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통제나 집착'은 데이트 폭력의 시작이 되어 더 큰 폭력이나 살인까지 이어질 수 있다.
- 한 달에 6명이요? 적은 숫자가 아닌 것 같아요.
"여기서 특히 눈여겨 봐야 할 것은, 평균 6명의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고 데이트 폭력 대부분의 피해자 역시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이에요. 물론 데이트 폭력을 행하는 여성 가해자도 있어요. 하지만 안전과 목숨을 위협하는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에요. 물론 세상의 모든 남성이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는 아니에요. 하지만 발생한 데이트 폭력 사례에서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었어요.
그런데 가부장 문화 속에서 세워진 많은 법들은 데이트(성)폭력과 같은 '남성중심범죄'에 대체로 관대한 편이에요. 실제 살인이나 강력범죄가 아닌 이상, 데이트 폭력은 주로 특수상해, 폭행·협박 등의 혐의를 적용받아 2년 이하의 징역이나 집행유예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향이 많다고 해요. 사람(여성)의 안전과 생명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성평등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법규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 그런데 청소년기 데이트 폭력의 모습은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작년에 만났던 고등학교 1학년 친구 T 이야기를 좀 할게요. T는 남자친구와 백일을 앞두고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그동안 사귀어 보면서 서로에게 아쉬운 점 혹은 서로 고쳤으면 하는 점'을 이야기 하는 거라고 했어요. T의 취지는 아쉬운 점보다 좋은 점을 이야기하면서 훈훈하게 이벤트를 하는 거였는데, 남자친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T에 대해 아쉬운 점을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한 거죠. 'T는 좋은 사람인데 주변에 남자 친구들이 너무 많다, 특히 T의 친구들이 너무 남자를 밝히는 거 같으니 '건전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T도 이제 남자친구도 생겼으니 주변의 남자사람 친구들을 정리하는 게 어떻겠냐'고요."
- 흠... 좀 일반적인 일 같긴 한데 이게 데이트 폭력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뭐죠? 제가 둔한 건가요?
"이런 케이스는 십대 아이들 연애 문제에서 종종 있는 일이에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자 아이들이 가부장제의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는 걸 알 수 있어요. 가부장제 문화에서 '잘 배운' 대로 여성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거죠. 그 사랑을 기꺼이 받아주고 자신의 방식을 잘 따라주길 기대하면서요.
실제로 T는 남자친구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굉장히 잘 배운, 어른스러운 남자사람처럼 여기는 느낌을 받았대요. 남자 아이들 스스로 여자를 '통제'하는 것을 굉장히 젠틀하고 멋있는 남자로 여긴다는 거죠. 이런 걸 '부드러운 가부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보기에는 여성을 보호하고 아껴주는 듯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남성과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 그래서 T와 남자친구는 어떻게 됐나요? 헤어졌나요?
"네. 헤어졌어요. 먼저 T의 기분을 물었더니 자신의 인간관계를 맘대로 판단하고 부모님도 안 하는 친구 관리를 하려는 게 기분이 나쁘다고 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자신을 정말 좋아하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는데 자신이 너무 이해를 못하나?'라는 생각도 든다며 혼란스러워 했어요. 그래서 T에게 정말 좋아하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게 먼저인 거 같다고 이야기 했어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를 잃어버릴 만큼 나를 바꾸길 원하거나, 만날 때마다 주눅이 들거나 눈치가 보이게 한다면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구요. 또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힘든 부분이 있다면 서로의 의견을 묻고 들으며 합의해 나가는 게 맞는 거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 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프겠지만, T가 이번 일로 배운 게 많을 것 같네요. 그런데요 심쌤, 이성친구와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들은 주로 친구들과 문제를 상담하고 풀려는 경향이 있잖아요. 혹시 부모들이 도울 방법 혹은 신경 써서 봐야 할 것들이 있을까요?
"아이들이 이성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사실 부모라고 해서 완벽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어요. 말하지 않을 때는 더 어려운 거 같고요. 사귀고 있는 것 같은데, 잘 사귀고 있는 건지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죠. 그래서도 안 되고요. 그렇기 때문에 평소 아이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일이 참 중요해요.
인격적인 삶의 태도가 일상에 배어있다면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자신과 타인이 폭력 상황에 노출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확률이 크다고 봐요. 만에 하나 노출되더라도 빨리 알아채고 더 심한 상황으로 가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고요.
또 아이가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거 같은데 기쁘지 않고 우울해 보여도 '알아서 하겠지' 하고 내버려 둬선 안 돼요. 간섭하라는 말은 아니고요, 자존감이 낮아졌거나 평소보다 지나친 감정의 변화를 보인다면 아이에게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겠다'는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어요. 실제로 아이가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능성을 열어두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 특히 몸에 지속적인 상처나 폭력의 흔적이 보인다면 최대한 아이를 설득해 이야기를 듣고, 부모가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재빨리 신고할 수 있어야 해요.
세상에 '원래 그런 것', '당연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 어떤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 등을 '원래 그런 거'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거나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그 '원래 그런 거'와 '당연한 것'들이 존재하기 위해 '누군가'는 끊임없이 희생되고 폭력에 노출 되어 왔을지도 몰라요. 그 '누군가'는 우리일 수도 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어요.
데이트 폭력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해요. 사랑하니까 통제하고 싶고, 화가 나면 좀 때릴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욱하는 마음에 죽일 수도 있다는 건 결코 당연한 게 아니에요. 사랑하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도록 노력해야 해요. 그런 행동과 노력이 당연하지 않은 나 스스로와 끊임없이 싸워가면서요.
뻔한 말이지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고 원래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데이트 폭력 뿐 아니라 많은 부분의 억압과 불평등도 사라지지 않을까요? 참, 마지막으로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 데이트 폭력/가정폭력 긴급상담전화는 1366! 지금까지 여러분의 심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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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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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과 백일 만에 헤어진 여고생, 원인은 데이트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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