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후손에게 부를 안겨준 공자

취푸-타이산과 <논어>

등록 2001.01.29 12:50수정 2001.01.2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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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시절에 우리나라에서는 올림픽이 열렸다. 모두가 분주하던 시절 재수생이었던 나는 동굴 속을 거닐던 우울함을 느껴야 했다. 올라오는 길에 매형에게 얻어입은 미제 군용 야전상의의 좌우에는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당시(唐詩)선집’이 꽂혀 있었다.

전자는 수용소에 갇혀 있던 것 같은 내 육신의 상황을 의미했고, 처절한 낭만이 감도는 이백, 두보의 시는 여유를 찾아가는 마음을 의미했다. 마음의 낭만이 곧 읽혀지자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문고판 ‘논어’(論語)였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첫머리에 있었던 책일 뿐이라는 상상과 달리 문고판으로 읽은 논어는 막 삶에 눈 떠가는 청년에게 중요한 등불이 됐다. 그저 몸으로 부딪히며, 세상의 진리를 얻어가는 청년에게 논어 만큼이나 아름다운 책이 있을까. 논어는 편한 마음으로 접하면 절대 어렵거나 복잡한 책이 아니다. 단지 인생의 선배가 권하는 바른 삶이란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좋은 글의 모임일 뿐이다.

중국 산둥성의 고도(古都)인 취푸(曲阜)와 중원의 명산인 타이산(泰山)은 논어의 고향이다. 한시간의 거리에 있는 그곳을 논어를 들고 둘러본다. 지금 한국에서는 사상계의 이단아로 치부되는 도올 김용옥이 ‘논어’를 강의하고 있다.

도올의 강의의 중심이 어디이든 도올은 공자를 되살리려 한다. 그렇다면 이미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의미있는 논의가 흘러간 한국에서 ‘논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논어는 과연 땅에 묻혀졌어야할 고리타분한 유교의 교범일 뿐일까. 유교의 경전과도 같은 문제작 논어를 들고, 그 책이 탄생한 고향을 찾는다는 것은 그래서 조금 긴장감이 있다.

2500년 후손에게 부를 안겨준 공자

취푸는 공자의 후손들이 철로가설을 반대해 그곳에 가려는 이들은 옌저우에 내려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옌저우에서 출발한 차는 반시간 만에 객을 취푸의 중심인 콩미아오(孔廟) 앞에 내려놓는다.


왕조의 흥망에 따라 수없이 부침한 유교의 위상에 공자를 모시는 사당의 중심인 콩미아오의 흥망도 따라 움직였다. 그들에게 가장 가까운 역사는 1966년 이후 10년간 광기처럼 중국대륙을 흔들었던 문화대혁명이었다. 공자는 보수적인 반동문화의 상징인물로 간주되어 린피아오(林彪)와 더불어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물론 그 시기 동안에 공자의 도시 취푸는 거대한 암흑의 시간을 지내야 했다. 하지만 문혁의 광기가 지나가고, 관광산업이 중국산업의 중요한 한 근간에 자리하면서 세계 4대 성인으로 숭앙받는 공자의 고향 취푸는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2500년이 지나 그의 후손들에게 적지 않은 부를 안겨다 주었다.


콩미아오의 입구는 그다지 정비되어 있지 않지만 이 성소를 안내해 주기 위한 안내인들이 찾아드는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더러는 한국말에 유창한 조선족 분들이 있어 중국과 달리 조선조 500년 동안 공자를 최대의 성현으로 모셔오던 동포들에게 그 역사를 안내하려 한다. 그들을 외면하고 콩미아오의 안으로 들어선다.

공자(孔子)는 기원전 552년 태어났다. 이미 연로한 아버지 숙량흘은 공자가 3살 적에 죽었다. 독학에 가깝게 공부했지만 점차 그는 어려서부터 예를 알았다. 그는 세상을 주유하며, 젊어서는 스승을 찾아 배웠으며, 차츰 그의 덕성과 지식을 흠모한 이들이 모여, 3천에 가까운 제자들이 모였다.

혼란을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 삼림에 들어가 학문의 세계를 세울 때 공자는 주군을 찾아 천하를 떠도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제자들과 행한 경전의 정리 등의 작업은 중국 사상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공자에 의해 지금의 중요한 경전인 사서와 오경이 집필되거나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논어’(論語)는 말 그대로 공자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공자가 운명하자 제자들이 정리해서 만들어 놓은 기록이다.

