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구럼비구럼비는 폭만 1킬로미터에 달하는 용천수가 솟아나는 용암너럭바위. 송강호와 류복희는 해군기지가 지어지면서 많은 구럼비가 파괴되었지만 조금 남아있는 곳으로가 기도를 하고 나왔다. 이 사진은 발파되기 전 구럼비 사진으로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 제주 제3회 국제사진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정우철
지난 3월 7일 오후 2시경 평화활동가 송강호와 류복희씨가 해군기지와 연결된 주상절리 언덕에 쳐져있는 철조망을 끊고 들어가 구럼비(폭만 1km에 달하는 용천수가 솟아나는 용암너럭바위)에서 기도를 하였다.
두 사람은 약 2시간 정도가 지난 오후 3시 40분경 정문으로 왔다. 군 관계자의 지시에 따라 30분 정도 멈춰 서있다가 헌병의 퇴거 조치에 따라 정문으로 걸어 나왔다.
그 전에 전화로 방문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기지 안에 들어간 당일 오전에도 기지 안에 들어가겠다고 상부에 전해달라고 했으나 아무 연락이 오지 않자 이런 식으로 강행한 것이다. 류복희는 "우리도 이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일이 지난 3월 27일 두 사람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28일부터 30일 자정까지 4700여 명이 탄원서에 서명하였다. 이들은 "송강호와 류복희의 몸은 구속할 수 있어도 양심과 자유 의지를 구속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구속은 막아주기 바란다"라며 법원의 선처를 구했다.
30일 제주지방법원에서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열렸다. 송강호는 "제주도에 군사기지는 필요 없다. 필요 없는 물건은 하루 속히 없애 버려야 한다. 구럼비를 다시 시민에게 반환하라"는 말을 지인들에게 남겼다. 류복희는 "군사기지는 전쟁을 예방하는 방법이 아니다. 군사기지가 없어야 전쟁이 예방된다. 우리는 전쟁을 예방할 수 있다"라는 말을 전했다.
송강호는 현재 군용시설손괴, 군용물등범죄에관한특별조치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수감되었고 3월 30일 석방된 류복희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구속 전에 남긴 영상 편지
2011년 9월 2일 해군기지 공사 장벽 쳐놓고 구럼비 들어갈 수 있는 상황 아니어서 할 수 없이 바다로 구럼비로 가서 기도를 드렸다.
2014년 4월에 체포될 때까지 바다까지 철조망이 있었지만 제가 하나님과 구럼비 앞에서 저의 마음에 결의하고 약속한, 나를 위한 기도. 제주도가 진정한 군사력에 의지해서 자신의 안보와 평화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평화 수단에 의해 제주도와 대한민국이 평화를 지키는 것. 이웃 국가와 싸워서가 아니라 이웃 국가와 외교와 친선, 우정과 교류를 통해서 서로 함께 평화를 지켜 나아가는 군인들도 다 같이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었다.
이번에(2020년 3월 7일) 구럼비에 들어간 것도 해군을 해롭게 하거나 그분들의 군사 기상을 떨어뜨릴 목적은 아니었다. 군대에서도 여러 군인들이 보았고 스쳐 지나갔지만 저희가 구럼비에 앉아서 기도를 하는 것이 위해를 가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저희가 수상한 행동을 했다면 신고했을 것이다
(2012년) 3월 7일은 구럼비를 폭파한 큰 슬픔의 날이다. 그날(만큼은) 기도 묵상 시간 갖게 해달라고 2월 14일, 3월 7일 세 차례 걸쳐서 정식으로 방문 신청을 했고, 군대 내에서 자제해주길 바라는 요청서에 다 서명도 했다. 해군이 보다 성의 있는 답변을 해주고, 어떤 이유로 들어갈 수 없는 이유가 있더라도 이후에 어떤 조치를 협력적으로 같이 조치하자는 시민에 대한 예우를 갖춰서 답변해줬다면 무리하게 철조망 훼손하면서까지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재판받기 전에 이미 처벌을 (하는 것과 같은) 구속은 부당하며. 재판장님 부당한 요구를 철회해주기를 바란다.
3월 31일에 해군기지 앞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오두희 평화활동가는 "막대한 세금을 투자해서 설치한 초고속 CCTV가 알람 작동조차 고장이 나있었다. 해군기지 시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왜 그 책임을 송강호씨가 져야하냐"며 해군의 잘못을 꼬집었다.
변호를 맡은 백신옥 변호사는(민변 소속) "해군기지에 대한 단순한 항의 표시가 아니었다. 3월 7일만큼은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정기적인 날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한 송강호의 말을 전하며 "강정해군기지의 입지 타당성에 대해 정확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과 합의 과정의 문제점 등을 변호의 근거로 삼을 것"이라고 전했다.
두 사람
류복희는 티모르와 아프가니스탄을 시작으로 전쟁이 일어난 곳을 다녔고, 2005년 쓰나미가 발생한 아체에서 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돌보았다. 12년 정도 거주하며 현지 사람들이 자립할 시기가 되어 인수인계를 하고 2년 전에 한국으로 돌아와 제주에서 평화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송강호는 독일 유학 시절 르완다 내전의 참상을 직접 본 것을 계기로 2000년에는 단체를 꾸려 르완다, 소말리아,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반다아체, 카슈미르, 아이티 등에서 평화활동가로서 전쟁과 분쟁, 재난 피해자들의 고통과 함께하고 국내 후원자들과 평화활동가들을 양성하였다.
그러다 2011년 3월 강정마을로 이주해서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이어왔고 구럼비에 가서 기도를 했다. 펜스로 구럼비로 가는 길이 막힌 후에는 카약을 타고, 그것도 힘든 상황에서는 수영을 해서라도 구럼비에 들어가 기도했다.
2012년 구럼비 발파가 진행되던 현장에서 펜스를 넘어서다 경찰에 체포됐다. 이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행이 있었고, 송강호는 자신을 폭행한 경찰들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