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독자에게 인터뷰를 당하다

<미국 사는 이야기 40>

등록 2001.02.14 07:23수정 2001.02.1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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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만나고 싶다는 멜을 받고 그러자는 답 멜을 보낸 지 꼭 20일 만에 우리는 만났다. 바로 어제 스타벅스 커피샵에서 나는 세 가지를 처음 해봤어.


하나는 그러니까 미국 와서 처음으로 스타벅스 커피샵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 일. 스타벅스 커피샵에서 어쩌다 커피를 산 적은 있지만 거기 테이블에 앉아서 한시간 넘게 여유를 부려가며 커피를 마셔보긴 어제가 처음이었다.

또 하나는 지독한 커피 에스프레소를 마신 일.
위장장애가 있는 탓에 물 같은 커피를 더 즐겨 마시는 내가 옛날 한국 다방 커피보다 더 진한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셔 보았다. (고마워요 지영씨. 지영씨 덕분에 비 오는 날 마시는 쓴 커피 맛을 알게 되었군요. 앞으로 비 오는 날엔 쓴 커피를 마셔야겠어요.)

세번째는 처음으로 내 글의 애독자에게 인터뷰를 당한 일.

그러고 보니 벌써 일년이 넘었구나.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의 다소 선동적인 문구보다는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진중한 문구가 맘에 들어 오마이뉴스 기자가 되었는데 기존 언론이 사는 이야기가 특별한 일인 양 평범한 삶보다는 무슨 명절이나 기념일에 맞추어 튀는 인물의 특이한 삶들을 찾아(혹은 튀는 인물에 특이한 삶으로 만들어) 그저 양념 정도로 다루는 것들을 보던 나는 사는 이야기 비중을 50%로 잡겠다는 오마이뉴스의 파격과 용기에 감명을 받았지. 그리고는 지극히 평범한 아줌마인 나도 그럼 한번 써보자고 미국 사는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오늘이 40회다.

나름대로는 기사로 나를 말해보려고도 꽤 애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지영씨와 얘기를 나누면서 독자들이 내 기사 속에서 만나는 나와 현실의 나와는 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았다. 하기야 그동안 독자의견이란 거울에 비쳐진 또 다른 나를 보아 왔지만.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면서 혹은, 이미 알고 있던 나를 재발견하면서 정말이지 어딘지 모르게 심금이 울릴 때도 있었다.


미국 사는 이야기 40회를 맞은 게 무슨 큰 일이냐고, 오마이뉴스에 1년 넘게 기사를 쓴 게 뭐 너 하나냐, 그게 그리 의미 있는 일이냐고 물어올 사람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지금 그게 중요한 뉴스다.

왜냐면 사는 이야기를 쓰는 기자인 만큼 사는 일로 말해보겠다고 겁없이 연재를 시작해 지금까지 글 하나 마음대로 쓸 수 없는 환경에 밀리고(혹은 싸우며) 때때로 내 부끄러운 모습에 밀려(혹은 싸우며) 때로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그걸 쓰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비록 때로 고통 속에 그걸 썼을지언정 미국 사는 이야기를 쓰는 동안 끊임없이 내 사회적 정체성을 물어가며 내가 살아 있다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으니까.


또, 언젠가 뉴스게릴라 상을 타면서 소감으로 밝혀 놓았던 내용이긴 하지만 반미 성향이 강한 오마이뉴스에 종종 반미가 다가 아니라는 투의 Oh장성희News를 우여곡절 속에서도 일년 넘게 썼다는 일종의 자부심도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한가지 메타-이야기들(meta-narratives)이 불신 당하고 있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미시-이야기들(micro-narratives)을 어떻게 메타-이야기와 연결시킬 수 있을까 나름대로 고민도 했으니까.

해서 오늘은 미국 사는 이야기 40회를 맞으면서 더불어 오마이뉴스 창간 기념 1주년을 기념하면서 애독자 지영 씨에게 당한 인터뷰를 실어본다. 튀지 않게 그러면서 자축하고 싶은 마음에서.

- 성희씨라고 불러도 되죠? 아휴, 너무 반가워요. 영광이에요. 성희씨 기사 읽은 지 오래 되었어요. 지난번에 한 동안 글 안올리셨지요? 무슨 일이 있나, 왜 새 글이 안 올라오나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영광이라뇨, 제가 오히려 영광이죠. 저한테도 애독자가 생겼는데... 너무 고마워요."

- 미국 오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89년에 왔으니까 벌써 12년 됐어요."

- 애틀란타에서만 사셨어요?
"시카고에 친정이 있어요. 그 쪽으로 이민 와서 거기서 1년 넘게 살다가 남편 학교 따라 애틀란타로, 또, 켄터키 루이빌에서 한 4년 살구요. 다시 애틀란타로 온 지 5년째네요."

- 월요일에 기사를 넘기나 보죠? 매일매일 뭐하고 지내세요?
"네, 크리스찬 타임즈라고 아세요? 여기서 발행되는 기독교 신문인데요, 거기에 기사를 쓰거든요. 그게 격주간지에서 주간지로 바뀌고 부터 제가 써야 할 기사량이 늘어나서 아주 힘들어요.
아침에 애들 학교 보내고 나면 설거지에 대충 집안 정리하고 바로 컴퓨터에 앉죠. 멜 박스로 차곡차곡 쌓이는 뉴스와 인터넷을 검색하면 하루에 제가 읽어야 할 뉴스가 20-30여 개는 됩니다.

