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정인이 사건'으로 불렸던 '양천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은 2020년 10월 13일 서울시 양천구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살인 사건으로 2021년 11월 26일 2심 재판부가 양부에게 징역 5년, 양모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으나 검찰과 양부모 모두 상고한 상황이다. 사진은 지난 2021년 12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정인이 사건 대법원 파기환송 촉구 집회 모습.
연합뉴스
'그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양천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사건의 내막과 전후에 벌어진 일, 두 차례에 걸친 사법부의 판결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그 사건, 그리고 유사한 사건들의 숨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새로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가진 질문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첫째, 애초에 사건 당사자들은 그 입양 부모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둘째, 도대체 그 입양 부모는 어떻게 그런 악한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셋째,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이 글에서 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그들(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왜 그 부모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하는 것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타인의 해석>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여러 사건을 예로 들어 풀이하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침공을 눈치 채지 못한 영국 총리 이야기, 미국의 국방정보국에서 촉망받는 요원이었으나 실제로는 수많은 정보를 캐내어 쿠바에 넘겨준 스파이 이야기, 세계적인 금융사기 사건을 일으킨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을 파헤친 애널리스트의 경고를 무시한 이야기, 수많은 아동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여 결국 성폭력을 가한 유명한 풋볼 코치 이야기 등 사례는 차고 넘칩니다.
이 사례들을 통해 말콤이 소개한 원리 중 하나는 '진실기본값 이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가 거짓말쟁이일 가능성보다는 진실을 말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진실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사람들을 대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거짓말쟁이로 인해 크고 작은 피해를 입곤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직할 것이라고 믿고 대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뢰 사회, 신용 사회의 기반이니까요. 문제는 악당들이 이러한 빈틈을 노리고 선량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콤의 통찰에서 힌트를 하나 찾을 수 있습니다. '진실기본값 이론'이 입양기관과 가정법원, 아동보호전문기관 당사자들 마음속에서 작동했을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즉 "그들은 그 입양부모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라는 가정입니다.
'진실기본값 이론'의 덫
그 아이를 그 부부에게 보내기로 결정한 입양실무자, 가정법원에서 이 부부를 조사한 가사조사관과 인용 판결한 판사, 그 입양가정의 사후관리를 담당한 입양실무자,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조사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사례관리자 모두가 이 원리의 덫에 빠졌던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비입양부모와 입양부모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 편견이 전제된 가정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일상에서 입양부모를 만나게 되었을 때 흔히 건네는 표현이 있습니다. '좋은 일 하셨네요', '대단하십니다', '내 자식도 키우기 힘든데 남의 자식을 키우시다니' 등등입니다. 그런데 입양부모들은 이런 말 듣는 것을 불편해하고 심지어 불쾌하게 여기기도 한다는 점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이러한 입양부모와 예비입양부모에 대한 인식이 이해당사자들과 입양부모의 지인들에게도 유사하게 작동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입양부모들은 좋은 사람이고 예비입양부모들은 좋은 일을 하려는 좋은 사람들이다'라는 전제가 마음속에 깔려 있고 그것이 예비입양부모 심사과정에도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동을 인신매매하는 악당들의 소식을 종종 들어왔지만, 지금 내 눈앞에 앉아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 부부가 조만간 아기를 학대하는 악당이 될 거라고 예상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친족 관계에서, 직장에서, 사교집단에서 만날 때 늘 친절했던 천사 같은 부부가 집에서는 악마가 될 거라고 예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입양기관 실무자들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편견에서 벗어나 예비입양부모의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훈련받아야 마땅한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를 포함한 아동복지 연구자들도 발길을 멈추고 다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양실무자들은 이 일을 하기에 충분한 훈련을 받았는가? 결론은 '아니다'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의 한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오래된 절친에게 간 이식을 해주기로 마음먹은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의사를 찾아와 간 이식을 요청한 이 사례는 장기기증 담당 코디네이터에게 전달됩니다. 코디네이터는 장기기증을 가장한 불법적 장기거래를 막기 위해 친구라고 주장하는 두 사람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입증할 자료를 요청합니다.
그런 가운데 한 친구가 다른 친구의 결혼식 하객 사진에 없다는 사실이 문제가 됩니다. 코디네이터는 "죄송하지만 이것이 제 일입니다. 한 점의 의혹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저는 계속 의심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그 친구가 다른 친구의 절친으로서 축의금을 받아 정리하느라 사진을 같이 찍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 코디네이터의 태도가 입양기관 실무자들에게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 부부가 부모가 될 준비가 되었을까? 이 아기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이 부부와 아기는 서로 잘 맞을까? 이 부모는 양육의 어려움을 지혜롭게 해결해 갈 수 있을까?
지난해 여름 제가 참여한 연구를 통해 만난 입양기관 실무자들은 그동안 스스로 그리고 서로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졌고 최선을 다해 위험요인들을 제거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아마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완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재라인의 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