콩미아오에 들어서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양 옆에 도열한 수많은 황제들의 비석이다. 물론 공자에게 비석을 내린 이들은 중앙집권통치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세운 이들이었다. 그 가운데는 현대 중국의 가장 확실한 영토를 잡은 청 강희제가 베이징 서산(西山)에서 운반해 온 비석이 두드러진다.

비림(碑林)을 지나서 나아가면 여행객을 맞는 것은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는 행단(杏壇)이다. 한국 성균관에서 만나는 은행나무와 같은 노거수를 모시는 행단은 세월을 삭힌 어진 모습으로 여행객을 맞는다. 공자는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문득 나무 아래에서 논어를 통해 공자가 가장 힘차게 주장하고자 했던 정신인 ‘인’(仁)이나 ‘덕’(德), ‘도’(道)에 마음이 쏠린다.

공자는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웃이 있는 것이다”(里仁)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里仁) “도에 뜻을 두며, 덕에 의거하며, 어진 것에 의지하며, 예에서 노닐어야 할 것이다”(述而) “내가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子罕) 등. 이런 개념들은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의 생각이니 만큼 쉽사리 파악할 수 없지만 바른 마음이라고 간단히 생각해 보면 가깝게 갈 수 있지 않을까. 행단을 지나면 콩미아오의 가장 주된 건물이자 중국 3대 전각 중에 하나인 대성전(大成殿)에 이른다.

단순히 건물의 위용이 아닌 공자가 스스로 누추함을 이기고 바른 정치를 통해 세상을 이끌려했던 역사가 묻어 있다. 그리고 그런 노고를 높이 사는 후세인들의 숭앙함이 기둥 하나 하나, 기와 하나 하나에 들어있다.

대성전에서의 위용에 마음을 비우고, 콩미아오를 빠져나와 콩린(孔林)으로 가기 위해 작은 수레에 오른다. 콩린의 길목에 있는 따린먼(大林門)에는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는 논어 첫 구절 중에 한 문장이 써 있어 이역의 방문객을 기쁘게 한다.

콩린은 공자와 공자의 제자를 비롯해 역대 유림의 명인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콩린은 떡깔나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숲이다. 숲에 들어서자 공자의 위용과 더불어 마음은 갑자기 참혹해진다. 한국에서 들린 소식이 머리에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 여성 노동자를 구타해서 사망하게 했다는 소식. 물론 그것이 갑작스런 소식이 아니라 이미 널리 알려진 현상이며, 중국에서 역시 이런 인식을 벗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은 치욕과 더불어 덕 없음 그 자체다.

“나라에 도 있을 때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요, 나라에 도가 없을 때 부하고 귀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泰伯)라는 말을 곱씹어 본다. 이른 근대화와 부지런한 국민들의 근성으로 인해 주변국가 중에서 빠르게 국부를 이루었지만 우리 민족이 보이는 많은 추태는 도가 없을 때 부하고 귀한 이들이 보이는 부끄러움 그 자체가 아닐까.

타이산에서 천하가 작음을 느낀다

콩린을 돌아보고, 다시 타이산(泰山)으로 가는 길목인 타이안(泰安)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취푸에서 타이산까지는 버스로 40분이 채 걸리지 않은 짧은 길이다. 공자도 이 길을 걸어 자주 타이산에 올랐다. 이 길에 오는 과정에 3대가 호랑이가 물리고도 그 마을을 떠나지 않은 노인을 만나 “가혹한 정치가 사나운 맹수보다도 무섭다”는 유명한 문구를 남기기도 했다.

타이안은 말 그대로 타이산을 통해 정체성을 이루어가는 도시다. 유난히도 평지가 많은 중원에 타이산은 우뚝 솟은 명산으로 세상을 널리 굽어보고,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산 아래에서 위까지가 중국 정신의 고향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타이산의 초입에는 대성전, 태화전과 더불어 3대 전각으로 꼽히는 따미아오(岱廟)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진시황제를 비롯해 수많은 황제들은 이곳을 기점으로 5악의 중심인 동악태산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다.

따미아오에서 타이산의 정상인 옥황정(玉皇頂)까지는 6시간이 넘게 걸리는 긴 계단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바쁘고, 게으른 마음에 차와 케이블카로 산정에 가까운 남천문(南天門)까지 오른다. 옥황정으로 가는 길의 왼쪽에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사당을 지키는 유학자로 보이는 이는 아직도 예가 살아있다는 평을 듣는 한국의 청년을 보고, 짐짓 눈시울을 적신다.

