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구조적 차별 없다면서 여가부 없애려는 시대가 낳은 비극

등록 2022.09.18 20:03수정 2022.09.1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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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사망한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 김종훈

 
강남역의 악몽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번에는 신당역이다. 우리는 다시 '여자라서 죽었다'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여성들의 절규를 듣고 있다. 가부장적인 여성차별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멸시당하고, 배제당하고, 성차별과 성폭력의 대상이 돼 고통받고 죽어왔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다시 터져나오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법과 제도의 부재와 부족함이 낳은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이 사회에는 가정(가부장)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의 범죄를 간섭하지 말아야 할 개인적인 문제, 좋아하고 사귀던 사이에 벌어진 사사로운 문제로 취급하는 인식과 문화가 존재하고, 그것이 법과 제도에도 반영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정당의 청년여성 의원들과 민주당의 권인숙 의원, 서지현 전 검사 등이 진작부터 제안했던 법과 제도의 부족함과 입법 강화 방안들을 하루빨리 진지하게 귀담아 들어서 받아들이고 이행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런 행위들이 왜 용납될 수 없는 폭력이고 범죄인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고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부장적이고 여성차별적인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는 배제하면서, 오로지 처벌 강화로만 접근하고 방향을 몰고 가려는 일부 보수언론과 윤석열 정부와 한동훈 법무부 등의 대응에는 우려가 가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장관 김현숙도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단지 몇몇 괴물같은 가해자들이 문제이고 그들을 신상공개하고, 전자발찌를 채우고, 더 강하게 처벌하고, 더 오래동안 감옥에 가둬두면 문제가 해결될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이런 논리가 가장 강하게 작동했던 것은 레이건 시대의 미국이었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했고, 그것은 사회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경쟁하는 개인들로 모든 것을 보게 됐다는 뜻이었다. 범죄도 몇몇 괴물같은 개인들의 문제가 됐고, 그들을 감시하고 처벌하고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면 해결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산자유주의적 민영화와 결합해 사설감옥까지 번창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감옥 수감자 수는 1970년대 30만 명 수준에서 2000년대 230만 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특히 가난한 흑인 남성들은 잠재적 강도, 강간, 살인범으로 지목됐다. 흑인남성 3명중 1명이 크고 작은 전과를 가지게 됐다. 


이렇게 미국은 세계최고의 대량감금 체제, 군사화된 경찰기구를 가지게 됐다. 이것은 미국의 범죄를 줄이고 안전한 나라로 만들었는가? 아니다. 이것은 경찰의 흑인 살해와 총기난사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고, 오늘날에도 트럼프같은 정치인은 '법과 질서', '범죄와의 전쟁'을 말하며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 듯이 대부분의 범죄는, 특히 '여성혐오 범죄'는 사회구조적 원인이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차별받는 사회적 구조,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이나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적 규범, 자신보다 높은 위치의 남성에게 당한 무시는 참아도 여성에게 당한 무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느끼도록 남성을 길들이는 사회적 문화 등이 존재한다.

이런 구조, 문화, 규범, 이데올로기가 가장 강력하고 또 오래도록 남아있는 곳이 보수적 사법체계와 경찰, 검찰, 사법부같은 국가기구들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검찰은 바로 서지현 검사에 대한 조직적 2차가해가 벌어졌던 곳이고, 김학의나 한동훈 처남의 성범죄를 덮어주려 했던 곳이다.

이런 검찰을 핵심적 기반으로 등장한 윤석열 정권은 대선 때부터 여성가족부 해체를 선동하면서 '구조적 여성차별은 더 이상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국민의힘 의원 하태경은 "페미니즘 자체가 반헌법적 이념"이라며 여성차별에 맞선 사상과 운동을 공격했다.

집권 직후에 윤석열 정권이 제일 먼저 한 일 중에 하나가 법무부에 파견돼서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던 서지현 검사를 사실상 '제거'하는 것이었다.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무기로 하는 극우익 유튜버들을 개국공신으로 대우하며 취임식에 초청하는 등 한껏 자신감을 심어 준 것도 윤석열 정부였다.

이들은 그런 자신감으로 더욱 공공연하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여성 정치인과 활동가들을 상대로 막말, 욕설과 그야말로 스토킹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며 계속 코인팔이를 해 왔다. 족벌언론들은 그것을 부추겼다. 우리가 신당역 사건에 더욱 더 분노하게 되는 것은 이런 흐름과 방향 속에서 벌어진 비극이기 때문이다.

대선 때부터 윤석열을 돕던 이수정 범죄심리학 교수는 자신의 사회적 권위를 이용해 이런 방향과 흐름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던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페미니스트'라면서 여성가족부 해체를 지지하는 이수정 교수는 얼마 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페미니스트 운동을 '피해망상 페미니즘'으로 변질시킨 사람들이 있다." "성폭력 범죄는 '차별 타파'가 아니라 '개별적 피해 회복'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페미니즘이 등장했을 때, 사회주의 이론이 근간에 있었다. 남성은 지배계층, 가부장, 가해자이고 여성은 피지배계층, 전업주부, 피해자라는 인식이다. 구조적 차별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런 시각을 갖고 있다."

가부장적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을 주목하는 관점을 '사회주의', '좌파'라고 낙인찍으며, 여성들의 불안을 피해망상으로 치부하고, 처벌 강화 등 개별적 해법만을 추구하는 이런 목소리가 커질수록, 신당역 사건이 드러낸 문제들의 해결책은 더욱 멀어져갈 것이다.
#신당역 #여성혐오 #여성가족부 #구조적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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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보다 사람이 목적이 되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함께 배우고 토론하고 행동하길 원하며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실행위원입니다. 더 많은 글들은 여기서 봐 주세요. http://anotherworld.kr/ 페이스북 계정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746737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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