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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담론 종합판" 춘파 전형이 반민족 문학잡지에 쓴 글들

중일전쟁, 2차세계대전 시기 <국민문학>·<조광>에 게재... "일본 정신을 중심으로"

등록 2024.08.16 12:39수정 2024.08.1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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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민문학>. 1941년 최재서가 조선 문단을 강압적으로 통합하고 어용화하려는 당국에 호응하여 창간한 문학잡지다.

<국민문학>. 1941년 최재서가 조선 문단을 강압적으로 통합하고 어용화하려는 당국에 호응하여 창간한 문학잡지다. ⓒ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전 기사 "일제 찬양 글 무더기 발견, 그래도 전집 낸다는 대전문학관"에서 이어집니다)

춘판 전형(全馨, 1907-1980)이 노골적인 친일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이 격화되던 1942년부터다. 글을 게재한 곳은 <국민문학>과 <조광>이다.

<국민문학> 은 1941년 최재서가 조선 문단을 강압적으로 통합하고 어용화하려는 당국에 호응하여 창간한 문학잡지다.

<조광>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10월에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창간한 월간 잡지다. 초기에는 순수 문예 창작물 중심이었지만 1940년대를 전후하여 일제의 침략전을 지지, 찬양하는 작품·논문 등을 실어 친일 잡지로 변모했다.

"신념에 찬 논지로 주장"

전형은 1942년과 1943년 해당 잡지에 모두 일본어로 평론을 실었는데 현재 드러난 것만 5편에 이른다. 모두 도쿠다 카오루(德田 馨)라는 이름으로 창씨를 개명해 썼다.

가장 먼저 1942년 4월에 <국민문학>에 쓴 '전쟁의 모랄'(戰爭のモラル, 9쪽)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언어 속에 체념, 자기희생, 용기, 믿음의 복종, 전우애 등 일반적인 전쟁문학의 전제조건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비인간적이어야 할 전쟁 가운데 오히려 진정한 휴머니티를 발견하게 하는 문학의 본질이 파악된다"고 썼다. 전쟁을 미화하는 것을 넘어 삶의 아름다움으로 왜곡시킨 것.


a  왼쪽부터 전형 작자가 도쿠다 카오루( 德田 馨)라는 이름으로 1942년 4월에 <국민문학>에 쓴 '전쟁의 모랄'(戰爭のモラル), 1943년 8월 <국민문학에> 쓴 '문학의 시련(文學の試煉), 1942년 8월 <조광>에 쓴 '아시아의 문화통일과 그 성격'(アジア文化の統一とその性格).

왼쪽부터 전형 작자가 도쿠다 카오루( 德田 馨)라는 이름으로 1942년 4월에 <국민문학>에 쓴 '전쟁의 모랄'(戰爭のモラル), 1943년 8월 <국민문학에> 쓴 '문학의 시련(文學の試煉), 1942년 8월 <조광>에 쓴 '아시아의 문화통일과 그 성격'(アジア文化の統一とその性格). ⓒ 박수연


같은 해 <국민문학> 1942.5~6월 합병호에 발표한 '역사소설에 대하여'(歷史小說について, 4쪽)라는 글에는 결론으로 "문학은 그대로 정치가 될 수는 없지만, 문학이 묘사하는 현실은 역사적 소재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정세와 환경과 인간과의 관련 속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썼다.

박수연 문학평론가(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이 글이 "문학과 정치를 구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작가가 자기 한계를 인식한 후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현실의 역사에 투신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글"이라며 "이 현실 역사가 곧 대동아공영권의 전쟁을 말하는 것이므로 조선 청년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해 8월 <조광>에 쓴 '아시아의 문화통일과 그 성격'(アジア文化の統一とその性格, 10쪽) 글은 일본 중심의 동아신질서를 주장하는 일제의 주장에 호응해 아시아적인 것의 독자적 성격을 탐구하는 글이다. 전형은 이 글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지나(支那, 중국)나 인도와 같은 전형적인 아시아의 정체성(停滯性)을 보이지는 않았던 일본의 역사적 진보성에 주목하고, 일본 정신을 중심으로 아시아적 성격을 살리는 것이다"라고 썼다. 아시아 여러 나라 중에 가장 진보적인 역사적 과정을 밟은 일본 정신으로 문화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1943년 4월에 <국민문학>에 쓴 '만주 문학의 소망'(滿洲文學のこそなど, 4쪽)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만주국을 비롯해 동양사가 다시 씌어져야 할 때에 이르렀다. 세계사, 각국사, 각국 문학사 등도 뜯어고쳐야 한다. (중략) 이제 일본은 일본의 의지, 일본의 세계관, 일본의 개성에 따라 세계사를 다시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썼다. 전형에게 조선은 일본에 귀속된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일본 중심의 역사의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a  전형 작자가 도쿠다 카오루( 德田 馨)라는 이름으로 1943년 4월에 <국민문학>에 쓴 '만주 문학의 소망'(滿洲文學のこそなど)이라는 제목의 글(오른 쪽)과 같은 해 <국민문학> 1942.5~6월 합병호에 발표한 '역사소설에 대하여'(歷史小說について) 글

전형 작자가 도쿠다 카오루( 德田 馨)라는 이름으로 1943년 4월에 <국민문학>에 쓴 '만주 문학의 소망'(滿洲文學のこそなど)이라는 제목의 글(오른 쪽)과 같은 해 <국민문학> 1942.5~6월 합병호에 발표한 '역사소설에 대하여'(歷史小說について) 글 ⓒ 박수연


같은 해 8월 <국민문학>에 쓴 '문학의 시련(文學の試煉, 3쪽)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한 민족의 민족적 재난이 그 민족의 밑바닥에 잠들어 있는 문화의 혼을 일깨워 각성시킨다. 우리의 문학은 불타는 혼돈 한가운데에서 새로운 육체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을 민족의 혼을 각성시키는 전화위복으로 삼아 문학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민족과 우리 문학은 '일본 민족'과 '일본 문학'을 일컫는다. 글을 쓴 전형이 일본의 전쟁을 조선의 전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박수연 문학평론가는 "전쟁 찬양, 만주국 건국이념, 일본통치의 필요성, 동아신질서론 등 당시 친일 담론이 대부분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쿠다 카오루라는 이름으로 창씨 개명까지 하면서 쓴 친일 평론은 하나같이 일본이데올로기를 충실히 이해한 후 매우 논리적이고 신념에 찬 논지로 주장하고 있다"며 "일제 말 시국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쓴 글이 아니라 매우 자발적으로 작성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춘파전형 #친일작가 #국민문학 #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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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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