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95세 아버지(왼쪽)와 92세 숙부님이 지난해 여름 오찬하는 모습
이혁진
효도는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덕목이지만, 막상 성인이 되고서는 먹기 살기 급급했지 부모님 은혜와 고마움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만 해도 당시 혼자 남은 노인은 외로움에 오래 살지 못한다고 여겨 자식들이 부양하거나 모시는 경우가 많았다.
장남으로서 나는 아버지를 모시기로 했다. 이전에도 결혼해 부모와 함께 살았지만, 분가한 지 2년 만에 다시 합가 했다.
이후 함께 보낸 세월이 30여 년이 흘렀다. 아버지가 혼자라는 생각을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아버지의 장수비결이라는 지적에 일부 공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부자(父子
)가 함께 사는 법
한편 아버지 덕분에 우리 가족은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었다. 집안의 큰 어른이 엄존하고, 그게 상징하는 의미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아버지와 함께 한 세월은 우리 가족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어쩌다 아버지가 칭찬을 하실 때, 나는 여전히 아버지 앞에서 어린애가 되고 주책없이 어리광을 부린다. 때론 아버지가 기뻐하도록 미담과 추억을 부러 만들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자상한 사랑을 받고 자란 손자들은 어떤가.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더 자주 찾는다. 아이들이 여기서 쌓은 유대감은 아이들이 커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감사하는 것이 또 있다. 흔히 놓치기 쉬운 아버지의 소소한 일상이다. 근 100세에도 혼자 식사를 챙겨드시는 모습은 자식들의 시름을 덜게 한다. 당신께서 평소 아껴 둔 용돈을 내어 우리에게 줄 때는 괜스레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다.
아버지는 매사 자식 걱정이다. '운전한다고' '멀리 간다고' '늦게 다닌다고' '아픈데 무리하지 말라고'... 그 애틋한 걱정은 실은 아버지의 또 다른 사랑표현이다.
사실 이런 걱정도 아버지가 그나마 건강하시다는 방증이다. 살아계신 부모님 잔소리라도 들으면 더없이 좋겠다고 푸념하는 내 또래들이 많다.
이렇게 아버지와 함께 한 삶이 어언 70년이다. 우리 부자는 함께 늙어가고 있다. 아버지는 백세를 바라보고 있고 나는 올해 70세 고희를 맞았다.
나이 들수록 더불어 함께 잘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법, 최근 아버지와 나는 동병상련하기에 세상 누구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버지와 소통은 주로 매일 새벽에 시작된다. 귀는 어두워도 아버지는 내 목소리에 익숙하기에, 반응이 빠르시다. 아버지와 나누는 즐겁고 재미난 대화가 언제 갑자기 멈출까 싶어 염려스러울 정도다.
"살아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인생지론이다. 아버지와 나는 지금 이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를 보면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누구든 가족을 통하지 않고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친구는 우리 부자의 삶이 일종의 '예술'이라 부추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