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18일 한 시민이 기도하고 있다. 2022.9.18
연합뉴스
대학교 동기인 영희(가명) 역시 전 남자 친구에 의한 스토킹 피해자다. 그녀도 남자 친구에게 헤어짐을 고하자 마자 집착어린 연락이 시작됐다.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는 기본이었다. 연락의 대부분은 '숨을 끊어 놓겠다'라는 내용이었다. 연락처를 차단하면 바로 다른 번호로 연락이 왔다. 하루에도 누구의 것인 지 모를 번호의 전화를 받으며 영희는 종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녀가 어학연수를 떠난 다음에도 공포어린 연락 세례는 이어졌다. 해외 전화로까지 걸려왔다. '귀국만 해봐. 죽여 버릴거니까.' 영희는 이 문자를 받고 인천 공항에 도착하기 전 호신용 스프레이를 구매해야만 했다.
그는 영희가 다니는 독서실은 물론 학과 강의실, 단골 식당까지 술을 먹고 찾아 왔다. 하루는 그녀가 살던 오피스텔의 1층 보안 문이 고장난 틈을 타 그녀의 집 문까지 칼을 들고 찾아왔다. 3시간 넘도록 쾅쾅 두드리는 발길질과 고함소리가 이어졌다.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친구 품에 안겨 내내 울었다.
무려 4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그의 연락이 온다고 한다. 영희가 내게 가장 먼저 신당역 살인사건 기사 링크을 공유해주며 말했다.
"그때가 생각났어. 그래서 눈물이 너무 많이 나더라. 왜 우리의 귀갓길은 늘 안전하지 않은 걸까?"
스토킹 범죄, 이젠 끝내야
스토킹 범죄는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 애인, 회사 동료, 그저 일면식 없는 낯선 이에 의해서 말이다. 내가 스토킹을 당했을 때 가장 두려웠던 건 '보호받지 못할 것이란 확신'이었다. 신고한다고 해도 업무량이 많은 경찰들이 24시간 '그 사람'을 감시·감독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왜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도망쳐야만 할까. 내가 이직할 회사를 서울에 잡고 서둘러 상경한 이유엔 '그 사람'을 다시 길에서 만나는 일을 완전히 피하기 위함도 있었다. 살고 싶었고,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에서도 그와 비슷한 얼굴의 사람만 봐도 눈물이 났다. 설마 서울까지 올라와 나를 쫓고 있을까. 어디선가 나를 해치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까.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 한 서울시의원이 말했다.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여러 폭력적인 대응을 남자 직원이 한 것 같다"고. 수백 통의 연락을 넘어 칼로 자신의 감정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게, 왜 덤덤히 언급되는 이별의 한 과정이 됐나. 상대의 감정을 받아줬더라면 그 역무원도, 그리고 나도 그 '폭력적인 대응'을 피할 수 있었을까.
내 귀갓길이 안전했으면 좋겠다. 그저 하루 일과를 끝내고 무사히 집에 들어가 사랑하는 가족들 품에 안겼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겐 소소할 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매일의 바람이자 소원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두려운 귀갓길을 걷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좀 더 '당연하게' 그리고 '정상적으로' 바뀌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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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친구가 겪은 잊지못할 스토킹...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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