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사랑해도 누군가 나를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홀로인 시간을 통해 누군가 나를 대신하기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아내가 불쑥 내게로 오면 설렘이 되살아납니다. 그것은 떨어져 지낸 시간의 효험이라 믿습니다.
이안수
아내가 오지 않자 내 생활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내가 올 때까지 저녁밥을 미루지 않아도 되고, 출근을 위해 새벽에 기상해야 하는 아내의 주기에 맞추어 내 저녁 생활을 조절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이웃이나 지인들과의 교류도 더 활발해졌습니다. 대화가 더 길어져도 안절부절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내게 할애되는 시간이 많아져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도 훨씬 길어졌습니다.
주중 파주로 서너 번 퇴근하던 아내는 그 횟수가 두어 번으로 바뀌었고, 더 시간이 흐르자 주말에 한 번으로 바뀌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차가 없는 나를 위해 올 필요가 있는 때만 오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퇴근 후 매일 1천미터씩 달리기를 하고, 등산학교에 입교해 등반을 배우고, 산악인들과 암벽등반을 즐겼습니다. 동기들과 전국산행을 경험한 뒤 홀로 지리산 종주를 해냈습니다. 불교대학에 입교해 경전을 배우고 도반들과 수행하는 시간을 시작했습니다. 독서량도 훨씬 늘었습니다.
대부분의 소식은 가족 단톡방을 통해 공유하지만, 아내가 파주에 올 때면 각자 쌓아둔 얘기를 풀어내느라 대화거리도 풍부해졌습니다.
별거는 배려할 수고를 더는 배려
나는 직업적인 이유로, 혹은 개인적인 욕구로 긴 기간 여행을 하곤 했습니다. 40대 후반에는 홀로 해외 유학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로 따로 떨어져 사는 삶은 우리 부부에게 낯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아내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의 스산함에 대해 알게 되었고, 더불어 아내 없는 시간의 생존을 견디고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수도 있었습니다.
내 방랑의 시간은 아내에게 짐을 지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없는 시간 동안 육아와 부모을 돌보는 일은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시쳇말로 독박육아뿐만 아니라 독박부양인 셈이었습니다. 나는 그 시간들에 대해 늘 아내에게 빚진 마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