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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가 "우와" 그리고 뭉클... 이 맛에 올립니다

사서지만 누가 시킨 적 없는 일... 지난 1년 동안 <오늘도, 책> 100권을 공개한 소회

등록 2024.06.10 10:34수정 2024.06.1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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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서로서 블로그에 독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지 10년째다. 현재 700여 권의 책 리뷰가 블로그에 포스팅 되어 있다. 대부분은 비공개 혹은 이웃 공개로 기록했다. 어느 날 갑자기 운동을 하다가, '블로그에 가둬 둔 글들을 밖으로 한번 내보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먹은 다음 날부터 바로 실행에 옮겼다.


비공개에서 공개로

정돈되지 않은 거친 글들을 꺼내 다듬고 매만져 업무 공유 게시판과 내가 일하는 도서관 홈페이지에 하루에 한 권씩 책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곡 차곡 쌓여 드디어 100이라는 숫자에 도달했다. 딱 1년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써보자고 결심하고 호기롭게 <오늘도, 책>이라는 게시판을 만들면서 만난 숫자이다.

휴가나 출장을 제외하고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자마자 처음으로 하는 일이 책 소개 글을 올리는 일이다. 이제는 하루를 산뜻하게 시작하기 위한 나만의 루틴이 되었다.

게시글에는 책을 소개하는 내용과 더불어 책 속에서 건진 인상적인 문장, 문장에서 얻은 개인적인(그러나 지극히 보편적인) 깨달음과 단상을 기록한다. 오랜 시간 고르고 고른 문장에 나의 생각을 살짝 얹은 소박한 글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잠시라도 머물기를 바라며, 등록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살피고 또 살핀다.

비문이나 오타를 걸러내는 것은 기본이고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폰트와 강조 문장의 색깔에도 신경을 쓴다. 글이 게시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떨림과 기대감이 혼재한다. 솔직히, 매일 규칙적으로 쓰는 일의 부담감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시작하는 건 쉽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일에는 책임감이 뒤따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서 시작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좋은 책을 추천하고 그 책이 누군가의 마음 밭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있다. 사서로서의 책임감을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행복해지는 일이기 때문에 계속한다. 우리 삶에는 행복한 날도 있고 불행한 날도 있겠지만, 작고 소소한 행복은 매일 필요하니까 말이다.
 
a 책탑 읽고 싶은 책 탑 쌓기

책탑 읽고 싶은 책 탑 쌓기 ⓒ 김은미

 
게시판에 업무 관련 정보 글이 많이 올라오는 날에는 <오늘도, 책> 게시글이 글이 금방 저 아래로 쓸려 내려가 묻혀버리기도 한다(무지 슬프다 ㅠ.ㅠ). 운 좋게 다른 게시글이 많이 올라오지 않아 상위에 노출되는 시간이 긴 날에는 조회수가 최고점을 찍는다(우와~ㅎㅎ). 또한 누군가가 달아준 정성스러운 댓글에 울컥해 하루 종일 가슴이 쿵쾅 쿵쾅거리기도 한다(뭉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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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관련 정보글들 사이에 생뚱맞은 책 소개 글이 등장하는 것에 모두가 호의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업무의 흐름과 맥락을 방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에 다양한 시선을 감내하기 위한 단단한 마음이 필요했다. 감사하게도 아직까지는 뾰족한 말보다 따뜻한 말을 건네주시는 분들이 많다.

꾸준히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시는 고정 구독자들도 생겼고, 댓글을 달 용기는 없지만 매일 아침 좋은 글을 올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수줍게 쪽지를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다. 친분이 있는 누군가는 전화로 '오늘 올린 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어. 글 너무 좋더라"라고 다정한 마음을 표현해 주기도 한다.

