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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도 안 걸리는 운전면허 갱신, 이대로 괜찮나요

[주장] '떨어지기 더 어렵다'는 면허, 너무 쉬운 적성 검사... 내실 강화했으면

등록 2024.09.02 14:04수정 2024.09.0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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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운전면허를 갱신하러 가는 길에 황당한 장면을 목격했다. 경찰서의 교통 민원실 주차장에서 두 승용차끼리 접촉 사고가 났다. 주차선에 맞춰 후진하던 차량이 옆에 주차된 차량의 앞바퀴 덮개 옆면을 긁고 지나간 것이다. 다행히 사람이 다치거나 하진 않았다.


웬만한 승합차도 세울 수 있을 만큼 주차 공간이 넓어 접촉 사고가 날 만한 곳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운전 미숙에 의한 사고였다. 여느 경우처럼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언성을 높일 사안이 아니었던 까닭인지, 이들은 보험사도 부르지 않은 채 서로 명함을 건네고 헤어지는 듯했다.

두 차량 운전자 모두 운전면허를 갱신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은 터였다. 적어도 초보 운전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차량 후면에 초보 운전 스티커도 붙어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처구니없는 접촉 사고를 낸 게 쉬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도 경찰서 앞마당에서 말이다.

사람 다칠 수 있는 게 운전인데... 면허 취득 이렇게 쉬워서야

a  면허를 따는 게 너무 쉬운 상황, 괜찮은걸까

면허를 따는 게 너무 쉬운 상황, 괜찮은걸까 ⓒ laugariglio on Unsplash


따지고 보면, 운전 경력을 떠나 도로를 질주하는 운전자 중에 서툴거나 거친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만난다. 기능도 기능이지만, 다른 운전자들에게 대한 배려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운전자도 많다. 초보 운전 스티커를 붙인 채 난폭 운전을 일삼는 당혹스러운 경우마저 있다.

고속도로에서 저속으로 줄곧 1차선으로 주행하는 운전자가 있는가 하면, 차선을 가로지르며 아슬아슬 곡예 운전하는 괴팍한 이들도 있다. 도로의 전광판마다 주행 차선 위반 범칙금을 부과하고, 난폭 운전을 상시 단속한다고 을러대지만, 괘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단속에 걸리면, 그저 운이 나빴다고 여길 따름이다.


끼어들기와 꼬리물기도 딱히 새삼스럽지 않다. 안전을 위해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려고 했다간 옆 차선의 차량이 그 틈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바쁜 출퇴근길 교차로에선 꼬리를 물었다고 손가락질했다간 되레 같은 운전자들끼리 너무 야박한 것 아니냐며 욕먹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선 남들 하는 대로 운전하는 게 '국룰'이 됐다. 적당히 과속하고, 눈치껏 끼어들고,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부릴 줄 아는 이가 능숙한 운전자다. 하여 운전자들 사이에 회자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FM(규정)대로 운전자일수록 단속에 더 잘 걸린다'는 것.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섣부를 수 있지만, 운전면허 취득이 누워서 떡 먹기일 뿐 아니라, 정작 운전 중에 필요한 기능과 매너를 면허 시험이 판별해 내지 못하는 탓으로 보인다. 좋아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에 운전면허 취득이 가장 손쉬운 나라 중 하나다.

현행 규정상 학과 교육 5시간과 기능시험 2시간, 도로 주행 6시간만 이수하면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시험 일정과 대기 시간 등으로 고려하면 보통 열흘 남짓 소요된다고 하지만, 이렇듯 속성으로 국가 면허를 주는 나라는 드물 것이다. 고작 13시간에 평생 운전이 보장되는 셈이다.

예비 면허 제도를 운영해, 정식 면허 취득까지 최소 2년 넘게 걸리는 독일이나 호주와 비교하려 하면 민망해진다. 우리나라처럼 속성 면허 시스템을 갖춘 일본과 중국조차 60시간의 의무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면허 취득이 쉬운 만큼 교통 문화가 후진적인 건 당연한 귀결이겠다.

학과 필기시험이야 그렇다 쳐도, 기능시험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어깨선에 오면 핸들을 왼쪽으로 두 바퀴…' 이런 식의 기능 훈련은, 시험에서 통과할 수는 있어도 다른 운전자들이 곳곳에 있는 실제 도로 운전에선 별로 쓸모가 없다.

