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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취업 실패했던 이유, 영어 아니라 이거였구나

글로벌 시장서의 경쟁력, 호주 비즈니스 전문가들은 '문화적 소양' 꼽았다

등록 2024.08.01 12:14수정 2024.08.0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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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기사(환갑 넘어 이민, 하고픈 일 다 하며 살아요: https://omn.kr/29l25 )에서 이어집니다.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첫 해외 취업에 도전했던 경험은 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안겨주었다. 교환학생 경험 이후 해외 인턴십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지원했지만, 영어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 당시 나는 영어 실력 부족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깨달은 것은, 해외 취업에서 영어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문화적 소양(Cultural Literacy)'이었단 점이다. 호주에서 만난 HR 및 비즈니스 전문가들과 커리어 멘토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이를 꼽았다.

글로벌 경쟁력과 기회를 만들어내는 이것

사전에 따르면, '문화적 소양'이란 한 사회와 문화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문화 지식을 의미한다. 이는 전통에 대한 인식, 문화적 유산과 그 가치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쉽게 말해, 특정 문화권이나 사회의 전통과 가치를 잘 이해하고 습득하는 능력이다.

한국은 단일 민족 사회로서 대부분 단일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습득한다. 그러나 해외로 나가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다양한 사고방식과 가치 체계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

매우 어렵지만, 글로벌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기사에선 다문화 사회인 호주에서 한국과 호주를 잇고 있는 멘토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a <한-호 차세대전문가협회> 주최, 리더십 포럼의 멘토링 세션 5월 31일 ~ 6월 1일 양일간, <한-호 차세대전문가협회>가 주최한 리더십 포럼에 참가했다.

<한-호 차세대전문가협회> 주최, 리더십 포럼의 멘토링 세션 5월 31일 ~ 6월 1일 양일간, <한-호 차세대전문가협회>가 주최한 리더십 포럼에 참가했다. ⓒ 김도희

 
호주에서 만난 멜번 영사관의 김가혜 전문관님은 "상대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글로벌 커리어를 쌓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언어 능력을 넘어 상대방의 사고방식과 의사 결정 과정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의사소통은 상대방의 의중과 의도를 잘 파악하고, 이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전달할 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영사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외교이고, 저는 멜번 영사관에서 방산, 수소, 재생에너지, 핵심 광물, 문화 교류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한호 양국을 잇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을 호주에, 호주의 입장을 한국에 전달하는 것도 핵심 업무 중 하나죠.


그런데, 이 일은 단순한 통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한국과 호주가 언어도 다르지만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화법, 의사 결정 과정 등 많은 것이 다르기에, 이를 바탕으로 상대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진짜 의미를 파악해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만 대화를 통해 유의미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요"

국내 대기업 및 공기업에서 17년 근무 후, 현재는 호주의 광산 대기업에서 아시아 국가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총괄하는 한 한국인 멘토의 말도 비슷하다. 익명을 요청한 그는 "해외에 나오는 한국 청년들이 우리의 문화적 유산을 더 소중히 여기고 깊이 이해하면, 더 많은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외국에서 일할 때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인으로서 가진 문화적 유산을 잘 이해하고 그 맥락을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에 진출하거나, 한국 기관이나 기업과 협력하려는 외국 파트너가 많아요. 그런데, 그분들은 한국이나 한국 비즈니스 문화에 대해 잘 몰라요. 이 차이를 메꿀 수 있는 사람은 한국과 호주의 사회 문화를 잘 이해하는 뛰어난 문화적 소양을 지닌 사람입니다. 이 능력을 가진 사람은 해외에서 한국과 여러 나라를 잇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실제 호주 내 Australia Korea Business Council(AKBC)와 Asialink라는 정부 기관에서는 아시아와 비즈니스를 하는 호주 리더들의 문화적 소양 계발을 위해, 한국 및 아시아 국가에 대해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정부 차원에서 이런 문화 교육 프로그램에 투자하고, 바쁜 리더들이 시간을 쪼개서라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꼭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가능하다

호주는 전 세계 이민자들이 건너와 만든 나라로, 현재 인구의 3분의 1이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자란 호주인들은 자연스럽게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있다.

이런 다문화적인 경험은 호주 사람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길러 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타인에 대한 관용과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소위 '단일 민족' 사회에서 자란 우리는 어떻게 문화적 소양을 계발할 수 있을까?

법무부 체류외국인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이미 250만 명 이상의 외국인 거주자가 있다. 이미 우리 주변에 전 세계가 성큼 다가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문화적 소양을 키울 수 있다.

최근 국내 학교에서도 주한 대사관이나 NGO와 협력해 학생들에게 정규 교과 외에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건 긍정적인 변화다. 나는 지난 12월 경기도 용인의 두 개의 중학교에서 다른 나라 문화와 나의 해외 경험을 나누는 수업을 6차례 진행하기도 했다.
 
a 지난 12월, 용인 이현중학교에서 진행한 <청소년 국제매너캠프> 수업 현장 두 시간에 걸쳐 필자의 해외 생활 경험담 및 글로벌 시대에 한국인에게 필요한 역량에 대해 청소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12월, 용인 이현중학교에서 진행한 <청소년 국제매너캠프> 수업 현장 두 시간에 걸쳐 필자의 해외 생활 경험담 및 글로벌 시대에 한국인에게 필요한 역량에 대해 청소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 존아저씨의차고

 
학교 밖에서도 언어 교환, 운동 및 여행 커뮤니티 등 내외국인이 어울려 취미를 공유하는 모임도 많고, 주한 상공회의소나 대사관에서 진행하는 비즈니스 네트워킹 이벤트 등을 통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커뮤니티를 찾고 싶다면, 밋업(Meet Up)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원하는 키워드(이를테면 언어 교환, 러닝 등)로 한국어 또는 영어로 검색해 볼 것을 권한다. 나 또한 실제로 4년 전 Facebook에 seoul running international 이라는 키워드로 내외국인이 함께 달리는 러닝 커뮤니티를 찾았다.

글로벌 시장에서 내 경쟁력을 키운다고 토익, 토플, 오픽 점수 등 영어 시험 점수 올리기에만 의존하지는 말자. 그보다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공부와 이해를 바탕으로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다른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은 나의 전문성과 결합되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것이다.

꼭 해외에 나가지는 않아도, 일단 한국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낯선 한국에 살아가는 외국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의 문화적 유산을 나누고, 상대의 문화를 배우며 문화적 소양을 쌓아나갈 수 있다. 이렇게 기른 문화적 소양은 글로벌 커리어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enerdoheezer)에 최근 게재된 글을 보완해 작성했습니다.
#호주 #한국인의눈 #해외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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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까지 여권도 없던 극한의 모범생에서 4개국 거주, 36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영국인 남편과 함께 현재 대만에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해외 경험을 통해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많이 얻었습니다. 여행과 질문만이 내 세계를 확장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며, 글을 통해 해외에서 배운 점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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