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서의 이미림씨책방에서 일하던 시절의 이미림씨 모습
이미림
- 제주에서 새로운 가족이 생긴 셈이네요. 십 년 동안 있으면서 제주를 떠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정말 많았죠.(웃음) 제일 힘들었던 때는 게하 사장님네가 잠깐 제주를 떠나 있을 때였어요. 그때 느낌이 꼭 부모한테 버림 받은 자식 같더라고요. 부모로부터 독립을 한 줄 알았는데, 사장님을 부모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때 진짜 독립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마음이 지옥이면 제주에 있어도 지옥이더라고요."
- 위기는 어떻게 넘겼나요?
"그때 명상적인 요가를 하는 요가원에 다니게 됐어요. 한 시간 반 동안 요가를 하는데, 한 동작을 오분씩 버텨야 했어요. 아무리 쉬운 동작도 오분을 버티는 건 정말 힘들더라고요. 저는 어떻게든 잘 하고 싶었어요. 왜 잘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무리하지 마세요. 애쓰지 마세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저는 속으로 그랬죠. '아니 왜. 잘 해야지. 무리를 해야지. 어떻게든 1등을 해야지.'(웃음)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인지, 제가 실체가 없는 것에도 무조건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내가 너무 애쓰며 살았구나, 싶었어요.
또 돌아보니까 인간 관계가 너무 좁은 거예요. 사장님네 가족 말고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마침 그때 요가원에서 만난 분들이 저랑 뭔가 주파수가 맞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평소 친해지고 싶었던 분들한테 용기를 내서 다가갔죠. 같이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그러면서 차츰 좋아졌던 것 같아요."
'참 나'를 마주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 지금 일하는 데가 명상과 차를 소개하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것도 그럼 요가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요가원에 가면 꼭 요가가 끝나고 차를 주는 거예요. 그때 차에 관심이 생겼어요. 책방 그만 두고 쉬고 있을 때, 명상이랑 차를 소개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3일만 해볼 생각으로 갔다가 아예 직원으로 들어가게 됐어요.
제가 면접 때 '저 차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데요' 하고 말했는데도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손님들한테 차를 소개할 때, 우리는 차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먼저 배운 사람으로서 안내를 하는 거라고 말하거든요. 그래서 어렵지 않게 직원으로 들어갔어요.
티하우스에 1년 정도 일했고 지금은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사실 디자인이에요. 웃기죠. 저는 포토샵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해야 하니까 배우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포토샵을 켜는 방법부터 다 회사에서 배웠어요."
- 제주라는 특성이 작용한 걸까요? 시골이고 젊은 인력은 없으니.
"그런 것 같아요. 높은 연봉 주면서 전문 인력을 쓸 수는 없으니. 있는 사람들을 가르쳐서 쓰는 것 같아요. 차를 하나도 모르는데 와서 배운 것도 그렇고, 디자인도 여기에서 배우면서 바로 실전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육지라면 디자인 할 수 있는 인력이 널려 있어서 저 같은 사람을 굳이 쓰지 않았겠죠."
- 직장만 다니는 게 아니라 N잡러라고 들었어요. 에어비앤비로 방도 임대하고, 자신만의 공간도 갖고 있다고요.
"살고 있는 데가 예전에 펜션이었던 곳인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독립된 두 공간이 나와요. 그래서 하나는 제가 쓰고 나머지 하나를 한달살기 하는 여자분께 임대해드리고 있어요.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이 공간도 혼자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뭐든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기회가 와도 하지를 못했는데, 요즘 저는 그냥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라 이 공간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명상에서는 '참 나'가 있다고 하거든요. '참 나'를 마주하고 인정해야 한다고요. 그래서 조금씩 저를 수용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나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많이 커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공간을 열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