5일 만에, 운전대 한 번 안 잡아봤던 사람이 면허를 따다니

최근 면허를 딴 가족 이야길 들어보니, 34년 전 내가 면허를 딸 때와 지금의 시험 방식이 거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핸들 한 번 잡아보지 않았던 지인은 학원에 등록한 지 불과 닷새 만에 학과, 기능, 도로 주행을 모두 통과하기도 했다.

면허증을 받은 이들은 이구동성 이렇게 말한다. '운전면허 시험은 통과하기보다 떨어지기가 더 어렵다'라고, 면허증 보유와 운전 가능 여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고백한다. 면허 취득엔 시간이나 재능이 다 필요 없고, 학원비와 응시료, 곧 돈만 있으면 된다는 거다.

누구는 심지어 '장롱 면허'를 국가가 앞장서서 남발하는 이유를 당최 모르겠다고 반문하기도 한다. 면허증을 주민등록증 대용으로만 사용하는 이들이 태반인 현실이 우스꽝스럽다는 거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자동차 판매량을 늘리고, 보험사 영업을 돕기 위한 '큰 그림'일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돈다.

a  너무 쉬운 면허 취득에 대한 걱정

너무 쉬운 면허 취득에 대한 걱정 ⓒ xokvictor on Unsplash


해법이야 쉽다. 의무 교육 시간을 늘리는 한편, 기능시험 방식을 실제 상황에 맞도록 전환하며, 필기보다 도로 주행 능력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면허시험에 천편일률적인 '공식'이 적용된다는 건, 수능에 커닝페이퍼를 들고 가도 된다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지 않나.

또, 의사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인턴과 레지던트 전공의 시절을 거쳐야하듯, 운전자도 실제 운전 경력을 쌓아가며 자격을 갱신하게 하면 좋겠다.

그러자면 10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적성검사 방식의 대대적 변화가 절실하다. 하다못해 어학 시험도 2년 만에 갱신하도록 하는데, 하물며 운전자와 보행자의 생명이 걸린 운전면허임에랴.

적성 검사 담당자는 흡사 '도장찍는 기계'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경찰서에 갱신 서류를 접수하기 전 적성검사를 받으러 간 보건소에서 새삼 깨달았다. 해법에 모두 공감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서류에 도장을 찍느라 바빴을 뿐, 정작 적성검사에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최근 촬영한 여권 사진과 함께 병력과 사고에 대한 문진표를 스스로 작성한 뒤, 색맹과 시력을 검사하고 청력을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이것이 앞으로 10년 동안 더 운전해도 된다는 국가의 보증인 셈이다. 다른 운전 능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단지 수수료만 내면 됐다.

검사하는 담당 의사의 심드렁한 표정에서도 적성검사가 얼마나 형식적인가를 알 수 있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는 교통 안전을 책임지는 의사라기보다는 흡사 '도장찍는 기계'와도 같았다. 날인 할 곳만도 10여 군데인데, 서류의 빈칸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찍어대는 능숙한 손놀림에 감탄했다.

서류를 건네며 내게 던진 '안녕히 가시라'는 그의 인사말에선 늘 해오던 대로 할 뿐이라는 관성이 느껴졌다. 그도 운전면허를 남발하는 현재의 시험 방식, 거의 요식행위에 불과한 적성검사의 문제점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관행은 힘이 세다'는 말은 더 이상 변명도 될 수 없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이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면허 시험을 내실화하고 적성검사를 강화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더니, 당장 시험을 준비 중인 반 아이들부터 '놀부 심보'라며 눈을 흘겼다. 자기는 이미 면허를 쉽게 땄으면서, 몽니 부리듯 남의 면허 취득을 방해하면 되겠느냐는 거다.

이런 여론이 존재하는 한, 수십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관행에 맞서려는 건 무모한 짓일지도 모른다.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수천 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교통안전 후진국이라는 오명도 뿌리 깊은 관행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여하튼 65세까지 운전을 더 해도 된다는 국가의 승낙은 얻었지만, 그다지 뿌듯하거나 달갑지 않은 이유였다.
#운전면허시험 #운전면허갱신 #후진적교통문화 #형식적기능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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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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