스스로 다짐한 '1년 동안 매일 한 권씩 책 소개하기' 성공을 응원한다며 커피 쿠폰을 깜짝 선물로 보내주시는 분도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잊지 못할 감동의 메시지들과 만나면서 내 심장은 요즘 자주 요동친다. 그들의 응원과 격려가 나로 하여금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 매일 아침 출근하기가 너무 싫은데 <오늘도, 책> 읽으려고 출근해요^^
- <오늘도, 책>을 통해 매일 아침 선물 같은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출근해서 올라온 글 읽는 게 루틴이 되어 버렸어요. 조금 부끄러워서 몰래몰래 읽 고 있습니다. 숨은 구독자로서 앞으로도 잘 보겠습니다.
-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저였는데, 지난 주말에 책을 두 권이나 읽었어요. 요즘은 가방에 항상 책 한 권을 넣어 가지고 다니고 있어요.
- 게시판에 올려주시는 책들 틈틈이 찾아서 읽고 있는데, 최근에 제가 읽은 책이 올라 오니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워서 오버하며 쪽지 보내요. 좋은 책 소개 늘 고맙습니다.
- 게시판에 올려주시는 책 소개 늘 잘 보고 있어요. 항상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눈으 로만 보다가 드디어 오늘은 추천한 책 주문해 보았어요. 그냥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쪽지 남겨 보아요^^
- 글이 너무 잘 읽히고 좋은 내용이 많아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어요.


<오늘도, 책>에 소개된 책은 게시되는 날 대부분 대출 상태로 바뀌고, 책두레 신청이 이어지고, 도서관 책을 빌리는데 실패한 누군가는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한다. '한 권의 책이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겠지만, 작은 변화의 시작은 될 수 있다'라고 믿는 나의 신념이 조금씩 증명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기쁘고 뿌듯하다.

무엇보다도 책 소개 글을 쓰는 나 자신에게도 엄청난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글을 쓰는 동안 내 마음이 치유되고 단단해지고 있음을 경험한다. 내가 적어 내려가는 모든 글은 타인에게 하는 말이 아닌 나 자신에게 건네는 조언이자 위로의 말들이다. 자기반성이면서 다짐의 언어들이다. 매일 아침 내 안에서 빠져나온 글자들로 고요하게 마음의 결을 정돈할 수 있어 참 좋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다짐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다짐들이 와르르 무너질 때도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태어났으니 말이다. 그러나 반성하고 깨닫고 또다시 의지를 다지는 순간들을 수없이 지나가면서 결국엔 최선의 것들만 남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맥락에서 나의 글쓰기는 어설픈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오늘도,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내일도, 책

'1일 1책'이라는 디폴트 값을 채우기 위해서는 단 하루도 읽고 쓰기를 멈출 수가 없다. 수년간 블로그에 쌓아 놓은 기록을 활용하고는 있지만 다양한 책을 소개하기 위해,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읽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 독서를 위한 나만의 절대 시간은 아침 7시~8시, 저녁 9시~11시이고 그 시간에는 무조건 책을 펼치려고 노력한다(오해 금지! 근무 시간에는 책 안 읽습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매일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 거예요?"라고. 그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매일 쉬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읽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다른 사람보다 많이 읽는다고 나의 독서력을 자랑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운동선수가 매일 운동을 하듯, 사서가 매일 책을 읽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감히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은 어쭙잖은 조언으로 잘난 체 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저 저자들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깨달은 삶의 진리들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은 거다. 읽고 쓰고 사유하는 삶의 태도가 우리들의 남아있는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책과 사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나의 독서창고가 바닥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멈추게 되겠지만, 텅 비기 전에 조금씩이라도 계속 채워 나가야 하기에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가 없다.

100권의 소회를 남기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올해 용기 내 시작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은 <오늘도, 책> 게시판을 채워나간 일이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 삶도, 일도, 사랑도, 그 무엇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 일단 해보는 것이 후회를 줄이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일은 또 어떤 책을 소개할까?' 생각만 해도 너무 설렌다. 100에 도달했으니 이제는 200을 향해 나아간다. 100의 환희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다시 서가 사이로 들어간다.
#책탑 #책읽는사서 #오늘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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