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증인>의 한 장면. 나에게 잘해주는 이런 사람이 돌변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주)무비락
- '전체적으로 바라보되 세세한 기준을 가지고 분별한다'는 게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구체적으로 뭐죠?
"역시... 물어보실 줄 알았어요. 다시 영화 이야기를 좀 빌려 이야기 해 볼게요. 양순호 변호사는 성인 남성이고 지우는 아직 미성년인 (여)학생인 점 그리고 지우가 자폐를 가지고 있다는 면만 부각해서 보면 양순호 변호사가 지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 했던 행동들 즉, 라면을 같이 먹고, 선물을 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 퀴즈를 내는 등의 행동이 그루밍 성범죄를 의심하게 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양순호 변호사가 왜 지우를 찾아 왔고 어떤 이유 때문에 호감을 얻으려 하는지 동기를 파악하며 이들 관계의 큰 그림을 들여다보면 좋겠어요. 그런 다음 양순호 변호사가 지우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방법과 과정이 둘만의 은밀한 관계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오픈되어 있는지, 지우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등을 세세하게 살펴보며 관계의 정체(?)를 알아가는 거죠.
이런 측면에서 보면 양순호 변호사는 지우와 만날 때 대부분 항상 지우와 함께 다니는 친구와 같이 만났어요. 지우 엄마에게는 지우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도 알렸고요. 또 지우와의 '소통'을 위해 약점을 노출 시키면 안 되는 상대편 검사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죠.
즉 폐쇄적이지 않은, 주변에 오픈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이에요. 이 점은 그루밍 성범죄를 구분하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예요. 실제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의지/의존하게 만들고 '둘만의 비밀'을 핑계로 다른 사람에게 둘의 관계를 알리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전체적으로 바라보되 세세한 기준'을 가지고 살펴보니 어떤가요?"
- 아, 어려워요. 뭔가 더듬이가 필요할 것 같아요.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그래도 이렇게 생각해보니, 불안감은 덜해지는 것 같아요.
"물론 쉽지만은 않겠죠. 그래도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분별해 가다 보면 범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을 무작정 의심하는 일은 줄어들 거예요.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 심쌤, 혹시 저나 아이들이 그루밍 성폭력을 사전에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최근 다양한 루트를 통해 온라인상 그루밍 성범죄가 매우 활발한데요. 특히 나이 제한이 없는 스마트폰 채팅 어플리케션을 통해 미성년 어린이/청소년 등이 그루밍 성범죄에 많이 노출되고 있다고 해요.
실제 초등학교 5, 6학년 약 490명에게 물었을 때,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본 적 있다(69.1%),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3.7%), 성과 관련해 원치 않는 말을 했다(50%), 신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21.4%), 자기와 사귀자고 하며 잘 해줬다(21.4%) 등의 대답을 했다고 해요(탁틴내일&GSGT. 2017.10.10. 조사)."
- 아, 저는 이런 통계 기사를 볼 때마다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도 통계가 언제나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아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계속 이야기해 보면 특히 정서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들의 경우 관계를 거절하기도, 빠져나오기도 더 어려운 상황이에요. 가해자가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 주고, 선물도 주고, 용돈도 주는 등 정서적 친밀감뿐 아니라 경제적인 도움을 주며 다가오기 때문이에요.
대부분 그루밍 성범죄자의 경우,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주변에 도와줄 어른이나 친구가 없는 대상을 찾아 정서적으로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들어요. 그리고 상대에게 부족하거나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며 신뢰를 쌓은 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고립되게 만들어요. 그리고 나서 조금씩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요구하는 거죠.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사례에 따르면, 어떤 여성 청소년의 경우 가해자가 처음에는 손가락, 무릎, 어깨 등의 신체 사진을 요구하다가 나중에는 가슴과 성기 등의 사진까지 요구했다고 해요. 또 다른 경우 온라인으로 친분을 쌓은 후 실제로 만나 성관계를 요구/유도하고 불법촬영까지 한 후 나중에 신고할 수 없도록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 정말 아이들을 이용하는 '나쁜 어른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좀 미안해지려고 해요.
"맞아요! 하지만 좋은 어른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아이를 바꾸려고 하기보다 자신을 바꿔나가려고 노력하는 어른들이요! <증인>의 양순호 변호사처럼, 그리고 모르는 걸 아는 척 하지 않고 솔직하게 묻는 기자님처럼요! 다음 시간에는 그루밍 성범죄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알아보도록 해요! 오늘은 여기까지, 여러분의 심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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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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