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집 탱자싸롱 지준호씨가 제주 동쪽 세화에서 운영 중인 민박집 '탱자싸롱' 전경. 민박집 뒤로 푸른 세화 바다가 보인다.
지준호
- 장사를 하면서 일정 수익을 계속 올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대단하신 것 같아요. 남자 혼자 산다고 하면 편견이 있잖아요. 왠지 제대로 살지 않을 것 같고. 근데 십 년이란 시간을 상당히 지혜롭게 보내신 것 같아요.
"일종의 강박일 수도 있는데, 하루를 루틴대로 보내요. 칸트가 몇 시만 되면 산책을 했다는 일화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예약표를 보고 예약률이 안 좋으면 금액을 조정해서 어떻게든 방이 나가게 하고, 숙소 청소하고 밥 먹고 수영하거나 헬스를 하거나, 골프 연습장을 가죠. 저는 정적인 취미와 동적인 취미를 모두 갖고 있는데, 요즘은 몸 쓰는 걸 주로 하고 있어요.
그렇게 루틴대로 살아야 불안하지 않아요. 내가 열심히 살고 있구나, 싶고요. 사실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거든요. 늦게 일어나도 되고 늦게 자도 되고요. 그럴 때도 가끔 있지만.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이제는 알아서 아침에 눈이 떠지더라고요. 혼자 지내지만 계획대로 시간을 보내야 하루를 낭비하지 않고 제대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숙박업을 하다 보니 살림 센스도 정말 많이 늘었어요. 어떻게 하면 절약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깔끔하게 쓸 수 있는지, 아주 잘 알죠. 식사 준비하는 게 늘 기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서 건강하게 먹으려고 노력해요."
좋아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삶
- 십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어떠세요, 달라진 게 있나요?
"많이 달라졌죠. 제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제주가 변한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주 오기 전 제 화려했던(?) 시절이 전생 같아요.(웃음) 예전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았는데, 지금은 혼자 있는 게 편해요.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중시하는 가치, 추구하는 재미 같은 게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사실 십 년 전 제주는 힙한 게 있었거든요. 굉장히 매력적인 느낌이 있었고 독특한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때는 사람들과도 많이 어울리고 그랬죠. 근데 언제부턴가 생활인이 돼서 그런지, 요즘은 제주도도 그렇고 제주도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예전처럼 특별해 보이지는 않아요. 그래서 더 제 삶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제주에 온 것도 혼자 잘 지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죠."
- 십 년 전 제주에 온 게 잘한 선택인 것 같나요?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산 것 같아요. 제주가 그런 게 있어요. 같은 막일을 해도 제주에서 하면 좀 달라 보이거든요. 무슨 일을 해도 서울에서 하면 하층민 같은데, 제주에서 하면 뭔가 생각이 있어 보여요.
실제로 낮에는 막일을 하고 밤에는 합창단 지휘하는 분을 본 적도 있어요. 초창기에는 친구들이 부러워하니까 더 자유로워 보이려고,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쓴 것도 있었죠. 근데 사십 대 후반부터는 그런 거품은 다 빠지고 제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서 살게 됐어요.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긴데, 그 안에서 내가 뭘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적 호기심을 꾸준히 갖고 살면서, 공부를 하고 채워 나가면 행복한 것 같아요. 제주가 그런 면에서는 좀 더 좋은 환경인 것 같아요. 자연을 바라보거나 오름을 오르다 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새로운 인사이트가 생길 때가 있거든요. 자연 속에서 그냥 있는 것 자체가 도움이 많이 돼요."
- 계속 제주에 있으실 건가요?
"제주에서 십 년을 살아봤으니까 또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가볼까 하는 구상도 한 번 해보고 있습니다."
'잘 산다는 건 과연 뭘까' 하는 생각이 인터뷰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삶에서 진짜 재미란 무엇이고, 진짜 행복이란 무엇일까. 혼자든 누구와 함께든,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가장 중요한 건 '나'를 놓지 않는 게 아닐까. 자신의 삶에 애정을 갖고 나만의 규칙을 부여하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타인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안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인지 아닌지.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성장했는지 더 퇴보했는지. 결국 잘 산다는 건, 매일 조금씩 성장해 가는 삶을 사는 게 아닐까. 그 성장의 맛을 아는 한 어디에 살든 어떻게 살든 누구와 살든, 그 삶은 결코 초라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상이 모여 일생이 되리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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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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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혼자 제주에서 10년, 이렇게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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