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들>책표지
북하우스
내 안의 검열관에 대해 떠올리게 된 것은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 덕분이다. 저자는 거식증으로 인해 한때 37킬로그램까지 체중이 줄었다고 한다. 그러니 처음 책을 펼칠 때까지만 해도, 이 이야기는 나와 무관할 것이라 여겼다. 나는 그런 강박을 가져본 적이 없다며 섣부른 거리두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나 역시 여성에게 몸을 더 축소하고 보완하며 통제할 것을 요구하는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여성의 몸을 평가하는 시선에 반발심을 가지면서도, 나 역시 튀어나오는 살들을 시시각각 점검하며 그 문화에 동조하고 있었으니까.
미디어와 자본주의는 이 흐름의 한 축으로 지목된다. 끊임없이 불가능한 요구를 하며 우리가 자기 자신으로 있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여성은 더 날씬해지고 잡티와 주름을 감추고 털 하나 없이 완벽해야 하므로 수시로 자기 몸을 통제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곳곳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들이 너무도 강렬하여 여성 혐오에 대한 인식과 문화 분석 능력을 갖춘 사람조차도 그 요구에 굴복하기 쉽다고 말한다. 이로써 자연스러운 욕구들을 제한하고 축소하며 억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은 식욕에 국한되지 않고 더 멀리 나아간다. 식욕은 갈망과 동경, 풍요와 쾌락을 향한 욕구와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외모로 평가되고, 얕잡히고, 주장을 삼켜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며 자기 자신에게 그 욕구들을 느낄 권리가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된다는 것.
그녀는 이 문화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몸을 긍정하며, 욕구를 드러내고, 불가능한 요구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여성이 사회적인 위치와 권리를 당당하게 획득하는 것도 몸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1959년 미국에서 태어나 20년 전 세상을 떠난 작가지만, 나는 지금, 이 땅에서도 그녀의 주장이 유효하다고 판단한다. 우리 몸은 평가와 멸시의 대상이 아닌, 존재 그 자체가 되어야 하므로. 어떤 형태의 굶주림도 없는 세상을 염원하며 이제 몸이 아닌, 문화의 독소를 해독해야 할 차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성의 몸은 페미니즘이 가장 덜 건드린 미개척지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최후의 미개척지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여자의 욕구, 그리고 자유와 권리 의식과 기쁨을 품고 자기 욕구를 마음껏 채울 수 있는 여자의 능력은 진보의 표지인 동시에 진보에 대한 은유다. 우리는 얼마나 허기져 있는가? 얼마나 채워져 있는가? 얼마나 갈등하고 있는가?" (383쪽)
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은이), 정지인 (옮긴이),
북하우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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