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과 국악이론을 전공한 진회숙 선생의 신간 <너에게 보내는 클래식>은 아주 특이한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책에 나오는 해당 음악을 유튜브를 통해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음악 제목 위에 있는 큐알 코드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바로 감미로운 음악이 나온다. 즉 글과 음악이 함께 있는 책이다(책 각 장의 말미에 해당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튜브 주소가 큐알코드로 제공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휴대폰으로 해당 영상을 찾아볼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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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표지 ⓒ 진회숙
이 책에는 희노애락이 다 있다. 나는 지난 며칠간 이 책을 읽고, 보고, 들으면서 많이 웃고, 울고, 생각했다. 내가 주로 읽고 쓰는 책들이 고문, 학살, 부패, 국가폭력 등의 어두운 주제라 오랜만에 정서가 풍부하며, 재미있고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을 담은 저자의 책이 내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정말 감동 깊고 재미있게 읽고, 들으며 이 책을 보았다. 그동안 자주 들었던 음악도 그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니 더욱더 감동스럽다. 이 책은 '음악으로 본 서양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저자는 때로는 10대처럼, 때로는 발랄한 20-30대처럼, 때로는 달관한 도인처럼 인간의 심리를 음악을 통해서 분석한다. 한마디로 너무도 재미있고 즐거우면서 삶의 의미를 음미하게 만드는 책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 도저히 중단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재미있고 훌륭한 책을 써준 저자에게 감사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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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회숙 ⓒ 진회숙
다음은 지난 한 달간 저자와 몇차례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집안 환경 자체가 음악적이었다. 부모님이 음악을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노래를 잘 불러 KBS '누가 누가 잘하나' 연말 결승에서 2등상을 받았으며, 고등학교 때는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음악 활동을 많이 했다. 따라서 대학에서의 전공을 정할 때 음악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게 음악은 너무나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 이화여대 음대에서 서양음악을, 서울대 대학원에서는 국악이론을 공부했는데, 이렇게 음악의 동서를 넘나든 이유는?
"사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국악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고,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가 3학년 때 우연히 운동권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때 인문 사회과학 공부를 많이 하면서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 것'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국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그 동안 서양음악만 들어서 그런지 귀에 잘 와 닿지 않았다. 한국 사람인데 제 나라 음악을 모른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고, 내가 잘 모르는 우리 음악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들어가 국악이론을 공부했다. 하지만 아직도 국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대학원에서 겨우 2년 공부했는데 뭘 알겠는가. 서양음악에 대해서는 '쬐끔' 알지만, 국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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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회숙 ⓒ 진회숙
- 이 책을 기성세대 보다는 특별히 젊은 세대를 위해 쓴 이유는?
"'젊은 세대를 위한 책'은 출판사의 컨셉이었다. 처음에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클래식 이야기로 하려고 하다가 대상을 넓힌 것이다. 그래도 책을 읽다보면 내용이 젊은 여성층을 겨냥한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이런 설정이 조금은 불편하다. 책의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세상에서 가장 꼴불견인 것이 나이 든 사람이 젊은이에게 철 지난 옛날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무언가 '가르치려 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이건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클래식'이라는 책의 컨셉에 맞추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가르치는 것을 싫어한다. 각자 생긴 대로 사는 거지 뭐 잘 났다고 남을 가르치냐."
-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사랑, 그가 없는 고통과 기쁨의 원천>에서는 리스트의 <사랑의 꿈>,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 사랑을 주제로 한 곡을, 제2장 <위로와 안식이 필요한 날>에서는 슈베르트의 <보리수>, 바흐의 <사라방드> 등 마음에 안식을 주는 음악을, 제3장 <자유로움이 나에게 주는 것>에서는 자유롭게 살다 간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와 프리드리히 굴다,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삶과 음악을 소개했다. 제4장 <살다 보면 때론 웃음이 필요해>에서는 슈베르트 <송어>와 무소륵스키의 <벼룩의 노래> 등 클래식 음악에 얽힌 인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고, 제5장 <내 삶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서는 본 윌리암스의 <날아오르는 종달새>, 슈베르트의 <바위 위의 목동>을 비롯한 여러 음악을 필자가 살아온 이야기와 곁들여 소개하고, 제6장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다>에서는 아일랜드 민요 <오! 대니 보이>와 마스카니의 <간주곡> 등 과거를 회상하는 음악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구성했다."
