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외압의혹' 수사종결을 보며

의혹은 여전, 더이상 국력낭비 하지 않으려면

등록 2000.10.10 23:30수정 2000.10.1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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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10일, 불법대출 외압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대출외압 주장은 개인 비리를 덮기 위한 이운영 씨의 자작극이었고, 대출외압은 없었다는 것이 검찰이 내린 결론이다.

검찰의 발표대로 이운영 씨는 박지원 전장관이 외압을 가했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어떠한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또한 검찰에 소환된 주변 인물들도 이 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의 주장이 일으켰던 정치적 파장을 감안한다면 그가 제시한 객관적 근거들이 부족했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러나 이 씨가 개인 비리를 저지른 신뢰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사실과, 외압의 존재여부는 별개의 문제이다. 현시점에서 검찰의 발표대로 "대출외압은 없었다"는 결론을 수용하기에는 여전히 여러 의문점들이 남는다.

그동안의 수사과정을 보면 전반부에는 이운영 씨의 개인비리를 파헤쳐 일단 그가 신뢰할 수 없는 인물임을 부각시킨 뒤, 후반부에 들어가서는 이 씨의 외압 주장이 허구임을 입증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는 느낌을 버리기가 힘들다.

검찰의 선명한 결론과는 달리 의문들은 남는다. 과연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제보자가 사직동팀에 돈을 써가면서까지 청부수사를 의뢰할 이유가 있었는지, 그리고 사직동팀이 6백여만원정도의 금품에 청부수사를 맡아 강압수사까지 해야했던 것인지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사직동팀이 이운영 씨의 비리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게 된 경위가 여전히 석연치 않다.

그리고 이운영 씨의 사표제출 경위도 관련자들의 진술이 계속 뒤바뀌면서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다. 또한 박지원 전장관이 이운영 씨측 메신저를 세 차례나 만난 사실이나, 그에 대처했던 일련의 태도 역시 상식적으로 의문을 남기고 있다.

설혹 이 씨 주장의 상당 부분이 허구라 해도, 사직동팀이 움직이게 된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검찰수사는 이러한 의문점들에 대한 강도높은 수사를 벌이기 보다는, 이 씨의 주장이 허구임을 입증하는 수순밟기를 진행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검찰로서는 수사를 해도 이 씨의 주장을 입증할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는데 어떡하느냐는 항변을 할 법 하지만, 거꾸로 외압이 없었음을 단정할 근거 또한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개운치않은 것은 검찰 발표 하루 전인 9일, 김대중 대통령이 이회창 총재를 만난 자리에서 했던 발언이다. 김 대통령은 "박지원 전장관이 억울하게 사퇴를 했던 것 같다. 박지원 전장관에 대해 한나라당이 너무 가혹했던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좋게 말하면 '자기 사람'을 믿으려하는 대통령의 의리가 엿보이고, 박 전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을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기도 전에, 그리고 국정조사도 남아있고 특별검사제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있은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대단히 놀랍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이 자신의 속내를 그렇게까지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마당에, 그리고 검찰조직도 대통령의 그러한 속내를 이미 다들 알고 있었을 터에, 과연 박지원 전장관 부분에 대해 강도높은 수사가 이루어졌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국민들은 의혹을 파헤칠 수사를 요구했지만, 대통령과 검찰은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벗겨줄 수사를 한 셈이다.

없었던 외압을 만들어내라는 말이 아니다. 여론이 아무리 들끓는다 해도 없었던 외압을 억지로 만들어낼 수야 없는 일 아닌가. 나는 외압 부분에 대해 어떠한 예단를 할 객관적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대다수 국민들이 그러하듯이, 누구의 말이 어디서 어디까지 맞고 틀리는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의문들은 떠올릴 수 있다. 이렇게 상식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의문들을 명백히 해소하지 못한다면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는 종결될 수 없을 것이다. 야당이 승복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국민이 승복하지 못하는 수사결과 앞에서 내려지는 결론은 자명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특별검사제를 통해 최종적인 판단을 국민들이 내리게 해야 한다.

또 다시 특별검사제를 하는 것을 '국력낭비'라 하는 주장도 있지만, 이 사건이 두고두고 정치적 논란거리가 되고 차기 정권에서 또 다시 쟁점으로 불거져 나오는 것이야말로 '국력낭비'가 아니겠는가.

결과가 무엇이 되든간에, 이 사건은 이번 겨울까지는 결론을 내버리자. 여와 야, 그리고 국민이 함께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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