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봉지견본, 5천원짜리와 만원짜리가 있다. 차에서 직접 구운 국산땅콩을 판다.
이혁진
그런데 그는 장사를 하면서 자리를 비울 때도 많다고 한다. 급히 화장실을 갈 때도 있지만 시장 주변을 돌면서 지루함을 해소하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차량에는 '식사 중'이라는 팻말이 늘 놓여있다. 팻말의 숨은 뜻은? 일단 차 주변에 있긴 하지만, 다른 일로 자리를 잠시 비웠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조그만 차에서 종일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차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는데 손님이 되레 그를 깨우기도 한단다. 그럴 땐 무안해서 '한 줌 더' 서비스를 준다고.
'서비스 많이 드린다'며 웃는 저 얼굴
지난 화요일 들르며, 왜 자리 비웠었냐고 푸념했더니 그는 웃으면서 봉지에 한 줌땅콩을 더 담는다. '오늘은 노마진(이득을 안 남기겠다는 뜻)' 하는 날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항상 비슷한 멘트를 하는 그지만 웃음 띤 저 얼굴이 싫지 않다.
그가 전하는 영업 노하우 중 하나는 모든 손님한테 땅콩 한 줌 더 얹어주는 것이다. 시식용 땅콩보다 조금 더 담아주는 것이 고객들 유치와 관리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단골들은 시식용 땅콩에 손대는 법이 별로 없단다. 나도 그렇다. 이미 그 땅콩의 맛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내 역시 내가 사는 '국산 땅콩'만 좋아한다. 그래도 아내는 현미경을 들이댄다. 뭔가 했더니 얼마 전 땅콩에서 약간 군내가 난다는 것이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봤다. 그런가, 멈칫하면서도 나는 땅콩장수의 진심을 의심하진 않는다. 설령 산패한 땅콩이 혹시 섞여 있을지 몰라도 그동안엔 탈 없이 먹었기 때문이다.
내게 땅콩은 단순한 주전부리 이상이다. 땅콩은 노년의 치아를 챙기는데도 안성맞춤이다. 적당히 무른 땅콩은 치아 건강에도 좋은 것 같다.
땅콩장수가 말하는 땅콩 맛있게 먹는 팁 하나. 요즘처럼 습한 날씨에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으면 오래 먹을 수 있단다. 땅콩 특유의 그 고소한 맛도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맛도 맛이지만, 땅콩을 생각하면 그의 즐거운 표정과 넉넉한 인심이 떠오른다. 독자들 중에 땅콩장수 예찬이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겠다. 실은 나도 얼마 전까지 저런 친절은 그저 장삿속일 거라 치부했었다.
하지만 암 투병 때문일까, 이제는 그냥 스쳐 지나는 듯한 인연도 다르게 보이고 소중하다는 걸 알겠다. 생각해 보면 작은 일에도 행복해 하는 땅콩장수를 보면서, 그로부터 나 또한 다시금 삶의 여유와 영감을 얻고 있는지 모른다.
요즘 들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참에 땅콩장수처럼 나를 기다려준 사람들,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러 찾아 나설 계획이다. 행복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라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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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시장 땅콩장수가 늘 '한 줌 더' 얹어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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