 좋고 아래 연못은 꽃 잔치에 들썩인다. 상지에는 네모난 연못에 바위가 놓여 있어 수중암도(水中巖島)이고, 하지에는 둥근 섬에 배롱나무가 있어 방지원도(方池圓島)이다.
이 두 연못의 물은 어디서 흘러왔을까, 발걸음을 좀 더 깊이 옮긴다. 이제야 물의 근원에 가까이 왔음을 직감한다. 암반을 타고 졸졸졸 흘러내리며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내는 물줄기가 거기에 있다.
계류를 따라 조금 깊숙이 들어가니 '명옥헌 계축(鳴玉軒癸丑)'이라고 적힌 바위 글씨가 보인다. 우암 송시열이 쓴 글씨라는데 그의 글씨가 맞다면 계축은 1673년이다. 정자에서도 구슬이 구르듯 낭랑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 명옥헌이라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