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충남 홍성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문화제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 최선미(고 박가영 어머니, 사진 오른쪽)씨와 세월호 유가족 최지영(세월호 단원고 권순범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 있다.
이재환
이태원 참사 2주기다. 그날의 참사로 하늘의 별이 된 고 박가영씨 어머니 최선미씨는 충남 홍성에 살고 있다. '가영이 엄마' 최선미씨는 28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2022년 10월 29일 이후로 시간이 멈춘 것 같다"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2021년 10월 3일 가영이가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며 찍은 영상이다. 가영이가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찍은 것. 영상을 찍은 바로 그다음 해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해당 영상을 끝으로 최선미씨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더 이상 수정되지 않고 있다.
지난 25일 홍성에서는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최선미씨는 이날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참사를 겪기 전에는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한강의 소설이 새롭게 읽혔다고 했다.
지난 28일 최씨와 전화를 연결해 그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이태원 참사 이전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을 때 "힘내세요"라는 말을 건네면서도 내심 '그게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서 보니' 그 말이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2주기. 유가족들에게는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함께할게요. 힘내세요"라는 따뜻한 한마디가 더 절실해 보였다. 아래는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다시 읽어보니 "내 이야기"
-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점점 더 숨게 되는 것 같다. 지난 5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특조위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마음은 급한데 모든 것이 더디게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점점 더 움츠리는 것 같다. 게다가 이태원 참사 관련자들이 잇따라 무죄를 받았다. 좌절의 연속이다."
-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니, 2021년 영상을 끝으로 수정이 안 되고 있다. 가영이가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영상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가영이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참사 이후에 시간이 멈췄다. 시간은 분명히 흐르고 있는데 무의미한 느낌이다. 어제(27일)는 큰 아이(가영이) 생각에 둘째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잘 지켜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둘째는 지금 고3이다.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나의 시간이 멈춰 있다 보니 둘째를 많이 챙기지 못한 것 같다. 엄마가 잘 챙겨주지 못해서 그런지 둘째는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하고 있다. 둘째에게 고맙고,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 최근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었다고 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피해 당사자를 바라보는 제3자의 관점'이 아니라, 작가가 피해 당사자의 입장이 돼 글을 쓴 느낌이 강했다. 6~7년 전쯤인가. 누군가 <소년이 온다>를 읽어보라고 권해서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 소설을 읽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읽다가 도중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소년이 온다>를 꺼내 읽었다. 바로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내가 어떤 감정인지 솔직히 잘 몰랐다. 내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를 오히려 작품을 통해 알게 됐다. 내 아픔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마치 나의 내면에 들어와서 작품(소설)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전에는 지금과 같은 감정 상태와 느낌을 가져보고 싶지도 않았고, 상상해 보지도 않았다. 전에는 (<소년이 온다>를) 감정을 많이 소모시키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겪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참사 이후, 5.18(광주항쟁 희생자) 어머니들과도 자주 만나고 간담회도 가졌다. 지금도 어머니들과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또 제주 4.3 유가족과 채상병 어머니 등도 만났다. 그러다 보니 한강 작가가 쓰고 그려낸 문장과 그 안에 녹아 있는 감정이 작가가 (임의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읽었지만 큰 위로가 됐다."
"참사 책임자들 처벌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