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강산, 죽지 않는 전사들의 고향

<책을 들고 떠나는 여행 5> 징강산(井岡山)과 <체게바라 평전>

등록 2001.02.13 23:36수정 2001.02.1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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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후반, 하늘은 위대한 두 혁명전사를 불러갔다. 하나는 프랑스와 일본, 미국으로부터 베트남을 지켰던 호치민이고, 다른 하나는 쿠바의 혁명을 완수한 후 또 다른 혁명을 위해 자신을 던지다가 CIA의 덫에 걸려 볼리비아에서 사살된 체 게바라다. 나이는 호치민이 많았지만 영면한 날은 게바라가 2년여 빠른 67년 10월 9일이다. 호치민이 69년 9월 3일에 죽었으니 호가 꼭 2년 가랑을 더 산 것이다.

그 혁명가들이 지구의 정 반대방향인 볼리비아의 숲이나 그다지 멀지 않은 하노이에서 숨을 거두어갈 때, 마오쩌둥은 베이징에서 정치투쟁에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마오 혹은 중국 공산주의가 태동했던 징강산을 찾아가는 길에 체 게바라의 전기를 들고 가는 것은 누가 될까.

하지만 그 누추를 무릅쓰고라도 생전에 게바라는 마오쩌둥을 좋아했다. 체는 마오쩌둥을 혁명가의 모범으로 여겨, 그의 첫딸인 일디타를 '나의 작은 마오'로 부르기도 했으며, 쿠바에 들어갈 때 자신의 부대를 '로스 마오마오'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혁명의 성공 후 쿠바의 외교사절로 중국을 방문해 마오와 만나기도 했다. 작은 누추가 있지만 그러니 중국 공산주의 맹아(萌芽)가 태동하던 혁명성지에 게바라의 전기를 들고 가도 누추가 덜할 것이다.

지겹지 않은 굽이 길 넘어

징강산으로 가기 위해 쟝시(江西)성의 수도인 난창(南昌)에서 선전 가는 기차를 탄다. 기차는 깨끗하고 빠르다. 선전이 홍콩과 연결된 중국 최대 무역도시 중의 하나라는 이유가 클 것이다. 사람들의 모습도 기차의 모습 만큼이나 현대적이다.

정치적인 수도인 베이징과 떨어졌다는 점이 이들을 위축하게 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내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중국의 인재들은 대부분 북부가 아닌 남부에서 태어났다. 후난성 창사 태생인 마오쩌둥은 물론이고, 덩샤오핑(쓰촨), 저우언라이(장쑤), 장쩌민(장쑤), 주룽지(창사) 등 당대의 인물들은 모두 이곳 남부 태생이다. 정치적 수도와 멀지만 인재가 나는 곳이라 생각하니 그들의 힘이 무엇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기차는 4시간 여만에 징강산역에 선다. 역 안 매점에서 고춧가루에 버무린 총각김치와 똑같은 반찬을 팔고 있어서 마치 한국의 시골에 온 느낌이 든다. 겨울이지만 남부라 차가운 느낌보다는 청명한 느낌이 든다. 옆의 이름은 징강산 역이지만 결코 징강산은 가까이 있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과거 역시 중요한 도시였던 난창과 홍콩의 대로 사이에 공산 게릴라들의 은거지가 있을 리는 만무하다. 게릴라들의 기본은 당연히 숫적으로나 물자적으로 불리한 자신들의 외양을 숨기고, 들어오는 적을 방어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징강산으로 가는 미니버스 역시 깨끗한 차였다. 북한 사람들도 아니고, 그들 공산주의의 성지를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 자못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징강산역에서 징강산까지 가는 길은 지도에서의 느낌보다 휠씬 멀다. 그도 당연한 것이 굽이굽이 돌아난 산고개를 몇 개 건너고, 나중에는 다시 산악지대를 지나고 다시 산고개를 넘어서야 아늑한 분지도시인 징강산시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하지만 2시간 반여의 이 길은 눈꽃을 피운 대나무 등 남방의 정다운 풍경으로 인해 그다지 지겹지 않다. 그렇게 마오쩌둥이 중국 공산당의 기틀을 세운 징강산에 들어섰다.

