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의 고통을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제주4·3 공동 인권강좌 후기] 이야기의 경합은 계속되어야 한다

등록 2018.09.28 18:26수정 2018.09.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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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5일 수원 다산인권센터에서 진행된 4·3 인권강좌

9월 5일 수원 다산인권센터에서 진행된 4·3 인권강좌 ⓒ 제주다크투어

 


올해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지난 봄 다산인권센터와 인권재단 사람 그리고 제주다크투어가 함께 4·3 인권 기행을 기획하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나의 기대와 태도는 실무자의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최소 인원도 안 모여서 계획이 무산되는 일만 없게 하자.'

5월에 가려던 인권 기행이 참여 인원 부족으로 취소가 된 터라 나의 관심은 오직 참여자 수에만 집중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무자들의 노심초사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행 참여 인원은 최소 인원인 10명을 딱 한 명 넘은 11명으로 마무리되었다. 겨우 '기행 취소'를 면한 것이다. 결과에 낙담했지만 적은 인원이었기에 기행 내내 친밀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정신승리가 아니라 정말 그랬다!) 
  
신청자 수를 보면서 궁금했다. 왜 이렇게 신청자 수가 적을까? 날짜가 문제였나? 참가비가 비쌌나? 사람들이 4·3에 관심이 없는 걸까? 아마도 하나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이유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사람들은 정말 4·3에 관심이 없는 걸까?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4·3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제대로 배우고 알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인권활동가인 나조차도 올해 70주년을 맞아서야 4·3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까. 
  
자신의 경험치를 넘어서는 타인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 
  
그래서 기행을 떠나기 전 대중을 위한 4·3 인권 강좌를 준비했다. 4·3에 대해 공부하는 동시에 기행 인원도 늘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함께. 

첫 번째 강좌는 '제주 4.3항쟁을 통해 살펴보는 평화와 인권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박진우 사무처장님께서 해주셨다. 오랜 역사 속에서 제주가 겪어온 일련의 사건・상황들을 통해 4·3항쟁이 아무런 맥락 없이 그냥 불쑥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음을 잘 설명해주셨다. 

두 번째 강좌는 이화여대 대학원 김은실 교수님께서 "국가폭력과 4·3 홀어멍의 '말하기'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4·3을 살아낸 제주 여성들의 기억과 경험을 '말하기'라는 방식으로 풀어낸 인류학적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지금껏 부차적인 사료로 여겨졌던 여성들의 '말하기'가 4·3을,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고통을 겪은 이들의 경험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사료인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8월 29일 수원 다산인권센터에서 진행된 4·3 인권강좌

8월 29일 수원 다산인권센터에서 진행된 4·3 인권강좌 ⓒ 제주다크투어

  
지금껏 부차적인 사료로 여겨졌던 여성들의 '말하기'의 가치
  
두 강의를 들으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하며,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라는 질문과,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누구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이며 소위 '역사의 주인공'으로 간주되지 않는 이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공동체의 역사 속에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두 번째 강의에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훨씬 초월하는 이야기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지속적으로 수탈의 대상이 되고, 오랫동안 이등시민 취급을 받아온 제주도민의 아픔과 고통을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몇 달간 어둡고 비좁은 동굴 속에서 제대로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하늘도 쳐다보지 못한 채 겨우 연명해야 했던 14살 소녀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눈앞에서 가족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거나 끌려가서 실종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누구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인가 
  
이러한 경험들은 심지어 거의 대부분의 당사자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정말로 당시 국내・외 상황을 몰라서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가늠조차 못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와 상관없이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들이닥쳤기 때문에 이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김은실 교수님의 논문에 따르면 인터뷰에 응한 홀어멍(홀어머니)들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아무렇지 않다"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칭원(稱寃- 원통함, 슬픔)도 두루 칭원해야 칭원한 것이다." 적당히 슬퍼야 슬픈 감정을 가질 수 있는데, 4·3을 경험한 홀어멍들은 너무나도 슬퍼서 슬픔을 느낄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렸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한계조차 넘어버린 슬픔, 고통, 억울함을 타인이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어설프게 나의 경험에 빗대어 이해하려다 그들의 경험을 왜곡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도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경험을 그저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으로 남겨 두는 것이 능사인 것 같지도 않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말하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개개인의 이야기에 구멍이 있을 수도 있고, 앞뒤가 맞지 않을 수도 있으며, 사실을 정확하게 기술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논리나 이야기의 정합성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말하기'가 서로 경합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경합이라는 것은 누구의 이야기가 옳고, 틀린지를 가린다는 의미보다는 4·3의 역사를 다면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지금껏 스스로 말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왔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동체의 역사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위치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4·3에 대한 이해를 좀 더 다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다면적으로 아픔에 공감하고 알리고, 비극의 반복을 막는 일 
  
그래서 우리에겐 4·3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의 경합이 필요하다. 이야기의 장(場)에서 이야기들의 경합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4·3의 경험에 귀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4·3에 대해 알게 되는 것, 매년 4월 3일이면 억울하게 희생된 제주도민들을 떠올리는 것, 다시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공권력에 의한 이런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켜보겠다고 다짐하는 것. 이것이 70주년이나 되었는데 아직까지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이 안타깝고 부끄러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 아닐까.

 
 9월 5일 수원 다산인권센터에서 진행된 4·3 인권강좌

9월 5일 수원 다산인권센터에서 진행된 4·3 인권강좌 ⓒ 제주다크투어

 
 
 공동 인권강좌 후 이어진 4·3기행

공동 인권강좌 후 이어진 4·3기행 ⓒ 제주다크투어

 


* 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 
'제주다크투어'는 제주4·3 평화기행, 유적지 기록, 아시아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과의 국제연대 사업 등 제주 4·3 알리기에 주력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블로그 주소] blog.naver.com/jejudarktours
 
덧붙이는 글 아샤는 다산인권센터 상임 활동가입니다.
#제주43 #인권 #역사 #강의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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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는 제주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입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여행 속에서 제주 4.3을 알리고 기억을 공유합니다. 제주를 찾는 국내외 사람들과 함께 제주 곳곳의 4.3 유적지를 방문하고 기록하며 알려나가는 작업을 합니다. 국경을 넘어 아시아 과거사 피해자들과도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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