- 서양 음악과 국악 중 각각 가장 좋아하는 음악 하나를 꼽는다면? 또 그 이유는?
"서양음악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0번> 제1악장이다. 특히 도입부의 꿈틀거리는 동기가 점점 부풀어 오르며 상승하다가 폭발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협주곡이 아니라 교향곡 같은 느낌이다. 베토벤은 이 곡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1악장의 카덴차를 직접 쓰기도 했다. 고전주의 협주곡이지만 낭만주의의 열정과 에너지를 담고 있는 곡이다. 그래서 들을 때마다 나는 천재는 시대마저도 초극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국악 중 남도 민요 <육자백이>를 좋아한다. 민요 중에서 <육자백이> 만큼 처절함의 극한에까지 가 있는 것도 드물 것이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소리라기보다 오히려 통곡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육자백이>의 사설은 대개 그 끝이 '도는구나' '염려로구나'처럼 '...구나'로 되었거나 아니면 '놀아 볼거나' '무심할거나'처럼 '...거나'로 되어 있다. 여기서 '구나'와 '거나'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뜻도 없는 말이다. 그런데 <육자백이>에서는 사설 끝부분에 해당되는 "구나. 헤 ----"로 노래를 시작한다. 이 앞에는 어떤 말도 들어올 수 있다. 사랑,눈물,이별, 한숨... 이렇게 가사의 앞부분을 개방해 한을 가진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노래로 끌어들여 개별 경험을 공통의 경험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점이 좋다."
- 왜, 어떻게 클래식이 세대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공감을 줄 수 있는 음악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인지?
"그냥 내가 잘 아는 음악이 클래식인데, 그 클래식을 세대를 초월해 여러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런 믿음이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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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중에서, 출판사 책 소개 중 ⓒ 진회숙
- 책에서 "세상의 모든 사랑은 꿈이다. 모든 화려한 사랑은 한 순간의 꿈에 불과하다."라고 했는데 그 의미를 좀 더 풀어 밝히면?
"굳이 책에 나온 리스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세상 모든 일이 영원하지 않듯이 사랑도 그렇다. 한때 죽고 못 살 것 같이 사랑하던 사람들이 원수가 되는 것도 수없이 보았다."
- 인생에 가장 큰 감동을 준 음악은? 그리고 그 이유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이다. 개인적으로 견디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세상 모든 것들이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듯 했다. 클래식 전문가라는 허울 좋은 이름 뒤에 숨겨진 비루한 일상들이 큰 입을 벌리고 내가 평소에 품어왔던 자부심과 자존심을 여지없이 집어 삼키곤 했다. 사는 것이 서러웠고, 살고 싶지 않았다.
바로 그때 <운명>이 숙명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날 강의의 주제는 베토벤의 교향곡이었고,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 <운명>을 틀었다. 평소에 수없이 많이 들어온 <운명>, 하지만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암흑에서 광명으로'를 외치는 베토벤의 목소리를 들었다.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며 음악이 폭발하는 순간, 내 가슴도 폭발하는 것 같았다. 가슴 속 깊은 곳 통곡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 강렬한 전율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극렬한 고통 끝에 오는 카타르시스같은 것이었다.
베토벤의 <운명>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야할 이유는 충분히 있는 것이 아닐까? 음악을 생업으로 삼으며, 희망을 잃은 어느 누군가에게 <운명>으로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때 속으로 펑펑 울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 책에서 "인간의 삶이 간주곡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긴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인간의 삶이 너무 짧으니까."
- 클래식 음악이 저자의 삶에 주는 의미는?
"젊었을 때는 클래식 음악이 정서적으로 내 삶에 기쁨과 위안을 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클래식 음악은 '먹고 살기 위한 밥벌이'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이것은 정말로 솔직한 대답이다. 그 동안 클래식 관련 책을 여러 권 내고, 방송 프로그램 구성과 진행, 클래식 강의 등 여러 일을 했다. 지금 그런 일을 한 동기를 돌아보니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 그것보다 고상한 동기로 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지금 클래식은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생업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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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중에서, 출판사 책 소개 중 ⓒ 진회숙
너에게 보내는 클래식 - 삶에 지친 당신을 위한
진회숙 (지은이),
포르체,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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