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을 한달 앞두고 여느 때처럼 커피를 마시다 아내가 말했다. (커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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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고 싶어?"
지난 12월, 출국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때 아내가 다시 한번 물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부터 외국인들과 어울려 살다가 대학까지 외국에서 졸업한 내게 서울의 삶은 언제나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원래는 대학 졸업 후 그냥 거기 눌러살 생각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집안 사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서울은 내가 원하지 않았던 선택지였다. 대충 맞는 것 같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옷을 입은 듯한 느낌으로 그럭저럭 지냈다.
계속해서 다시 해외로 나갈 기회를 찾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 늘 갈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쯤 다시 기회가, 아니 용기가 생겼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준비를 했고 비행기만 타면 되는 시점이었다. 그때 아내가 물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아내였기에, 해외로 나가려는 나의 열망을 이해했고 줄곧 아무 말 없이 따라왔었다. 그러나 막상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 불안했나 보다.
아내의 불안은 너무 당연했기에 아무 대답 못하고 그저 바라만 봤다. 아내는 요즘 보기 드문 화목한 대가족의 차녀였다. 거의 매일 보며 사는 처가를 두고 저 멀리 가야 하는 건 아내에겐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번역 프리랜서를 하다가 호주로 넘어가서는 요리를 할 계획이 모두 세워져 있던 나와는 달리 승무원인 아내는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영주권을 받으면 다시 할 수 있다지만 그것도 빨라야 3~4년. 남편을 믿고 지지하지만, 자신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너무 컸다.
잠 못 이루는 날이 계속됐다.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지 아무도 답을 줄 수 없는 문제였다. 오롯이 나와 아내, 둘이서 결정을 내려야 했으니까.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아침에 일어나 늘 하던 대로 커피를 두 잔을 내려 식탁에 앉았을 때였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아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일년 정도 서울에 더 있다가 갈게."
아내는 일년 정도 서울과 호주에서 각자 생활하면서 어느 쪽이 정말 우리에게 맞는 곳인지 알아보자고 했다. 어린 나이가 아니니 조금 더 신중해도 괜찮지 않냐며. 그리고 자신은 아직 한국에서 뭔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따로 지내는 건 싫지만 계속 함께 할 사이니 잠깐 떨어져 있어도 참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긴 후 내가 답했다.
"그래."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내는 항상 자신감과 재능 그리고 꿈이 많은 사람인데, 나 때문에 다 놓고 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지 않았으니까. 가장 현실적이고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나 역시 서울을 떠나는 것에 100% 확신이 있지는 않았다. 배수진이 아니라 발 하나는 걸쳐 놓고 싶었던 참이었다.
나홀로 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