그 외에 미국신문과 잡지를 읽고 필요한 내용을 정리하고 분석해서 기사를 쓰는 일이죠. 아이들 때문에 늦은 시간의 현장 취재는 거절하지만 가끔씩 요청이 있을 때는 그것도 하구요. 집에서 일을 해도 거의 매일 점심 먹을 시간도 없답니다.

오후 세 시가 되면 아이들이 돌아오고 그 다음부터는 잘 아시죠?
지영씨도 5학년짜리 딸이 있으시다면서요. 애들 숙제 봐주고 뒤치닥거리 하다 보면 금방 저녁 해야 할 시간이고, 먹고 치우고 아이들 재우고 나면 10시죠. 그 후엔 또, 컴퓨터 앞에 앉아 남은 일 정리하는 게 일이고.

집에서 일하지만 재택 근무가 시간 조정하기 더 힘들잖아요. 말은 파트타임 직장에 파트타임 가정주부인데 실제로 하는 일은 풀타임 직업에 풀타임 가정주부나 마찬가지네요. 요즘은 정말 나인 투 화이브 직장이 간절해진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 큰애가 엄마가 밖에서 일하지 않는 건 좋은데 우리 엄마는 일요일도 없다고 안쓰러워해요."

- 미국 사는 이야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올리나요?
"맘 같아서야 매일 올리고 싶죠. 월요일마다 사무실에 나가 기사 마감하고 돌아오면 잔뜩 밀린 집안일 정리하고 잠시 시간을 만들어서 쓰지요. 그것도 한 번 붙잡으면 몇 시간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가요."

- 성희씨 글 보면 아이들한테 정성을 많이 쏟는 것 같아요.
"엄마 맘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가능하면 상처 없이, 상처받으면 잘 극복해 내면서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거. 큰애가 워낙 피부색에 민감하게 굴어서 그 부분을 만져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도 관심이 가고 친구들에도 신경이 쓰이고 아이들하고 될 수 있으면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죠. 특별하게 다른 엄마들보다 더 하는 건 없다고 생각돼요."

- 학교이야기나 생활 주변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정말 그래". "맞어" 그러면서 공감할 때가 많아요.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 되어서 도움이 되요. 근데 정말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잘 아는 거는 없구요. 다들 보고 있고 알고 있는 부분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거 뿐일 거예요. 한국에서도 한 삼 년 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했거든요. 직업이 그래서인지 뭐든지 유심히 보는 버릇이 들어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 정말, 영어를 참 잘하시나 봐요. 글을 보면 미루어 짐작컨대 상당한 수준일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니요. 저 영어 못해요. 읽고 이해하고 요약하는 건 잘하는데 말하는 건 왜 이렇게 안 느는지 몰라요. 그나마 예전에 상점에서 일할 때 손님들하고 대화하거나 음악 학원에서 일하면서 미국 선생님들과 얘기할 기회가 많았을 때는 좀 되는 것 같더니. 그나마도 안 쓰니까 할 줄 알던 말도 다 잊어버리고 있어요. 지금."

- 앞으로 계획은
"글쎄요. 나이 마흔이 넘으면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여기서 글 써서 돈 안되잖아요. 가난한 살림에 아이들 자꾸 크고 생활은 해야 하고. 그저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일밖에는. 미국 사는 이야기도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 아유, 계속 쓰셔야죠. 이제는 책임감을 갖고 쓰셔야 되지 않겠어요?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죠? 친구들한테 배너 누르라고 또, 얘기할께요. 얘네들이 기사 밑에 배너가 있는 것도 모르더라니까요.
"그런 거 생각 안하고 쓴 지 오래됐어요. 미국 사는 이야기 쓰는 것 자체가 좋기 때문에 쓰는 거거든요. 다른 거 생각하면 못 쓰죠. 암튼 고마워요."

- 아이들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 앞으로도 살면서 느끼시는 점 계속 쓰셨으면 해요. 여기서 아이 키우면서 정말 그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하거든요. 읽으면서 같이 생각해 볼 수 있게.
"그렇게 해볼게요."

- 우리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그래요. 나이 들어 갈수록 남편보다는 친구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여기서 생활하면서 친구 사귀기도 참 어렵고...
"그러죠. 가끔 전화 드릴게요. 에스프레소 잘 마셨어요. 다음엔 제가 맛있는 커피 사드릴게요."

덧붙이는 글 | 지영씨를 비롯해 지난 1년 넘게 40회에 이르도록 미국 사는 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한 커피 에스프레소 한 잔씩 돌립니다. 
그 동안 좋은 말로 위로와 격려 주시고 또, 때로 아픈 곳들 덧나게 하며 여러 가지 모양으로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어주신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바라기는 내가 살아가는 모습 보잘 것 없어도 사는 날까지 더러는 쉽게, 더러는 어렵게 사는 이야기들 쓸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지영씨를 비롯해 지난 1년 넘게 40회에 이르도록 미국 사는 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한 커피 에스프레소 한 잔씩 돌립니다. 
그 동안 좋은 말로 위로와 격려 주시고 또, 때로 아픈 곳들 덧나게 하며 여러 가지 모양으로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어주신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바라기는 내가 살아가는 모습 보잘 것 없어도 사는 날까지 더러는 쉽게, 더러는 어렵게 사는 이야기들 쓸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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