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누가 만드나

<미국사는 이야기 39>

등록 2001.02.07 04:33수정 2001.02.2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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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 또 깜빡 잊을 뻔했네.
크로거 커미트먼트 카드가(Kroger Commitment Card) 어디 있더라. 내가 일주일에 한번씩 가는 수퍼마켓 크로거에 가면 물건값을 계산하기 전에 꼭 한 가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그건 크로거 커미트먼트 카드를 찾아 캐쉬어에게 주는 일이야.

크로거 커미트먼트 카드가 뭔가 하면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학부모들에게 나누어 준 카든데 그러니까 크로거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이 카드를 내면 내가 산 물건값의 일정액(3% 정도)이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전해진다. 내 지갑 안에는 크로거 카드뿐 아니라 퍼블릭스 카드도 한 장 꼽혀 있어. 퍼블릭스(Publix)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수퍼마켓 중의 하나고 이곳에서 물건을 살 때에도 이 카드를 내면 마찬가지로 일정액이 학교 교육비로 돌아가지.

한 사람이 산 물건값의 3%를 계산하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많은 학부모들이 이 카드를 이용하면 할수록 그것도 꽤 큰돈이 되어서 가끔씩 크로거 수퍼마켓 입구에는 몇 만 달러를 지역 학교 교육비로 전달했다는 내용의 사인이 나붙고는 해. 이 외에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가만히 살펴보면 비록 작은 부분이지만 기업과 교육의 인터렉티브한 면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들어서면 복도 한쪽에는 시리얼 박스 탑(Cereal Box Top)을 모으는 함이 놓여 있어. 제너럴 밀(General Mills)사의 시리얼(Cereal) 제품과 베티 크락커(Betty Crocker), 요플레(Yoplait) 제품을 사면 박스 위에 10센트 짜리 쿠폰이 있는데 이걸 오려서 학교에 준비되어 있는 함에 넣는 거야. 그러면 1년에 최고 1만 달러까지 기업으로부터 받게 된다.

기업은 자사 제품 팔아서 좋고 교육에 투자한다는 기업이미지 살려서 좋고 학교는 새로운 교육기재 마련해서 좋고. 그런데 그보다도 내가 종종 감명을 받는 것은 여기 엄마들 그걸 일일이 신경 써서 오려 보내고 또, 몇몇 학부모들은 시간을 투자해 귀찮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도 바로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자발적이고도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모습들을 보는 일이야.

또 하나 재미있는 건 아이들이 학교에서 개근상, 우등상을 비롯해 무슨 상을 받아 올 때 꼭 따라오는 것이 있는데 그게 뭐냐하면 지역 상점에서 제공하는 무료 이용권이다. 치킨 샌드위치 전문점인 칙-필-에이(Chick-fil-A), 피자 헛(Pizza Hut), C. C. Pizza 등에 가서 아이스 크림이나 치킨 너겟, 일인용 피자 등을 무료로 먹을 수 있는 거지.

한국에서 메달이나 학용품 같은 걸 상품으로 받던 기억을 꺼내보면서 처음엔 뭐 이런 걸 상품으로 주나 했는데 그것도 잘 사용하니까 나쁘지 않더라구. 물론 엑스트라 머니를 내야 할 때가 더 많지만 밥하기 싫은 토요일 점심 때쯤 다른 쿠폰과 함께 사용하면 절약할 수 있고, 아니면 저녁 산책길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무료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맛도 괜찮구.


특히, 칙-필-에이는 내가 참 좋아하는 패스트푸드 샵이야. 거기라구 자주 가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왜냐면 그 회사가 맥 도날드나 버거 킹 같은 다른 패스트푸드 샵에 비해 훨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회사라는 걸 키즈 밀(Kid's Meal)을 시켜 보면 금방 알게 되기 때문이다.

어린이 패키지 밀인 키즈 밀을 주문하면 봉투 속에 장난감이 하나씩 따라오는데 맥 도날드나 버거 킹이 인기 있는 디즈니 캐릭터 등을 넣어 아이들의 환심을 사 장사하려고 할 때가 많은 데 비해서 칙-필-에이에서 주는 것들은 만들기 재료라든지 책을 주는 일이 많아 아이 맘엔 때로 안 들어도 엄마 맘에는 쏙쏙 드니까.


아! 말이 나온 김에 조지아 주에서 운영하는 복권이 어떻게 교육에 투자가 되고 있나 그것도 얘기해 줄게. 내가 살고 있는 애틀란타는 조지아 주에 속하는데 조지아 주에서는 지난 1993년부터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복권 판매액의 일부를 교육에 투자하고 있어서 환영을 받고 있어.

한국에서 말하면 유치원에 해당하는 프리 킨더 가든(Pre Kindergarten)이 바로 복권 기금으로 무료로 운영되고 있어서 나도 이 쪽으로 이사온 다음엔 두 아이 모두 혜택을 받았다. 그렇다고 모든 유치원이 다 복권 기금으로 운영되는 건 아니고 바로 초등학교 입학 하기 전인 만 4살 반 중 주 정부 기준에 합격한 유치원만 대상이 되고 있어. 다른 주에서 유치원에 보내려면 한 달에 삼 사백 달러는 족히 들어가니 당장 가정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대학에는 희망 장학금(Hope Scholarship)을 주고 있는데 조지아 주 거주자가 조지아 주 내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을 경우 평균 B학점을 유지하면 등록금 전액을 면제해 주는 장학제도야. 이게 아주 큰 효과를 보아서 지난 해에는 UGA(University of Georgia)가 처음으로 미 전국 공립 대학 탑 20위 안에 들었단다. 조지아 주 내에 있는 우수한 학생들이 타 주에 있는 대학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는 거지.

지난 7년 동안 12억이 희망 장학금으로 쓰여졌고 50만4000명이 이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대. 조지아 주에서 처음 시작한 이 장학제도가 성공적이라고 해서 지금은 미 전국 13개 주에서 비슷한 장학제도를 만들었대.

물론 주로 빈곤 계층이 복권을 더 많이 사고 중산층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율이 더 많다는 걸 감안하면 빈곤층의 돈으로 중산층을 돕는 다는 말도 있을 수 있고 아이들이 B학점을 유지하기 위해 쉬운 과목만 선택하는 예가 많다는 몇 가지 좋지 않은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 운영 복권이라는 게 있는 한 복권의 이윤이 일개 정부 부처로 들어간다거나 다른 곳에 쓰여지는 것보다는 장학금으로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게 훨씬 건강한 사회 순환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조지아 주의 교육이 타 주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져도 우리 아이도 조지아 주에서 계속 자라면 희망 장학금은 받을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갖게 하니까.

"Teaming Up To Win For Education"
퍼블릭스 수퍼마켓 카드에 써 있는 문구야.
나도 기업도 정부도 희망 만들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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