타이산의 정상 옥황정은 유교의 흔적이 아닌 도교(道敎)의 흔적이다. 중국이 한국과 다른 것은 유교가 독점되기보다는 도교, 불교가 끝없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싸웠다는 데 있다. 타이산의 곳곳에 이 세 가지 종교의 흔적이 산재해 있다. 세상의 이치를 파악함에 있어 굳이 편벽 될 이유가 없다. 공자의 사상 역시 지나치게 예를 중시하는 나머지 형식에 억매여 현대에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가치를 폄하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고전을 끊임없이 재해석해 정수를 받아들여야 할 것은 후세의 몫이다.

산정에서는 내려오는 길은 걸어서 하산하는 길을 택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하산길은 고통이다. 하지만 나를 돌아보는 길이기도 하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을 알아주기를 꺼리면서 공명심에 들뜬 생활이다. 공자는 “남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치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할 것이다”(學而)라고 말했다. 개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현대인의 삶에 이 말이 던지는 일침은 매섭다. 증자가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어진 덕을 보필하는 것이다”(顔淵)라는 지침도 의리를 중시하던 공자의 큰 가르침이었다.

땀을 내고, 식히는 과정을 거듭하며 서서히 지상에 가까이 간다. 문득 나를 다시 본다. 공자는 “나이 사십이 되고도 미움을 받으면 그대로 종말이 될 것이다”(陽貨)고 말했다. 내 나이 40에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 이가 되지 않을까를 짐짓 걱정해 본다.

-이 글과 사진은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사보에 기고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책소개  - 논어, 끝 없는 재해석, 정답은 없다

논어는 공자의 사후 제자들에 의해 정리된 후에 나타난 판본으로 <노논어 魯論語>, <제논어 齊論語>, <고논어 古論語>가 있어 이미 다양한 판본이 있다. 물론 논어는 왕필, 동중서, 정자, 주희를 비롯해 시대에 따라 수없이 재해석된 살아있는 텍스트다. 하지만 논어가 가장 가치있는 고전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물론 읽는 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에도 큰 차이가 있다. 정자(程子)는 “논어를 읽어서 전혀 얻는 것이 없는 자도 있고, 읽은 뒤에 그 가운데에서 한두 구절을 좋아하는 자도 있고, 읽은 후에 좋아할 줄 아는 자도 있고, 읽은 뒤에 곧 저도 모르게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는 자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음이 있다. 우리 땅에서 역시 논어의 해석은 큰 논란거리였다. 논어 등 경전의 해석 차에 따라 사화와 당쟁이 진행됐을 만큼 논어는 논란거리다.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논어도 다양하다. 현대 이후에 출간된 논어의 숫자는 100여종에 이를 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권위를 인정받는 해석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동양학 연구가 이수태 씨의 논어(생각의 나무 간), 국문학계의 권위자인 이가원 씨가 감수한 논어(홍신문화사 간/이기석 저)나 주희의 해석을 번역한 한상갑 씨의 논어/중용(삼성출판사 간)도 권할 만 하다. 최근에 방송강의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도올 김용옥의 도올 논어(통나무 간)는 그만의 독특한 해석이 흥미를 더해주는 책으로 꼽힌다.

덧붙이는 글 책소개  - 논어, 끝 없는 재해석, 정답은 없다

논어는 공자의 사후 제자들에 의해 정리된 후에 나타난 판본으로 <노논어 魯論語>, <제논어 齊論語>, <고논어 古論語>가 있어 이미 다양한 판본이 있다. 물론 논어는 왕필, 동중서, 정자, 주희를 비롯해 시대에 따라 수없이 재해석된 살아있는 텍스트다. 하지만 논어가 가장 가치있는 고전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물론 읽는 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에도 큰 차이가 있다. 정자(程子)는 “논어를 읽어서 전혀 얻는 것이 없는 자도 있고, 읽은 뒤에 그 가운데에서 한두 구절을 좋아하는 자도 있고, 읽은 후에 좋아할 줄 아는 자도 있고, 읽은 뒤에 곧 저도 모르게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는 자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음이 있다. 우리 땅에서 역시 논어의 해석은 큰 논란거리였다. 논어 등 경전의 해석 차에 따라 사화와 당쟁이 진행됐을 만큼 논어는 논란거리다.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논어도 다양하다. 현대 이후에 출간된 논어의 숫자는 100여종에 이를 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권위를 인정받는 해석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동양학 연구가 이수태 씨의 논어(생각의 나무 간), 국문학계의 권위자인 이가원 씨가 감수한 논어(홍신문화사 간/이기석 저)나 주희의 해석을 번역한 한상갑 씨의 논어/중용(삼성출판사 간)도 권할 만 하다. 최근에 방송강의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도올 김용옥의 도올 논어(통나무 간)는 그만의 독특한 해석이 흥미를 더해주는 책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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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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