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서김철홍 인천대 교수가 쓴 ‘퇴직 교원 정부포상 미신청자 확인서’
김철홍 교수
국립대학교 소속이면 공무원이다. 그렇기에 훈장은 예식처럼 반복되어 온 공직자의 순응이자 오래된 관습이다. 이를 단숨에 휴지 조각으로 짓이긴 셈이었다. 더 나아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책임을 다른 시선에서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공무원이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들에게 요구되는 중립이란 권력에 복종하기, 아니면 침묵하기였던가.
어찌 보면 특별할 게 없다. 권력이 조소를 받았으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법하다. 그러나 지금의 형국을 직시하면 이 모든 것이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한때 '권력의 시녀'라 불리며 비난받던 공무원들의 행태가 사라진 듯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선명히 떠오른다. 물론 모든 공무원이 그런 것은 아니다. 검찰은 스스로 기소권을 어지럽히고, 국감에 나선 이들 역시 각기 다른 태도로 권력을 변주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 시대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중립은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여야 한다. 시민을 위한 목소리, 바로 그 목소리가 중립의 진정한 본질일 것이다. 공무원법은 특정 정당 가입을 제한하고 선거 활동을 금지한다. 이의 철회를 위해 공무원 조직은 부단히 싸우는 중이다.
김철홍 교수는 국립대 교수이자 공무원으로서 중립의 본질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그의 거부는 일상의 지시에 대한 저항만이 아니었다. 권력의 묵은 코스프레로 치달을 뿐인, 양심과 책임의 방치를 조용히 헐뜯었다. 공무원이란 시민과 정부 사이 경계에서 권력의 흐름을 반영하며 조율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권력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과도한 농단을 비판하며, 윤리적 기준을 세워준 본보기이다.
그러면서 비슷한 사연은 어느 시대에나 반복되곤 했다. 한 공간에 갇힌 채 암울함이 짙었던 때, 민주화의 열망이 억눌리고 짓밟히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은 죽음의 선율을 아프게 울려 퍼뜨렸다. 그 중심에서 누구는 명령을 따랐고, 또 누구는 조용히 명령을 거슬렀다. 누구는 복종을, 또 누구는 자신의 소신을 택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우리는 그들의 선택과 그 선택의 무게를 보았다.
총탄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어디 12.12의 격랑에만 그랬을까. 죽음의 문턱을 넘는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비껴가지 않았던 사람들, 그들은 어떤 무게를 견디며 그 자리에 서 있었을까. 지금은 그런 총구가 눈앞에서 번들거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곡된 정치적 판단이 곳곳에서 기세를 떤다. 도대체 총보다 더 무서운 게 무엇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