1927년 8월 자기의 고향인 후난성에서 농민봉기를 일으킨 마오쩌둥은 역량부족과 여건의 미성숙으로 인해 실패하고 징강산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지주에서 스스로의 개화로 마약까지 끊은 후 사회주의에 경도된 위대한 전사 주더(朱德)가 난창봉기에 실패해 이곳에 들어옴으로써 중국 공산주의가 싹을 틔우게 된다.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하다가 나선 중남미 여행과 독서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마르크스주의로 세우고,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서구 열강의 식민제국주의에서 해방하는 것을 인생의 최대 목표로 삼은 혁명가다. 그는 청년시절을 라울 카스트로와 결합해 쿠바혁명을 이끌어내는 데 바친다.

혁명의 성공 후 미국의 제국주의 근성에 맞서기 위해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 등과의 외교에 앞서지만, 카스트로와의 협의없이 미사일을 철수한 소련의 조치에 실망하고 결국은 다시 혁명가의 길을 걷기 위해 모든 직위를 버리고, 아프리카 콩고에 들어간다. 이후 그는 남미의 볼리비아에 들어가지만 정부군과 CIA의 작전으로 인해 포로가 되고, 제대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살해된다.

단순히 한 혁명가로서가 아니라 사람 자체로도 그가 아름다운 것은 실천과 사상에 있어서 성실한 한 성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막시즘은 물론이고 문학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그 지식을 썩도록 두거나 지나치게 맹종하지 않고, 자신만의 사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의 첫 직업인 의사로서의, 그뿐만 아니라 '게릴라 전술'의 대가로서, 또한 인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휴머니스트로서의 그의 삶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그 스스로 터득한 민중에 대한 생각과, 여성에 대한 평등한 시각들도 그 스스로가 경험을 통해 얻어낸 진실한 것들이다.

식지않은 열정이 혁명 유적에 고스란히 남아

차에서 내려 만나는 징강산의 겨울날 풍경은 너무나 고요하고, 편안하다. 농담처럼 이런 곳에서 생활하면 게릴라 생활도 할 만도 하다는 감탄 아닌 감탄이 나온다. 물론 전력에서나 지원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국민당의 진입을 앞두고 있는 이들의 입장이나 이후에 있었던 대장정의 신난함을 생각하면 나의 감상은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

징강산은 혁명기념탑 등 유적은 물론이고 홍군의원소, 혁명열사의 묘는 물론이고, 주변에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가진 명승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징강산의 이름은 이 천혜의 요소인 분지마을에 있는 샘들로 인해 붙여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샘의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혁명 유적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마오쩌둥, 주더 등 혁명전사들이 있었던 구거(舊居)의 주변은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마오의 구거 앞 돌 의자 옆에는 청년시절의 마오가 독서하는 석상이 있어, 인위적인 것에 대한 묘한 반감과 열정적인 시대에 대한 감정이 교차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초기 공산주의 운동의 열정을 불태우다가 전술의 변경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을 때까지 이곳을 근거지로 공산주의운동을 벌인다.

그리고 사방에서 들어오는 국민당군을 피하기 위해 34년 10월 16일 이곳에서 멀지 않은 루이진(瑞金)에서 장정을 출발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혁명의 맹아는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징강산에서의 출발은 은거지에서의 추방이기도 했지만 전 중국을 그들의 근거지로 만드는 출발이기도 했다.

