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설명회에 참석한 날 찍은 사진.
김소담
아, 소원. 나도 잊고 지내던 소원이었다. 언젠가 침대 맡에서 지나온 세월을 제법 진지하게 추억하던 밤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모았던 돈으로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 아니면 여행이라도 길게 떠나보고 싶었지만,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기 위해 모두 포기했더라는 말을 했었다.
어릴 때부터 세계를 호방하게 누리는 모험가와 여행자를 동경했었는데, 그저 동경에만 머무르는 현실에 발 딛고 산 지가 오래였다. 그러고 나서 아직도 그 꿈이 소원으로 남아 있다고까지 이야기했던가. 반려인은 그 말을 꽤 오래 기억해주고 있었다. 하긴 뭐 사회에 굵직한 발자취를 하나 남기겠다거나, 서울 한복판에 수십 평 대 아파트를 자가로 소유하는 것에 비하면 제법 소박하고 실현이 가능할 것 같은 소원이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살면서 제일 재밌는 몇 가지 일은 여행을 떠나거나 해외 드라마, 영화를 보며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일이었다. 마침 K-pop이 부상하면서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해외 친구들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입시나 시험을 위해 준비하던 외국어는 그렇게도 지겹고 어렵기만 했는데, 누군가와 소통하고 문화를 알아가기 위해, 접하는 세상을 넓혀가기 위한 외국어는 배우고 싶은 열정이 차올랐다.
아마 그 소소한 재미들이 인생의 방향을 조금씩 만들어 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과 말에서 스쳐가던 일이 어느덧 현실이 되고 있었다. 지난 2월 중순, 정말 캐나다 이민성에서 워킹홀리데이 초청비자가 도착하고야 만 것이다.
"그럼 결혼은 왜 했어?"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저렇게 자유롭게 살고 싶으면 결혼은 왜 했어?' 아니, 사실은 가끔씩 들려오는 내 마음의 소리다.
우리도 처음부터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동거인으로 지내오면서 큰 불편함 없이 만족스러웠고, 혼인제도 자체가 가부장제의 산물이기도 하니 되도록 피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법률혼 외의 관계는 가족으로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크고 작게 쌓여가는 차별에 우리는 결국 백기를 들어 버렸다.
우리의 결혼에는 달콤한 프러포즈나 꽃잎 휘날리는 화려한 결혼식이 없었다. 대신 세금공제 혜택과 주택청약 순위, 배우자 수당, 재산과 연금의 법적인 보호 등의 현실적인 근거가 있다. 게다가 직장에 당당히 알리고 신혼여행 기간을 확보할 수도 있었으니 여러모로 이득은 이득이었다.
그렇다고 경제적 이유만으로 어쩔 수 없이 결혼했던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했던 건 우리가 이미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함께 지내는 게 즐거웠고 위로가 되었다.
만약 누구나 법률혼이 아니어도 가족을 선택해서 구성할 수 있고, 그에 합당한 혜택을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그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는 생활동반자법이란 게 요원해 보였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손쉬운 고민으로 법률혼을 결정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결혼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