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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뛰어든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어요. 튀는 침방울에서 벗어나려고 좋은 이와 밥 한 끼, 차 한 잔 제대로 나누지 못했어요. 그새 열 달이라니... 무디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느긋한 이들도 슬슬 걱정스러움을 내비쳐요.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앞으로 입에 풀칠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던데…' 하면서 흔들려요. 그런데요. 마스크로 코와 입만 가렸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요. 눈마저 가려야 했다면 어쩔 뻔했어요?
그거 아세요? 사람 눈은 흰자위가 넓은데 짐승은 눈동자만 보여요. 짐승이 흰자위를 넓히지 않은 건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는 데 있대요. 사람 눈에 흰자위가 넓은 까닭은 내 뜻을 남에게 잘 드러낼수록 힘을 모으기 쉽기 때문이고요. 눈에는 마음이 잘 드러나요.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 흔히 하는 얘기지요? 속내, 품은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란 말씀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마음 나누길 힘들어해요. 뇌를 많이 써야 하기 때문이래요. 부부끼리 말다툼만 해도 오래달리기를 하고 난 것처럼 힘이 들잖아요. 그런데 늘 많은 사람과 맞닥뜨리며 벌이를 해야 하니 죽을 맛이에요.
백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흔히 칠팔 십 명이 사는 마을에서 태어나 살다가 죽었어요. 나보다 먼저 태어나서 살다가 돌아간 이가 칠팔 십 명쯤 되고, 늦게 태어나서 같이 살아가는 이가 칠팔 십 명쯤 되니까 백오십 명하고 이웃하며 살다가 돌아가면 됐어요. 그런데 산업사회를 맞으면서 많은 이들과 어울려 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많은 이와 부대끼며 살기 알맞게 바뀔 겨를이 없었을 머리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온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리다가 축 늘어져서 집에 돌아와 식구 눈빛을 하나하나 살필 겨를이 있으려나요? 바깥에서는 더없이 넉넉하다는 엄마와 아빠가 놀아달라며 감기듯 안기는 아이에게 "아휴, 더운데 얘가 왜 이리 달라붙어!" 하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퉁명스레 튀어 나가기도 해요. 에효. 이리저리 시달리다가 우울해하며 자살하려는 이들도 적지 않아요.
도시, 그것도 큰 도시로 나가야만 살길이 열린다면서 도시로만 떠돌며 여러 사람 사이에 섞이려고 이웃이 죽어 나가는지 마는지 살필 겨를도 없이 몸부림쳐온 결과에요. "이대로는 살 수 없다, 고즈넉하니 사람다운 삶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하고 흔드는 이들이 없지 않았어요. 그래도 돌아서지 못했죠. 알아버린 돈맛을 놓을 수 없었거니와 달리 사는 길을 가기 두려웠거든요.
바로 그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놈이 나타나서 우리를 억지로 좁은 마을로 집으로 욱여넣었던 거죠. 아무 데도 가지 못해 답답해서 못 견디는 걸 '코로나 우울'이라고 한다지요? 견디려 말고 받아들여요. 코로나에 떠밀려 마을로 집으로 돌아온 식구들 눈을 마주 보며 '그래. 현대인으로 살기 무척 힘들지? 떠도느라 애썼어.' 하면서 서로서로 토닥여 봐요. 그렇게 한숨을 돌리고 옆집 문을 두드려보세요. 거기에는 그저 멀뚱멀뚱 바라봐야 하는, 모르는 남이 아닌 그림과 그림이 엄마 그리움 씨가 산답니다. 문밖으로 '빼꼼' 고개 내미는 그림이 눈을 바라보면서 "안녕?" 하고 말을 건네봐요. '배시시' 눈부처가 반길 거예요.
우물 안 개구리라고요? 그게 뭐 어때서요? 제가 해봐서 아는데요.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 노릇도 해보면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돈벌이는 어떻게 하느냐고요?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어려움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잖아요. 나눠 벌고 나눠 써요. 일거리와 일자리가 줄어들면 여덟 시간 일하던 걸 여섯 시간, 그도 안 되면 네 시간, 세 시간으로 줄여 여럿이 나눠서 하고 남은 시간을 같이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 거예요. 나물 먹고 물 마시며 어울려 살아요. 우리. 괜히 우리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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