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5월 3일 한강백사장에서의 민주당 신익희후보 한강 유세
서울스토리
해공의 급서를 애통함
어이! 어이!
해공 형이여! 신익희 형이여!
형이 가셨단 말이 정말이요? 참말이요? 호외가 잘못이 아니오? 오보가 아니오? 아아! 5월 5일 오전 다섯 시! 이 무슨 기구한 시간이며, 이 어인 얄미운 시간인고? 추야월(秋夜月) 아닌 초하(初夏)의 새벽에, 오장원(五丈原) 아닌 이리행(裡里行) 차 중에서, 우리 민중의 친구요, 미래의 대통령인 해공 신익희 선생의 장성(將星)은 그만 떨어지고 말았단 말인가? 떨어지되 어떻게 이다지도 허무하게, 그리고 이다지도 안타깝게 진단 말이요? 때를 가리되 어떻게 이다지 적종하게 그리고 이다지 원통한 때를 가리어 진단 말이요?
형이 가신 일은, 형 일 개인에 관한 일이 아니요, 형의 가족의 애절에 한한 일이 아니요, 그리고 우리 동창과 친우들의 비통에만 한한 일도 아니요, 전국민 전민족이 호천곡지(號天哭地)하여 몸부림치는 줄을 알기나 하고 가셨나이까? 필부필부(匹夫匹婦)와 초동목수(樵童牧豎)까지라도 모두 형의 관(琯) 머리에 매어 달리려 덤비고, 형을 운구하는 길에 느끼어 눈물을 흘리며 뒤따르는 것을 보시고, 발길이 차마 어이 돌아서더이까?
한강 백사장의 그 많은 군중을 둔연(頓然)히 잊어 버리고 가셨소? 무엇 때문에 수십만 군중이 형의 경해(警咳)에 접하려 하든 것을 잘 아실 것 아니오? 아마 형도 뒤에 남아 있는 우리의 비통 못지 않은 원한을 가슴에 품고 가셨으리라.
형은 신언서판을 구비한 호인물이었고. 늠름한 호걸이었소. 그러나 그 군중은 형의 풍채를 사모하였던 것이 아니오. 형의 구변에 매혹되었던 것도 아니오. 또 형의 필재를 애호하는 생각으로도 아니오. 물론 이러한 점도 전연 몰각된 것은 아니리다. 그러나 국가 민족에 대한 형의 분골쇄신적 충성, 통일ㆍ자유를 위한 형의 불요불굴의 금강심(金剛心), 시사(時事)ㆍ세정(世情)에 대한 형의 투철명석한 판단력, 이 모든 사실을 63세라는 형의 인생 노정(路程)이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에, 일반 민중이 형을 암야(暗夜)의 명촉(明燭)과 같이, 미진(迷津)의 보아(寶我)와 같이, 노옥(老屋)의 지주(支柱)같이, 적전(敵前)의 철성(鐵城)같이, 믿고, 바라고 의지하였든 것이 아니었든가요?
형은 이러한 민중의 신망과 의뢰(依賴)와 갈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60평생을 국내에서 혹은 해외에서 형극과 고초를 달게 여기며, 파란과 장애를 돌파하면서 초지일관, 철두철미, 불파불멸(不破不滅)을 계속하여 온 것이 아니었든가요? 민중의 여망이 어찌 우연의 소치이며, 일시적 흥분에서 나온 것이라 하리까?
형은 일찍이 누구에게도 노색(怒色)을 보인 일이 없었소. 해활천공(海濶天空)의 대도량의 주인공이 아니시오?(……)
형의 지취(志趣)야 변할 리 있으며, 소관사(所關事)야 바뀔 수 있었으리까?(…) 한결같은 정치인으로서 호국 투사로서 시종일관하여, 필경은 야당의 대통령 입후보자로 출마하였다가 선거를 겨우 열흘 앞둔 5월 5일에 거연(遽然)히 급서하시다니, 모두가 꿈만 같고 거짓말 같소이다. 대체 이것이 무슨 일이요? 하늘이 이다지 이 나라 이 백성을 미워하고 박대하시는 것입니까?
이럴 줄 알았더라면, 형과 좀 더 자주 면접하였을 걸. 형은 국사(國事)를 위하여 안비막개(眼鼻莫開)하였었고, 나는 속무(俗務)에 시달려 골몰무가(汨沒無暇)한 탓으로 1년에 서너 차례 만나기도 쉽지 못하였든 것이요. 그러나 옛날 학창시대의 형의 언행거지(言行擧止)가 이제 새삼스럽게 눈 속에 되살아남을 절절히 느낄 뿐 아니라, 대인군자(大人君子)의 근자(近者)의 모습이 눈 앞에 생생히 나타나고, 그 정중 근엄한 음성이 고막을 쟁쟁히 두드리니, 진정 안타까와 견딜 수 없소그려. 지금 이 시각에도 형이 효자동 사저(私邸)에서 망중(忙中)에 흥겨워 하는 듯하며, 정당 사무실에서 대인접물(待人接物)에 파안일소(破顔一笑)로 담론에 열중하시는 듯 하구려.
아무래도 형이 타계하였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고, 거짓말 같기만 하구려. 이 세상 어느 구석을 뒤지면, 형의 광안(光顔)을 다시 한 번 뵈오리까? 원통하고 억울한지고. 인생의 무상이여! 천도의 무심이여! 그러나 형은 잘 아시리다. 육신의 인간은 일시의 가탁(假托)이요, 심령과 이상이 영원의 생명인 것을. 계계승승(繼繼承承) 무궁히 걸어 오는 후래(後來)의 인간들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 줄 수 있는 정신과 주의(主義)가 진정한 의미의 생명이요, 또한 영생인 것을 형은 너무도 잘 알고 계시리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달관하고 제시리다.
부디 명목(暝目)하시어 선복(仙福)을 면면(綿綿)히 누리시오. 그리고 이 땅의 무리도 굽어 살피시오. 형의 이상을 이어 받들고, 형을 태양같이 앙모(仰慕)하여 마지않는 이 무리에게도 명우(冥佑)를 내리시오.
해공 형이여! 안면(安眠)하시라. 신익희 형이여! 어이 어이! 어이 어이!
1956년 5월 6일
효자동 자택에 안치한 영구(靈柩) 앞에 엎드려 일석(一石) 아우는 원통히 곡하노라. (주석 3)
주석
3> 앞의 책, 778~7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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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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