볼리비아의 숲에서 체포되어 살해당한 체 게바라의 죽음은 얼핏 한 혁명전사의 죽음으로만 읽히기도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변혁운동의 거대한 뿌리가 됐다. 계층문제나 전지구적인 문제에 있어서 이미 그 철학적인 가치를 잃어버린 기독교 등 기타 종교의 무기력함과 달리 게바라의 삶과 사상은 그들에게 새로운 출구를 줄 수 있기에 그는 결코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오쩌둥은 갖가지의 풍상을 겪은 후 76년 9월 9일 영면했다. 하지만 여전히 10월 이면 새로운 얼굴로 중국인들의 기억 속에 재생된다. 체 게바라 역시 쿠바는 물론이고 그의 고국인 아르헨티나, 그의 추모자들이 가장 광범위하게 퍼진 프랑스 등 유럽 지식인계의 추모를 받는다.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의 광풍에 맞서는 '시찌푸스'가 되고자 해서 결국은 볼리비아에 자신의 '간'을 묻어야 했던 게바라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극에 달할수록 게바라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짧고도 나른했던 징강산 여행을 마치고, 다시 그 굽이굽이의 길을 역으로 흘러나온다. 가끔은 맑은 강이 가끔은 나른한 황소들이 나를 전송한다. 다시 돌아본다. 나는, 우리 시대는 혁명을 잃었는가, 아니면 혁명의 필요성을 망각하고 있지나 않는가에 관해.

덧붙이는 글 | 책소개 - 코르미에의 평전, 게바라를 살려낸 역작 

체 게바라에 관한 기록으로 한국에 출간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선 운동권에게 널리 읽히던 리우스의 만화는 가장 초기에 소개된 책이고, 만화지만 알찬 내용으로 그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책이다. 책의 후면에는 게바라의 게릴라전술에 관한 기록이 있어 흥미를 더한다. 
체의 일생을 작가 유현숙이 쓴 ''체 게바라''(자음과 모음간)는 무게감이 덜하지만, 역시 읽을 만한 게바라의 기록이다. 게바라가 정신적으로 혁명으로 전향하게 된 계기인 라틴여행의 기록을 기술한 ''체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이후 간)도 최근에 번역되었다. 
역시 체의 일기를 담은 ''체의 일기''(거리문학제 간)은 초기에 출간작이라는 의의는 있지만 성실성면에서 떨어진다. 지금까지 출간된 게바라의 기록중에 가장 높게 평가받는 것은 장 코미에르가 지은 ''체 게바라 평전''(김미선 옮김/실천문학사 간)이다. 
프랑스 일간 파리지앵의 전문기자인 코미에르는 81년부터 게바라의 기록을 찾는 일에 열정을 갖기 시작해, 95년에 출간한 이 책으로 게바라를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덧붙이는 글 책소개 - 코르미에의 평전, 게바라를 살려낸 역작 

체 게바라에 관한 기록으로 한국에 출간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선 운동권에게 널리 읽히던 리우스의 만화는 가장 초기에 소개된 책이고, 만화지만 알찬 내용으로 그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책이다. 책의 후면에는 게바라의 게릴라전술에 관한 기록이 있어 흥미를 더한다. 
체의 일생을 작가 유현숙이 쓴 ''체 게바라''(자음과 모음간)는 무게감이 덜하지만, 역시 읽을 만한 게바라의 기록이다. 게바라가 정신적으로 혁명으로 전향하게 된 계기인 라틴여행의 기록을 기술한 ''체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이후 간)도 최근에 번역되었다. 
역시 체의 일기를 담은 ''체의 일기''(거리문학제 간)은 초기에 출간작이라는 의의는 있지만 성실성면에서 떨어진다. 지금까지 출간된 게바라의 기록중에 가장 높게 평가받는 것은 장 코미에르가 지은 ''체 게바라 평전''(김미선 옮김/실천문학사 간)이다. 
프랑스 일간 파리지앵의 전문기자인 코미에르는 81년부터 게바라의 기록을 찾는 일에 열정을 갖기 시작해, 95년에 출간한 이 책으로 게바라를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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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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