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한국 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준결승전 당시 손흥민과 이강인 모습.
연합뉴스
【요약】 한국 축구대표팀의 핵심 자산인 이강인과 손흥민의 다툼을 둘러싼 대중의 관심은 높다. 하지만 미디어의 취재력과 시선은 제한돼 있고,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선수 명예와 직결된 주먹질이나 몸싸움 이슈가 나왔지만 정작 실상은 알 수가 없다. 보도가 제각각이고, 선정적인 제목은 사태의 진상을 더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 와중에 한 선수는 만인의 공적으로 몰렸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의견이 갈린다. 무엇보다 당시 대표팀 분란의 진상을 누구도 밝힐 수 없다. 취재 기자들도 민감한 점에 대해서는 쓰기 힘든 측면이 있다(김세훈 기자). 세대 간 갈등이 불거지고 시대가 변하고 있지만 전통적 가치인 위계 질서나 연장자 우선의 문화가 스포츠팀에서 여전히 관철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김완태 단장).
반면 팀 스포츠라는 고유의 가치는 침범할 수 없으며, 그런 차원에서 개인의 돌발 행동이 팀에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주장도 있다. 슛돌이 시절부터 이강인이 너무 '오냐오냐' 커 오면서 내적인 수양이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오태규 연구원).
다른 시각도 있다. 이번 사건이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본다. 20년간의 시차를 두고 선수들의 심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과거엔 팀을 위한 희생이 강조됐지만, 지금은 개인의 이익이 팀보다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새로운 질서의 출현이며 이것이 과거의 질서와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수단 내부의 역학 관계도 이번 사태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윤영길 교수).
물론 엠지(MZ) 세대의 가치관 변화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이고, 기업에서는 먼저 체감하고 있다. 다만 개인의 이익을 존중하더라도 팀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팀의 이익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이강인의 행동은 문제가 있다(김영진 전무).
미디어에 대해서는 토론 참여자 모두 한계를 지적했다. 클린스만 감독에게 '왜 웃느냐'는 질문은 가장 어처구니없는 일로 평가받았고, 기사를 쓸 때 익명이 아닌 3인 이상의 다른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바람도 나왔다. 이번 사태를 흥미 위주로 보도하기보다는 두 선수가 소통하고 화해할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미디어의 역할이라는 제안도 나왔다.
토론 참가자: 윤영길 한국체대 교수, 김영진 와우매니지먼트그룹 전무, 오태규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전 한겨레신문 체육부장), 김완태 전 프로농구 엘지 단장, 김세훈 경향신문 기자, 사회 김창금 한겨레 기자.
일시: 2월 18일 저녁 줌토론(*21일 이강인과 손흥민은 화해했다. 관련기사:
이강인, 런던 찾아가 손흥민에 사과 "해선 안 될 행동했다" https://omn.kr/27i2m).)
사회자: 대표팀 내 핵심인 이강인과 손흥민의 다툼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줬다. 외신을 통해 처음 보도된 사건은 '탁구 게이트'로 확산하고 있다. 먼저 거시적인 측면에서 전체를 조망하듯 되짚어봤으면 좋겠는데 축구 전문가인 윤영길 교수님이 먼저 토론의 장을 열어달라.
이전 질서와 새로운 질서의 충돌
윤영길 한체대 교수: 저는 이강인 사태를 통해 지금까지 한국에서 선수와 팀, 선수단 전체가 지녀온 분위기는 끝났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고 본다. 지난해 20년간 우리 선수들의 의식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논문을 쓴 적이 있다. 20년 전 선수들의 주요 가치가 팀을 위한 희생이었다면 지금은 개인의 이익이 핵심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팀을 위해 개인을 희생한다는 생각 대신 개인의 이익을 위해 팀을 어떻게 이용할 것이냐라고 보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두 축에서도 그런 변화를 말할 수 있다. 이강인은 유럽(사람)이라는 공간에서 성장했고 시간축에서도 이전까지의 보편적인 한국 정서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시작점이 이번 사건이다. 이강인과 손흥민의 문제가 아니라 이전 질서와 새로운 질서의 충돌이다. 앞으로 새로운 질서들이 더 빈번하게 기존 질서를 대체해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강인이 이제까지 너무 '오냐오냐' 커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오태규 연구원: 축구는 팀 스포츠다. 나는 이번 사태를 개인의 돌출로 보고 싶다. 예를 들어 미국 대학에서는 스포츠 활동을 중시하고 입학생에게 혜택을 준다. 입사 때도 팀 스포츠 활동을 했거나 특히 리더를 맡은 경험이 있으면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들었다. 팀은 결국 팀원의 단합, 노력, 희생과 협조가 필요하다.
이강인 사태는 일단 팀 스포츠 정신을 해하는 것이고, 나이를 떠나 규탄받는 게 당연하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팀 스포츠는 존재하는데 팀에서 자기 개성을 내세우는 것은 필요하지만, 팀 전체를 위해 맞춰주고 희생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이강인이 이제까지 너무 '오냐오냐' 커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슛돌이' 시절부터 '잘한다 잘한다'하는 소리만 들었지 서로 수용하고 도와주는 것은 배우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이른바 기술은 뛰어나지만 자기 정신을 제어할 교양이라든지 그런 것이 부족한 것 아닌가 싶다.
사회자: 윤 교수님이 선수들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바뀌었다는 구조적인 변화를 짚어주었지만 여전히 팀 스포츠의 본질은 희생과 협력, 배려라는 반박도 나왔다. 프로당구 PBA의 산파역 등 게임 체인저 구실을 했고, 최근 <꿈의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책을 낸 스포츠마케팅 전문가 김영진 전무는 어떻게 보는가.
축구는 팀스포츠이고 이기려면 팀워크가 중요한 만큼 과도한 개인 주장은 문제가 있다.
김영진 와우매니지먼트그룹 전무이사: 윤 교수님이 말씀한 기존 질서와 새로운 질서의 충돌이라는 관점에 상당히 공감한다. 그런데 그런 충돌이 시작된 지는 오래됐다. 이른바 엠지 세대들은 팀이나 회사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개인의 이익을 위해 팀이나 회사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쳐서도 안 된다고 본다.
축구는 팀스포츠이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팀워크가 중요한 만큼 개인의 주장을 과도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오 연구원이 말한 기술은 뛰어나지만 교양이나 인성에서 많이 부족한 점이 이번에 노출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공감이 간다.
사회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아시안컵 4강전에서 졸전을 펼치면서 팬들이 돌아섰고, 이후 이강인과 손흥민의 다툼 등 내부 분란이 공개되면서 스포츠 기자들은 정신없는 한 주를 보냈다. 현장에서 많은 기사를 생산한 김세훈 기자의 생각은 어떤가.
이강인만 비판받는 게 맞을까.
김세훈 경향신문 기자: 이강인 입장으로는 '나 잘못한 게 없는데'라고, 아마 '잘못한 건 있지만 이렇게까지 욕을 먹어야 할까'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사안은 너무 복잡하다. 이강인이 클린스만 감독에 항명하거나 부정한 것은 아니고, 이강인과 손흥민이 부딪힌 얘기인데...
다각도로 취재했지만 공개된 자리에서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강인만 비판받는 게 맞을까. 정황만 놓고 보면, 일단 탁구를 쳤고, 치지 말라고 했고, 그 갈등 속에 충돌이 생겼고, 동료들이 말린 것 같다. 과연 진상은 무엇인지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이강인의 말이 거슬릴 때가 있고, 선배들이 싫어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