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에서 영어를 추방하자는 선전물(1943년)극우주의자들은 적의 언어인 영어를 사회에서 배격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제국 지도부조차도 영어 금지에 난색을 표했다. 한편, 전후 일본에서는 순일본어 사용 고집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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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패전에 이르기까지 영어를 금지하진 않았다. 태평양 전쟁 개전의 주역인 도조 히데키 수상조차도 '영어를 금지해서는 오히려 전쟁수행이 곤란하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해군병학교(사관학교) 교장 이노우에 시게요시 제독은 '해군 장교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적성어 배격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기도 했다.
제국 일본이 패전한 이후, 연합군사령부가 들어선 일본에선 영어의 사회적 지위가 회복됐다. 민간에서 적성어 배격을 주장했던 극우파들에 대한 기억은 '순일본어 사용 고집'에 대한 거부감으로까지 이어졌다.
오늘날의 현대 일본어는, 외국어에서 어휘를 수용해 가타카나로 표기하는 것에 상당히 적극적이다. 즉 외국어 어휘를 일본식으로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전 세계적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마저, 일본에서는 'ソーシャルディスタンス'(social distance)라는 영어식 표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는 한국어에서 넘어 온 어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가타카나 표기의 한계상 발음이 한국어 원어 발음과 다소 다르긴 하나 '한국 유래'라는 것은 일본에서 전혀 숨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삼겹살(サムギョプサル、사무겨푸사루), 김치(キムチ、기무치), 게장(ゲジャン게쟝), 막걸리(マッコリ、맛코리) 등을 찾아 한인타운을 찾는 일본 시민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