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 나도 고래잡아 줘”

등록 2000.05.26 15:42수정 2000.05.2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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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소아비뇨기과 의사들이 지난 5개월간 초등학교 남자아이를 둔 부모 3천5백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모들의 91.3%가 자녀의 포경수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42%는 포경수술을 안받으면 놀림감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40대 미만 성인 남자의 80%가 포경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그럼, 다른 나라의 남자들은 어떨까?

전 세계에서 포경수술을 한 남성은 20%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종교의례로 되어 있는 이슬람교와 유대교신자를 빼면 5%가 안된다고 한다. 그것도 주로 신생아 때 수술을 많이 하는 미국을 제외하면 유럽이나 기타지역에서는 더 적다고 봐야 한다.

왜 이런 엄청난 차이가 나는 걸까? 그렇다면 정말 포경수술은 꼭 해야만 하는 것인가?

일명 ‘고래잡이. 남자의 음경을 덮고 있는 포피를 둥그렇게 잘라내어(환상절제) 귀두가 노출되도록 하는 포경수술은 가장 오래 전부터 시행되었던 수술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할례(割禮) 의식은 고대 이집트의 무덤 벽면에도 묘사되어 있으며, 성경에는 창세기 17장에 언급되어 있다. 유대교의 경우 생후 8일째 할례를 한다고 한다.


("너희는 포피를 베어 할례를 베풀어야 한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운 계약의 표다. 대대로 너희 모든 남자는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창세기> 17:12)

이렇게 대부분의 할례는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 종교적인 의식으로 남자에게 행하여 왔으나, 18세기 들어서 자위행위로 인해 유발되는 여러 질병을 막을 수 있다는 의학적 관점이 제시되었다.


본격적으로 의학의 범위에 들어오게 된 것은, 2차세계 대전 당시 미군이 전쟁터에서 음경에 생긴 염증으로 고통받는 병사들에게 포경수술을 실시하면서부터 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영향을 받아 포경수술이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처럼 관례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성을 터부시 해온 관습 때문에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해서 병신’되지 않으려고 ‘고래’를 잡아왔다.

물론, 문화적으로 뿐만 아니라, 의학적으로도 미국을 추종해오다 보니 세계 최고의 '고래잡이 국가'가 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이미 오래 전부터 영국 등에서는 포경수술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제기들이 있었고, 미국에서는 1978년 일률적인 신생아 포경수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포경수술의 유용성에 대한 학문적 논란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1999년 미국 소아과 학회에서는 "신생아 포경수술이 의학적으로 잇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일률적으로 신생아에게 포경수술을 권고하기에는 부족하다" 공식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사춘기가 넘어서도 포피가 뒤로 젖혀지지 않는 경우나 (5세가 넘으면 90%는 포피가 젖혀진다) 병적인 포경의 경우(오줌을 누는 데 문제가 있거나, 음경의 발육에 지장이 있을 경우, 음경의 귀두와 포피 사이에 염증이 자주 반복되는 경우 등)는 당연히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신생아의 요로감염의 빈도를 낮출 수 있다든지, 남성의 음경암의 예방효과나 배우자의 자궁암을 줄이는 효과에 대해서는 많은 반론이 있는 것이다.

신생아의 요로감염은 잘 치료될 뿐만 아니라 아무런 조치를 않는 여아들에서도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고, 음경암은 그 발생확률이 극히 낮고, 여성의 자궁암 발생원인에 대해서는 포경수술의 유무보다는 어린 연령에 성교를 시작하거나, 성교대상이 많거나, 흡연 등이 보다 더 중요한 인자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어차피 할 수술이면 아픔을 못느끼는 신생아 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에 대해서는, 신생아 시절의 통증 경험이 이후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전신마취로 신생아의 뇌세포 수가 줄어든다는 등의 반론들이 있어 왔다.

그래서 포경수술을 해야한다면 적절한 시기로, 통증을 감당할 수 있어 부분마취가 가능한 12~14세를 권고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제는 '고래 잡는 일’도 당연한 것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되어야 한다.

“과연 포피가 필요 없는 것이라면 왜 태어날 때 없어지거나 적게 나오지 않고 모든 남자에서 다 가지고 태어나는 것일까? 인체의 모든 기관이 다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데 왜 포피만은 그렇지 못하고 말썽만 일으키는가? “

누군가 가질지 모르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고래잡이’에 대한 논란은 끝이 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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