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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의 시인 천상병 변론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12] "그는 서울상대 출신이지만 세상에 나서기를 원치 않았던 기인이다"

등록 2022.10.25 15:34수정 2022.10.2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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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막걸리 한잔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시인 천상병 막걸리 한잔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시인 천상병

막걸리 한잔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시인 천상병 막걸리 한잔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시인 천상병 ⓒ 목순옥

 
그의 시국사건 변론사에 〈동백림 간첩단 '장외' 사건〉이라는 좀 색다른 명칭의 사건이 들어 있다. 동백림사건에 엉뚱하게 연루된 천상병 시인을 두고 한승헌은 이렇게 표기한 것이다.

천상병은 몰라도 그의 <귀천(歸天)>이란 시는 많이 알 것이고, 서울 인사동 골목에 동명의 식당은 더 많이 알려진다.

        귀  천 

 나는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검스레한 얼굴에 자주 껌벅이는 눈, 더듬거리는 말, 줄담배와 폭음, 애교 섞인 용돈 수금(?) 등으로도 고은ㆍ김관식과 함께 한국문단 3대 기인으로 불릴 만 했다." (주석 11)는 기인행각의 시인 천상병을 중앙정보부는 동백림사건의 피의자로 몰아 구속했다. 


한승헌이 이응로 화백의 변호를 맡아서 서울구치소 접견을 다니고 있었는데, 34명의 피고인 중 유독 그만이 변호인이 붙지 않았다. 생업이 없었고 천진스런 행동으로 누구에게나 악의 없이 손을 내밀고 "천 원만"을 얻어 근근히 살아가던 처지여서 달리 변호사를 대거나 접견 올 사람이 없었다.

문인들과 교제가 많아 문단 쪽에 발길이 잦았던 한승헌은 천상병과는 아는 사이였고 그의 남다른 시재도 꿰고 있었다. 자청해서 변호인이 되었다. 그는 서울상대 출신이지만 세상에 나서기를 원치 않았던 기인이다.


공소장대로라면, 사건이 터지기 4년 전인 1963년 10월 초순 어느 날 저녁, 그는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 뒷골목에 있는 대포집에서 강빈구 씨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강씨가 자신을 동독과 동백림 등 적성국을 왕래하였다는 말을 하면서 난수표와 출판사 이야기를 하던 끝에, 여의치 않으면 한국에서 고생하지 말고 동독에 갈 생각이 없느냐는 권유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범죄라고 공소장에 들어가 있는가 하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공소장에 의하면, 그것은 '동인(강빈구)이 반국가단체인 북괴의 구성원으로 그 목적수행을 위하여 암약중인 간첩이라는 정을 인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사정보기관에 고지치 아니하고……'라고 해서, 말하자면 반공법상의 불고지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참 무서운 법이었다. (주석 12)
a 찻집 새 간판 앞과 뒤. 천상병 선생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뒷면에 양각되어 있어 정겹다. 찻집 새 간판 앞과 뒤. 천상병 선생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뒷면에 양각되어 있어 정겹다.

찻집 새 간판 앞과 뒤. 천상병 선생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뒷면에 양각되어 있어 정겹다. 찻집 새 간판 앞과 뒤. 천상병 선생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뒷면에 양각되어 있어 정겹다. ⓒ 이동환

 
천 시인에 대한 공소장은 반공법 외에 형법상의 공갈죄가 포개졌다. 검찰은 그가 '생업'으로 지인들에게 "천 원만" 하고 얻어 쓴 돈을 협박하고 갈취한 것으로 몰았다. 다음은 공소 사실 제3항이다.

1965년 10월 경부터 1967년 6. 25까지 사이에 같은 방법으로 동인을 협박, 동인으로부터 1주일에 1, 2회 씩 서울 명동소재 금문다방, 송원기원 등지에서 주대 100원 내지 500원 씩 도합 금 30,000원 가량을 교부받아 이를 갈취하고…….

여기서 '동인(강빈구)'은 천상병의 서울상대 동기생으로 동백림사건의 피의자로 구속된 인물이다.

절친한 대학친구를 간첩으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하여 2년 동안 매주 1, 2회씩 처음엔 6,500원을, 그 다음엔 100원 내지 500원씩 갈취했다는 것이다. 2년도 채 안 되는 동안 매주 한두 번씩 상습적으로 뜯어낸 돈의 합계가 36,500원이라? 간첩신고 협박에 100원씩, 많아야 500원을 갈취했다? 이것은 코미디였다. (주석 13)

천 시인은 정보부에서 세 차례나 전기고문을 당해 혼절한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재판부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는 사법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면서 항소를 포기하였다. 다시 거리로 나선 그는 고문 후유증이 겹쳐 행려병환자로 입원하고 간호사이던 목순옥 씨와 만나 1972년 결혼하였다. 부인이 인사동에 식당 '귀천'을 열면서 지인들에 대한 '수금'은 그치고, 아내에게 하루 2천원 씩 용돈을 타 쓰며 시를 짓다가 '귀천'하였다.

석방된 천 시인은 나의 사무실로 인사를 와서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그때 '빈자일등'이란 말도 했다. 물론 나는 그를 위로할 겸 그에게 저녁 대접을 했다. 나중에 문단 친구들에게 천 시인이 식사를 제의했던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밥을 사겠다고 했다니, 천상병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 일일 것"이라며 크게 웃었다. (주석 14)


주석
11> 앞의 책, 173쪽.
12> 앞의 책, 174쪽.
13> 앞의 책, 175쪽.
14> <자서전>, 80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승헌 #시대의양심_한승헌평전 #한승헌변호사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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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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