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이른 바 베이비 붐 세대에겐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도는 구절이다. 적어도 50세 이상 된 나이 든 세대에게 국민교육헌장은 각별했다. 학교에서 암기를 강요했고 매일 검사를 받았다. 제대로 외질 못하면 변소 청소를 하거나 머리를 쥐어 박히곤 했다. 유신의 전초였던 국민교육헌장 시대는 교육의 암흑기였다.
필수이수 과목인 교련시간이 되면 전국의 고교생들이 개구리복에 목총을 메고 각반을 찼다. 학교가 병영화되어 군대에 버금가는 시절이었다. 반장이 소대장이 되고 중대장, 대대장이 있었고 학생회장은 연대장으로 학교장은 단장으로 불렸다. 분열과 사열 때 학생연대장은 우렁찬 목소리로 단장님께 경례를 외쳤고 20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은 일제히 충성을 외치며 사열대 위 단장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그러면 학교장도 거수경례로 답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물론 오와 열을 맞추지 못하다간 어디선가 귀싸대기가 날아들었다.
카빈 소총을 총기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것은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여학생들은 구급낭을 어깨에 메고 압박붕대 시연을 했다. 그런 것을 부산시 학교대표들이 모여 구덕운동장에서 대회를 치렀던 기억이 난다. 아예 국민교육헌장을 강제로 외우게 했고 시험에도 곧잘 나왔다. 1968년 박정희 개발독재체제가 전 국민을 상대로 전체주의 이념을 강요한 것이 국민교육헌장이다.
이는 다가올 유신시대의 단초가 될 교육지표로서 충실히 기능하였다. 박종홍, 유형진 등 당대 걸출한 철학자와 교육학자들을 총동원해 헌장 초안을 작성하게 했다.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뒤에 대통령이 직접 선포했다. 박정희는 선포식 담화문에서 국민교육헌장을 '국민윤리의 기둥이자 교육지표'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국민들이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정신개혁을 이룩해 생산적인 행동규범으로 승화시킬 것'을 주문했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니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더구나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정신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정신을 북돋우자"니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구절인가!
그러나 국민교육헌장이 지향하는 교육이념은 '개인'을 소중하게 여기기보다 '전체'를 위해 '개인'을 도구시하고 희생한다.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구절은 단적인 사례이다. "반공 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임을 선언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강요받았다.
한 마디로 개인의 인권, 개성, 자율적 인격의 존귀함은 없다. 새 역사를 창조하는 데 개인의 자유, 권리 행사는 방해요소일 뿐이다. 국민교육헌장 393자를 다시 읽고 또 읽어 봐도 그런 뉘앙스이다. 이는 '충량한 황국신민으로서 인고단련'을 통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강조했던 일제강점기 교육칙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국민교육헌장에 뒤이어 1972년엔 '국기에 대한 맹세'가 등장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는 내용을 전 국민에게 똑같이 강요했다. 국기강하식이 거행되면 그것을 알리는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것이 80년대 말까지 지속된 거리 풍경이다. 그러면 길 가던 모든 사람들은 거리에 멈춰 서서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지어 실내 도서관에서도 책을 읽다가 벌떡벌떡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었던 시절이다. 2014년에 개봉돼 1400만 명이 넘게 본 영화 <국제시장>에도 그런 뻘쭘한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부부(황정민, 김윤진 분)가 길거리에서 한창 부부싸움을 하다가 갑자기 애국가가 울려 퍼지니까 어색한 표정으로 국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던 장면이다.
국민교육헌장은 1973년 정부기념일로 제정돼 1993년까지 정부가 주관하여 기념식을 치렀다. 그러나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가 진전되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1994년 실질적으로 폐지된다. 게다가 초중고 교과서에서 일순간 국민교육헌장이 전부 사라진다. 공문 한 장 내려 보내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사라진 것이다. 그러다가 2003년 정부기념일에서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권위 있는 기관의 단 한 번의 설명도 없이 전국의 모든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폐지된 것이다. 한 때 어린 학생들에게 암기를 강요하고 전 국민을 상대로 전체주의를 강요했던 국민교육헌장을 왜 폐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국민이 알아서 판단했을 거라 믿은 탓일까? 나를 비롯한 50-60대에선 아직도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추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다.
국가 권위에 대한 의심과 저항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교육장치로서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된 지 올해로 50주년이 된다. 만감이 교차한다. 영도자적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 전체를 수직적인 위계질서로 틀 지웠다. 그리고 기성질서에 순치된 인간형을 학교에서 양산했던 시절이 국민교육헌장 시대이다. 그런 교육질서 속에서는 공동체의 불의에 저항하고 공적 분노를 표현할 줄 아는 '정의로운 인간형'을 길러낼 수 없다. 오히려 권위에 맹종하고 순응하는 '신민(臣民)형 인간'만을 양산할 뿐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국민교육헌장 시대 교육이념이 낳은 비극일 수 있다. 자주성과 자율성, 그리고 개개인의 인권과 개성을 최고의 가치로 존중하는 민주주의 학교 교육에서는 나올 수 없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교육헌장 선포 50주년 되는 올해 더더욱 한국교육은 시급히 변해야 할 당위적 책무를 안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교육헌장에 저항한 '교육지표' 사건으로 해직되고 고문, 투옥까지 당했던 당대 양심적인 학자들의 명예는 회복되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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